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에서 느껴지는 위챗의 그림자

메신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축 이동

by TY

1. 몇 년 전, 중국의 IT 거인 텐센트가 운영하는 위챗은 중국판 틱톡 더우인(抖音)이 일으킨 숏폼 콘텐츠의 거센 트래픽 습격이라는 중대한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메신저가 소셜 미디어와 숏폼의 공세 속에서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가... 텐센트 내부에선 끊임없이 고민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오늘날 카카오톡이 겪는 불안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시대가 만든 기회(위기)를 포착할 수 있는 예민함과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모두 갖추는데, 위챗은 이 두 가지를 냉철하게 결합했습니다.


2. 그 당시 위챗은 이미 SNS 기능인 '모멘트(朋友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챗 안에 발견탭에 가면 제일 위에 존재하며 거기서 내 위챗친구들의 피드를 볼 수 있었죠. 위챗도 카톡처럼 사회적 관계가 복잡하게 섞여있기에 애초에 친구추가를 할때 물어봅니다. '대화친구만 하기', '내 모멘트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기', '상대 모멘트 보지 않기', '내 모멘트 3일 후에 삭제하기' 등등. 당시 위챗은 이미 최적화된 메신저와 폐쇄적 SNS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거센 숏폼의 공격 속에 텐센트는 sns기능을 강화하는 대신 2020년 '비디오 채널(视频号)'이라는 별도의 숏폼 탭을 런칭하며 새로운 트렌드 대응에 자원을 집중했습니다.(저도 10여년 위챗을 사용해오면서 인스타같이 운영해도 될 거 같은데 왜 이 곳을 강화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부에서 많은 데이터를 모아본 후 인스타같이 하면 안되겠다 결론 냈을듯...)


3. 카카오톡의 딜레마: 5년 전 위챗 수준에 머물 것인가. 현재 카카오톡이 겪는 혼란의 핵심은 전략적 축의 모호함과 관계 피로도 관리 실패입니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업무/사적, 친한/안 친한 관계가 뒤섞인 복잡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으며, 사용자들은 연락만을 위해 맺어진 관계에서 불필요한 사생활 노출을 원치 않습니다. (탭 사용 빈도는 낮았을지언정) 가장 상징적인 첫 번째 탭인 '친구' 탭을 피드형으로 개편하면서 이러한 '관계 피로도'를 증폭시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리 피드 기능을 위챗을 벤치마킹해 최적화한다 해도, 그 결과는 결국 5년 전 위챗이 이미 도달했던 균형점에 머무를 뿐입니다. 숏폼의 위협은 그 균형점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더 거대한 시대의 흐름입니다. 위챗이 '비디오 채널'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듯이, 카카오톡의 전략적 축 역시 숏폼 고도화로 명확히 이동해야 합니다.


4. 강력한 관계망을 연료로 한 숏폼 고도화. 중국 내 숏폼을 틀어주는 수많은 app 사이에서 위챗의 비디오 채널이 더우인 최후의 도전자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관계 기반 알고리즘'에 있습니다. 위챗의 비디오 채널은 '내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와 같이 관계에 기반한 추천이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이는 사용자에게 '궁금증'과 '집단 심리'를 유발하며, 습관적으로 더우인을 찾는 사용자조차 위챗 숏폼을 보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 됩니다.(저도 약간 어려운 관계의 중국 거래처 사장님이 좋아요 누른 숏폼이 있으면 확인해봅니다...) 즉, 숏폼의 고도화는 단순한 콘텐츠 확충이 아니라, 강력한 관계망 위에서 숏폼의 무한 루프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습니다.


5. 카카오가 최적화를 통해 수정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카카오톡이 현재의 혼란을 해소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위기를 먼저 겪은 중국의 선례, 즉 위챗이 보여준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따라야 합니다.


1) UI/UX 재배치 및 관계 통제 강화: 현재 숏폼과 오픈채팅이 함께 배치된 탭은 위챗의 '발견(Discover)' 탭처럼 탐색 기능을 모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사용자에게 통제권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위챗의 '모멘트'는 카카오톡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관계망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내 모멘트가 보이지 않기', '내가 그의 모멘트를 보지 않기', '모멘트 3일간만 존재하기' 등 강력하고 섬세한 프라이버시 통제 장치를 먼저 마련했습니다. 카카오톡 역시 친구 탭의 SNS 피드 기능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관계 통제 옵션을 시급히 제공하여 사용자 피로도를 낮춰야 합니다. 더불어 메신저의 핵심 기능을 방해하는 탭의 위치 역시 재고되어야 합니다.


2) 숏폼 기능 고도화 (정체성 확보 및 인프라 통합): 현재 숏폼 영상 모음집처럼 보이는 형태는 자칫 '숏폼 모음집을 가진 100개 앱 중 하나'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더우인의 "아름다운 생활을 기록합니다", 위챗 비디오 채널의 "진실된 생활을 기록합니다" 처럼, 카카오톡 숏폼은 야심 찬 정체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트래픽 사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숏폼 기능을 관계 기반 알고리즘으로 강화하고, 이를 기존의 앱 내 모든 인프라 및 서비스와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숏폼 시청이 곧 소비로 이어지는 파괴력을 실현하는 데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6. 메신저 플랫폼의 입장에서 숏폼 플랫폼의 침입은 분명 부담스럽지만, 숏폼 플랫폼 역시 메신저의 영역을 쉽게 침범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더우인이 야심 차게 메신저 기능을 출시했으나 결국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위축되었던 선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국민 메신저가 가진 신뢰 기반 관계망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입니다. 카카오톡이 겪고 있는 현재의 진통이, 외부의 위협에 대한 불안감 대신 본연의 강점을 활용해 다음 시대의 패러다임을 선점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의 교훈'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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