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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pr 05. 2020

프랑스, 코로나, 일상, 그리고 원격진료.

불행 중 다행. 


안녕하세요. 르퐁입니다. 브런치에서의 네 번째 글입니다.


사실 몇 주 전, 프랑스가 모든 것을 잠시 멈추기로 결정한 이래,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과 무력감, 분노 등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풀려나길 반복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빼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마음에 병이 드니 몸도 덩달아 아프더군요. 수면효과가 아주 탁월한 페흐벡스FERVEX 감기약을 먹고 잠들고, 또 잠들고.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구상해야지 하다가도 아직 제대로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통제Confinement 조치를 당했으니, 무력감에 앞날이 막막했습니다.


한국은 프랑스처럼 강력한 통제 조치를 취하진 않았으나, 수많은 한국의 독자분들께서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리라, 어쩌면 지금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 저도, 여러분도, 모두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대로 그냥 시간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브런치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다시 사업을 구상하고, 아직 모자라지만 적게나마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어디로든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1. 원격진료 : doctolib.fr


올해 초, 프랑스에서 그헤브Grève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대규모 파업이었죠. 프랑스 언론들도 이례적인 규모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숨 좀 돌리나 싶었더니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라니. 정말 한숨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 계속 걱정된 게 있었습니다. 아내가 챙겨먹어야 하는 약이 있는데, 한국을 떠날 때 처방받은 약이 점차 바닥이 나고 있었어요. 정착에 필요한 작업들이 전부 미뤄지거나, 느려진 상황 속에서 병원에 가는 것이 늦어지고 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들도 일부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와 보니, 의료체계가 한국과 많이 달랐어요. 일단 제너럴 닥터(주치의 개념)에게 찾아가서, 진단을 받은 후, 진단서를 가지고 해당 검사소(병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다 따로 있습니다)에 가서 검사를 받고, 다시 제너럴 닥터에게 가서 진단을 받고, 진단서에 따른 약이나 주사를 사야 합니다. 주사를 샀다면 직접 놓는 것이 아니라 제너럴 닥터에게 다시 가서 주고 맞아야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은 직접 방문 혹은 전화를 통해 약속Rendez-vous을 잡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 때문에 여러 제너럴 닥터들은 휴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제때 아내가 먹을 약을 찾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도 두려워지는 상황에서, 열심히 뒤져보다 찾은 것이 바로 doctolib.fr 사이트였습니다. 이 사이트에 등록된 의사들이 있는데, 영상 원격 진료 서비스를 해주더군요. 알고보니 영상 진료는 약 1년전부터 시작된 서비스라고 합니다. 덕분에 집 근처에 있는 의사와 곧바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아내는 영상으로 안전하게 집에서 진료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고, 약국에 가서 필요한 약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집에서 안전하게 진료 받았고, 필요한 약도 얻어서 저와 아내는 집에서 함께 손 붙잡고 춤도 췄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사이트 평가를 보더니, 재미난 댓글을 봤다면서 보여주더군요. 댓글에는 '세기의 발명'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선 불가능할 줄 알았던 서비스라더군요.)



2.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마음에 담고 있던 문제 하나가 해결되니, 살 맛이 조금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테라스에서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었어요. 제목 배경 사진은 점심으로 해 먹은 파스타입니다. 위 사진은 간단한 빵 종류에 커피입니다. 햇살이 참 좋아서, 밖에서 먹고 마시다보니 마음에 쌓여있는 먼지같은 어둠도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제갈량이 조조가 화용도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지요? 일을 꾸미는 것은 인간이라도,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요. 조조에게 한 번 목숨을 건진 관우가 어찌 조조를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든, 아니었든,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고요.


생각해보면 프랑스에서 창업을 하겠다는 것도 급박하게 결정되었고, 준비도 급박했고, 모든 것이 급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갑자기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이 빠르게 운명이 길을 틀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조만간 해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인생 어떻게 흘러갈 지 앞으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지만, 열심히 할 수 있는대로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해나가야지요. 일상의 소중함을, 그리고 일상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항상 되새겨야겠습니다. 



밖에 나가려면 통행허가서Attestation de déplacement dérogatoire 서류를 보여줘야 합니다. 집에 프린터가 없어서 매번 수기로 써서 가지고 다녔지요. 여러 장 계속 쓰다보니 쓰기 연습도 되는 것 같고, 프랑스어 공부도 되는 것 같고, 점차 쓰는 속도가 빨라지는게 옛날 고등학생 시절 소위 깜지 만들던 추억도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열심히 써서 여권과 함께 가지고 다녔지만, 아쉽게도(?) 단 한번도 검문을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주변 소식에 따르면 경찰도 극성으로 쫓아다니진 않는다고 하더군요. 


프랑스의 통제가 4월 중순에 끝날지, 아니면 더 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정부도 고민 중이라고만 합니다. 당분간은 계속 우리 부부는 별 다른 일이 없는 한 집에만 머물겠지요. 



테라스에 나와서 찍은 저녁 하늘입니다. 저는 지금껏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 그림에 나온 하늘과 구름이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아니더군요. 정말 이렇게 생겼던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저 하늘과 구름들을 보면서 이국의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겪어보니 프랑스는 한국과 다릅니다. 여러모로 다릅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저는 열심히 배워야 하겠지요. 


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사태가 저희 부부에게 어떠한 추억으로 남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 이런 적도 있었지 하며 회상할 순간을 위해 지금을, 아내와 함께 잡은 손에 힘 줘가면서 굳건히 견뎌내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겠습니다. 이따금 창 밖의 하늘을 보며, 구름을 보며, 햇살과 바람을 맞이하면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에게도 훗날 이 순간이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삶,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를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제 아내에 대한 개인적일 수 있는 정보들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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