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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pr 02. 2020

코로나 속에서 돋보이는 프랑스의 시선.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


안녕하세요. 르퐁입니다. 브런치에서의 세 번째 글입니다.


사진은 파리 시청입니다. 저도 스타트업 행사가 있어서 찾아간 게 첫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다른 구나 지역 시청? 구청? 과는 확실히 다른 위용을 보여주는 건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날씨가 좀 흐려서 사진이 어둡게 나오긴 했지만, 잿빛 날씨 아래의 파리라는 것도 제법 멋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사진도 벌써 몇 달 전에 찍은 것이지요.


사실 저 또한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서 길고 지루한 통제 생활을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통제 행정명령이 지난 3월 중순에 있었습니다. 그 전부터 '마크롱 대통령이 며칠 뒤 국민들을 향해 긴급성명을 낼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도 통제에 들어간다', 그런 소문들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집 근처 '르끌렉Leclerc'에 가서 미리 이주일치 장을 봐 왔었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날 밤, 마크롱 대통령이 통제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2주간 통제하겠다는 것이었죠.


사실 마크롱의 대처에 놀랐다기 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통제 며칠 전 지나가며 본 공원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센 강변에서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거든요.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그리고 저와 제 아내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뭔가 두려웠습니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 지, 재난 영화들을 보면 항상 초반에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야 파국이 닥쳤을 때의 충격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눈에 보이는 모습들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파국 이전의 평화로움. 


프랑스인을 비난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언론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지 못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알고 미리 조심하나요? 물론 잘못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에서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데, 좀 더 주의깊게 지켜보고 판단했었어야지요. 대비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는데요.


아무튼 통제 행정명령Confinement이 내려진 이래, 눈에 띄는 혼란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순히 통제에 응했어요. 저와 제 아내는 그동안 일하고 있던 코워킹 플레이스와, 저희 창업을 돕는 현지 인큐베이터 회사에도 연락을 했습니다. 통제 기간 동안 아무래도 나가서 일하고 만나기 힘들 것 같으니, 계약 기간을 잠깐 중단하고 나중에 다시 이어서 진행하고 싶다고 정중히 이메일을 썼습니다. 처음에 코워킹 플레이스에서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계약을 일시 중지시킬 수 없다고 했으나, 저희를 돕는 현지 인큐베이터 회사의 도움으로 두 곳 모두 계약을 성공적으로 중지할 수 있었습니다. 추후 꽁피느멍Confinement이 끝나면 다시 계약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지요. 


저희를 돕는 현지 인큐베이터 회사가 우리의 처지와 상황을 잘 이해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꽁피느멍Confinement 상태에서 식료품, 약국, 병원 등 실생활에 직결되는 곳을 제외한 모든 상점의 문이 닫혔는데, 창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요. 물론 저도, 제 아내도, 속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아직 법인 설립을 완료하지도 못했고, 수익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를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글을 쓸 것입니다만, 프랑스의 느린 비자 발급 절차 때문에, 저희는 6개월 이내에 반드시 발급받는다는 비자 발급 확정 서류만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지요. 조금이나마 모아놓은 돈을 까먹으며 하루 하루 살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외출은 가능하지만, Attestation de déplacement라는 통행증 비슷한 것을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스크도 없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상황 속에서, 저와 제 부부는 외출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몸이 갇히니, 정신도 갇히게 되더군요. 답답함과 불안감, 불편함이 쌓이니 정말 너무 힘들더군요. 심지어 며칠 전, 꽁피느멍Confinement을 2주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지요. 다행히도 저희 부부는 이러한 위기를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집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을까요?



1. 가정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면, 도망쳐서 정부의 도움을 청하라.


TV에서 종종 보이고 있는 광고입니다. 광고를 보고 멍 했습니다. 맞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없던 가정 폭력도 생길 수 있는데, 정부가 빠르게 대처를 잘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더군요. 가정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며, 정부는 응당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이웃이 신고해도 괜찮다며 상세히 정보를 알려주는 광고를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가정 폭력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아빠일 수도 있고, 엄마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그나마 통제가 덜하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정 폭력은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2. 코로나 사태 동안 노숙자들을 정부가 보호하겠다. 


꽁피느멍Confinement 직후에 정부가 했던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노숙자들은 코로나를 피할 방법도 없고, 만약 무증상 확진자인 노숙자가 나타날 경우 피해는 더 극심해지겠죠. 한국은 지금 노숙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프랑스는 지금 정부가 노숙자들을 위한 숙소를 만들어 주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있습니다. 왜 멀쩡한 사람 놔두고 노숙자들을 돕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노숙자들을 정부가 책임지고 통제한다면, 그게 더 안전하고 도덕적으로도 훌륭한 처사가 아닐까요?



3. 의료진, 그리고 캐셔를 보호하겠다. 


매일 밤 8시에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잠시 발코니로 나와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의료진을 위해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패널들의 주장들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진을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숭고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면, 그들이 정작 필요한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순간, 그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도 사람이잖아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보살핌을 그들도 당연히 받아야지요. 


그리고 통제 와중에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마트 캐셔를 비롯한 직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고, 이에 따라 고용주들의 대책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너스를 더 주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장갑, 마스크를 챙겨주겠다는 내용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장갑과 마스크가 부족한 프랑스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지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들을 위해서 계속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마음씨는 정말 보기 좋습니다. 



이외에도 프랑스 체류자들을 위해 비자 만료 기한을 3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하면서 불안한 체류자들의 우려를 가시게 해주었습니다. 만약 이 발표가 없었다면, 코로나에 벌벌 떨며 프레펙튀르Prefecture에서 긴 줄을 섰어야 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에요, 그건.


물론 프랑스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안 좋은 소식도 들려옵니다. 어느 지방에선 코로나 옮는다며 간호대학 다니는 여성을 강제로 쫓아낸 하숙집 주인도 있다고 하고, (소문에는 프랑스 총리가 그 소식을 듣고 엄청 열 받았다고 하더군요.)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원활하지 않고, 심지어는 길거리 소독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에 대한 논의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소독약이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에게 유해할 수도 있는데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였습니다. 파리 시장이 환경론자라 더 민감해하는 것도 있겠지요. 


아무튼 프랑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아직 1년도 채 살아보지 않은 제가 할 말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사회적 소수자를 생각하는 프랑스의 마음 씀씀이가 저는 참 보기 좋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까지도 생각해서 대비하고자 하는 세심함이 저는 참 보기 좋습니다. 한국 언론도, 한국 정부도, 이런 점은 곧바로 따라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한다고 하면 또 잘 하는 게 한국 사람 아닌가요? 


프랑스도, 한국도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다시금 기원합니다. 다음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삶,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를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제 아내에 대한 개인적일 수 있는 정보들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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