테무의 성공 뒤에 숨겨진 위챗 홍빠오 이야기

by TY

1. 몇 년 전 시총 수백조 원의 테무(핀둬둬)를 만든 황정(黄峥)이 자신의 성공을 되돌아보며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핀둬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그 순간은 70%가 운, 30%가 노력이었다." 절강대 출신 천재 창업자도 인정하는 그 운의 정체는 2015년 춘절 위챗 홍빠오였습니다. 그해 춘절 연휴 동안 위챗의 '흔들어서 홍빠오 받기' 이벤트로 중국에 2억 명이 위챗 지갑에 돈을 갖게 되었습니다. (카카오톡이 돈 뿌리기로 모든 유저에게 10~100원쯤? 준 느낌)


2. 하지만 당시 길거리 전병 가게도, 과일 가게도 위챗페이를 받지 않았습니다. 너무 소액이었기에 길거리 말고는 소비도 힘들었습니다. (한국 돈 몇십 원~몇백 원 정도) 사람들 지갑에는 돈이 있는데 쓸 곳이 없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바로 그때 핀둬둬가 나타났습니다. 위챗 생태계 안에서 0.1위안~10위안으로도 괜찮은 상품을 살 수 있는 플랫폼. 홍빠오로 받은 짤짤한 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입니다.


3. 2억 명의 잠재 고객이 동시에 소액 결제 수단을 갖게 된 역사상 유례없는 순간. 그리고 그 돈을 쓸 만한 곳이 거의 없던 공백 상태. 핀둬둬는 이 완벽한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위챗의 소셜 네트워크 효과였습니다. 홍빠오 자체가 지인들과 나누는 문화였기에, 핀둬둬의 공동구매 모델은 자연스럽게 바이럴을 탔습니다. 친구와 함께 사면 더 싸지는 구조는 홍빠오 문화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죠.


4.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카카오페이 알 리워드였나... 초기에 결제하면 알 같은 거 까며서 몇 원씩 줬던 것 같은데... 당시 "이 돈으로 뭘 하라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는데, 만약 그때 그 소액으로도 의미 있는 구매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핀둬둬의 성공은 단순히 저가 전략의 승리가 아닙니다. 위챗이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만든 특수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타이밍의 산물입니다. (창업자 황정 스스로도 텐센트 투자유치가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인정)


5. 그의 솔직한 고백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장의 타이밍을 놓치면 성공하기 어렵고, 반대로 완벽한 타이밍을 만나면 같은 노력일지라도 기적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테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성공을 보며 많은 국내 기업들이 그들의 비결을 분석하고 모방하려 합니다. 과장된 광고 전략,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 데이터 기반 운영 역량 등 다양한 성공 요인들이 거론되죠. 이런 요소들이 모두 어우러져 만든 성공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이 중 일부는 한국 기업이 모방 가능한 반면 일부는 구조적으로 따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 규모나 제조업 생태계는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이니까요.


7. 그런 면에서 중국 기업들을 보며 진짜 배워야 할 것은 시장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고, 그 순간에 맞는 솔루션을 정확히 제공하는 타이밍의 예술일지도 모릅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에 대한 고리타분한 논쟁에서, 적어도 핀둬둬의 사례는 후자에 무게를 둡니다. 위챗 홍빠오라는 시대적 상황이 2억 명의 잠재 고객을 만들어냈고, 황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기회를 제공했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위챗 생태계에 최적화된 기술력, 공동구매라는 혁신적 모델, 효율적인 공급망 구축 등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공하는 기업은 시대가 만든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예민함과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모두 갖춘 곳들입니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다음 '홍빠오 모멘트'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국 배달전쟁이 예고하는 한국의 미래(feat.쿠팡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