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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un 15. 2021

연재소설 <산책>8

먹이.


지점장의 자리는 출입문 옆, 너무 구석지지 않은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 않은 곳, 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점장은 당뇨약과 고지혈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겉모습은 그런 말이 무색하게 매우 건강해 보였다. 피부가 좋았고 너무도 좋은 나머지 광이 났다. 사찰의 동자승처럼 각진 곳이라곤 찾을 수 없을 만큼  둥글둥글하고 이마가 넓었다. 하지만 관상의 팔 할은 눈이라고 했듯이 그의 눈빛은 매서운면이 있었다. 특히 오전 정보미팅을 시작할 때 좌중을 집중시킬 때의 눈빛은 흡사 먹이를 낚아채려 하강하는 독수리 같았다. 30분 동안의 오전 정보미팅은 그가 우리에게 먹이를 낚아채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우리를 낚아채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강렬했다. 가끔은 연단 앞에서 핸드폰을 훔쳐보거나 딴짓을 하는 설계사가 눈에 띄면 가차 없이 부리를 들이댔다.

그가 유독 자주 하는 말은 '위기입니다.' '저력을 믿습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였다. 그리고 정보미팅 중에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건 전날에 들어간 계약을 치하하는 순서였다. 하얀 스크린에 일일이 들어간 계약을 보여주고 가장 큰 계약이나 돋보이는 설계사를 연단 앞으로 부르거나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박수를 유도했다.

미팅이 끝나고 각 팀들은 회의실로 들어가면 지점장은 자리로 돌아가, 날개를 접은 체  먼 곳을 응시하는 독수리처럼, 갑자기 텅비워진 사무실을 조망하듯 응시했다.


"당장 내일이 마감인데 이거 큰일 났네.."

팀장은 오늘따라 유독 메말라 보이는 건조한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2 팀장이 왜 또 오버를 하는지 나참.."

2 팀장은 팀장들 중에 나이가 젤 어렸지만 지점장이 편애할 정도로 팀원들을 잘 이끌었고 실적이 좋았다. 해병대 출신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그는 실제로 해병대 후배들을 보험회사로 리크루팅 해서 자신의 팀 밑에 두었다. 설계사로 코드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억대 연봉을 찍었고 젊은 설계사의 성공스토리로 사내방송을 여러 번 타서 회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부진 체격에 각 잡힌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그는 항상 칼 정장 안에 베스트 조끼를 착용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있는 타 팀과 다르게 2팀은 20-30대 젊은 남성들로 구성되어 사무실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타 팀과 융화되지 못하고 지점장과 어울리는 형국이었다. 지점장은 그런 2팀의 활력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2팀은 이번 달 실적을 이미 오버했습니다."

이 한마디면 타 팀들은 부랴부랴 머리를 싸매고 회의에 들어갔다.

"2 팀장이 또 오버를 하네.. 나참.."

"2 팀장 저 새끼 지점장이랑 시책을 뒤에서 짜고 친다는데 사실이에요?"

팀원 중 한 명인 선임 선배가 끼어들었다. 그는 회의 때마다 팀장의 말을 가로채어 의견을 자주 피력하는 사람이었다. 불만이 가득한 그의 말투는 반대가 생활인 듯했고 회의 때마다 팀장은 그런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책은 실적을 독려하기 위해 계약에 따른 인센티브를 설정하고 달성하면 수수료와 무관하게 더 얹어 주는 제도이다. 팀 단위. 개인 단위로 지급되는 시책은 팀 대항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쓸데없는 헛소문 퍼뜨리지 말고, 자 계약 있으신 분?"

"팀장님만 모르시는 거 같은데 사무실에 소문 다 퍼졌어요~나참"

"아~됐고~ 지금 팀 실적이 시급하니 추진 중인 계약 있는 사람?"

팀장과 옥신각신 말대꾸를 하던 선임 선배도 조용해졌다. 팀장은 연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혀를 끌끌 차며 손가락을 까닥하면 강아지처럼 내 품에 안길 기세였다.

"기택이가 개척 영업으로 두건을 체결했습니다~ 여러분!... 그 사장님 또 추가 계약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다시 방문하라고 하긴 했는데 만난 지 이틀 만에 두건을 체결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을 두고 추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상대방에게 서둘러 계약을 종용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미 난 신인 설계사라 선배들보다 실적 할당량이 적었고 , 자동차와 화재보험, 두건으로 다 채운 상태였다.

"지점장이 이번에도 우리 꼴찌 하면 타 팀에 섞어 버린다고 공언을 했어..."

지점장은 , 내가 건물의 경비원을 그렇게 생각하듯,  팀장을 지점의 효율을 높이는데 방해가 되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험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팀장을 만났을 때와 일을 해본 후 그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는 이 험난한 정글 같은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에 누구나 알만한 대학에 국문과를 나온 그는 문학도였다고 한다. 가끔 사무실이 한가해지면 소설책을 읽었는데 지점장은  그런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소설책 읽을 시간에 리크루팅을 해~"

팀장은 그럴 때마다 살며시 책을 덮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좀 있다가 리크루팅 면담 있습니다. 지점장님"

2 팀장은 한걸음 떼면 닿는 자리에서 얄밉게 팀장한테 들으라는 듯 지점장에게 딸랑거렸다.

팀장은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팀장에게도 은근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냥 지점장한테 없다고 하세요~왜 팀장 자리 위태로울까 봐 그래요?"

결국 선배는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아~ 저놈의 주둥이를..'이란 생각이 체 끝나기도 전에 검은 물체가 휙 하고 눈앞을 지나갔다.

팀장은 쥐고 있던 볼펜을 벽에 사정없이 던지더니 화를 못 이기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평소에 순해 보이던 팀장이 얼굴이 불그락해지는 모습을 보니 낯설었다. 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연세가 지긋하신 엄마뻘의 설계사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민석 씨~ 팀장님 요즘 병원 다녀.. 그만해.."

"아니, 계약이 마감 앞두고 닦달한다고 나옵니까? 팀 해체한다고 협박하는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선배도 억울하다는 듯 불만 섞인 말을 흘리듯 말했고 다들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기택 씨~계약 좀 당길 수 없어?.."

그녀는 조금 전의 팀장보다 더 애처롭게 나를 쳐다봤다.

"지점장이 저렇게 팀 해체시킨다고 하는데 기택 씨도 느끼겠지만 다른 팀 가서 적응할 자신도 없고..."


언제나 그랬듯 회의가 끝나고 담배를 피우러 팀원들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2팀은 회의가 끝나고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새끼들 재수 없지 않아? 특히 저 새끼~ 요새 누가 베스트를 입고 다니냐?"

불평이 일상인 선배는 또 불만을 늘어놓았다.

"재네 계약할 때 설명은 제대로 하는 걸까? 하긴 팀장이란 놈이 사기꾼이니"

"네? 2 팀장 저번 사내방송 보니 개척 영업 엄청 열심히 한 사람이던데요, 고속버스 터미널 가서 막 명함 돌리고 그러던데.."

"넌 그걸 믿냐? 순진하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여"

2 팀장은 원래 이전 선배의 팀에서 나처럼 새로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였다. 그런 그가 짧은 시간 내에 사내방송에 나오고 억대 연봉자로 같은 지점의 팀장이 되자 매우 거슬렸을 것이다. 선배는 연차에 비해 등급이 낮았다. 본인 말대로는 정도영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부정적인 성격이 한몫했을 거라는 예측을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근데 팀장님 어디가 안 좋으신 거예요?"

비슷한 또래의 팀원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가 갑자기 끼어들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우리 팀은 스타가 없었다. 팀장도 조용했고 팀원들도 조용했다. 지점장이 원하는 시끌벅적하고 눈에 띄는 그래서 실적을 잘 올려주는 그런 스타가 없었다. 

"불쌍해~ 팀장, 예전에 다른 회사에서 지점장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서 설계사로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같이 오래 일한 선배는 팀장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팀장 수당이라고 더 받아야 애들 교육비에 보탬이 될 거 아니야.."

2팀 팀장과 팀원들이 우리 쪽을 힐끗 쳐다봤다. 같이 교육을 받은 동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너도 무리하게 계약 넣지 마, 팀장이란 사람이 알아서 커버를 춰줘야지, 지점장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괜히 고객이랑 틀어지면 너만 손해야"

나보다 몇 년 일찍 일을 시작한 선배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팀에는 도움이 안 되면서 불평만 늘어놓는 그의 말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2팀이 잘 나가는 걸 시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는 그냥 무엇이든 다 부정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엘리베이터에서 교육매니저 P를 또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손목을 잡더니 1층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진짜 개척이에요? 지인 아니고?"

"네.. 우연히.."

도대체 보험회사에서 개척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호들갑이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설계사에게 모두들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작정이나 한 듯 말했다.

"오~ 진짜? 자세히 말해봐요~"

한동안 내 말을 들은 P는 신기한 듯 말을 이어갔다.

"신기하네요~ 내가 알기론 보통 성인전화방 업주들이 영세사업자들이라 보험료를 크게 안 가져가거든요, 의무보험만 딸랑 가입하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P는 교육기간 보였던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새롭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까 말했던 오피스텔이랑 다른 업장도 이번 달에 당길 수 있어요? 내가 단장님한테 건의해서 이번 달 신인들 시책을 크게 걸 테니깐 한번 도전해봐요~"

교육 매니저의 특이한 억양과 목소리가 소란스러운 카페의 소음을 뚫고 한참을 돌아 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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