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시장에서 '백주'의 위상이 달라진 거 같습니다. 동네 중국집에서도 공부가주, 연태구냥 등은 쉽게 볼 수 있고 유명 연예인의 유튜브 및 프리미엄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도 '몽지람'이나 "우량예', "수정방" 같은 프리미엄 백주 찾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수정방은 한국 한정 프리미엄 백주긴 합니다...)
2. 하지만 '백주의 왕'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장향형(酱香型)'의 마오타이입니다. (중국 출장을 갔는데 마오타이 들고왔다. 그러면 최고의 귀빈으로 모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됨) 바로 그 '마오타이'의 현지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작년에 한국돈으로 50만원 가까이 되던 가격이 이제는 30만원 중반대 정도입니다. 다른 백주들의 가격이 붕괴하는 와중에, '불패신화' 마오타이까지 이렇게 폭락함에 중국 애주가들이 좀 충격을 받은 거 같습니다.
3. 중국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마오타이가 단순한 술이 아님을 압니다. "마오타이로 풀 일은 마오타이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술은 중국 비즈니스와 사교 현장에서 '꽌시'를 여는 핵심 키이자 '사교활동의 윤활유'였습니다. 공무원이든 기업인이든, 협상 테이블에 마오타이를 꺼내는 순간 "진심"과 "존중"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선물로서도 그 가치에 대한 즉각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상징이었죠.
4. 이번 가격 급락의 표면적 이유는 2025년 5월 강화된 '공무원 금주령'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정책적 트리거가 마오타이의 오랜 믿음, 즉 "절대 떨어지지 않는 가격"이라는 신화를 깨뜨렸다는 점입니다. 과거 마오타이는 공급 조절과 강력한 수요를 바탕으로 불패의 자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이 흔들리자, "곧 다시 오를 것"이라며 대량의 재고를 쌓아두었던 도매상들이 투매를 시작했습니다.
5. '재테크 상품'이 된 술: 중국 특유의 집단 사재기 문화. 마오타이가 한때 중국 주식시장 시총 1위까지 올랐던 배경에는, '소비'가 아닌 '투자' 목적의 수요가 있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는 특정 재화가 가치 상승의 믿음을 얻는 순간, 그 내재 가치와 무관하게 '집단 사재기'가 일어납니다. 마오타이는 술이 아닌 '재테크 상품'이자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는 최근의 '라부부' 피규어 열풍처럼, 특정 제품에 대한 집단적 신뢰가 거품을 형성하고, 그 신뢰가 깨지면 급락하는 중국 시장 특유의 소비 패턴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6. 현재 국내 공항 면세점에서 마오타이가 여전히 40만 원 후반대에 팔리는 것을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격 폭락 이전에 확보된 재고 물량을 기존 가격대로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항 유통 구조의 특성상 현지 가격 폭락이 국내 면세점 가격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기는 어렵습니다.
7. 그렇다면 지금이 마오타이를 살 기회일까요? 어짜피 우리나라 사람이 재테크의 목적으로 마오타이를 살 일은 없을테고 선물용/개인 소장용이라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중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공항 면세점보다는 '마오타이 직영 매장' 방문을 추천합니다. 가품 걱정이 없고, 현재 할인 행사도 많습니다. 가격은 떨어졌지만 '마오타이'라는 이름이 주는 고급감과 사교적 상징성은 여전하기에, 선물로서의 가치는 최고인 시점입니다.
8. 중국말에 "청향형(清香型)은 비싼 거 마시지말고 장향형(酱香型)은 싼 거 마시지마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내에는 농향형(浓香型) 백주 위주로 보급되어 있기에 한국분들은 아마 농향형에 좀 더 익숙하긴 할텐데,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이 괜찮은 가격의 시기에 중국 백주의 왕을 한 번 맛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