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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26. 2020

<정직한 후보> 영화를 빌려

정직한 후보 (2019)


그는 참 솔직한 친구였다. 달리 말하면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원을 그대로 따르면 숨김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그런 사람. 그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도 있었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 민망한 순간도 있었다. 물론 그의 언행이 타인을 향할 때였다. 숨김이 없는 언행은 거침이 없어 보여서 그랬는지 적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그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 원래 솔직한 친구라고 두둔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의 솔직함이 나에게도 향했다. 무심코 말한 그의 말 중에 폐부를 찌르는 어떤 단어가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피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 같은 것이었다. 스치듯 지나가듯 주고받은 대화 속에 내가 처한 문제의 본질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날 이후로  그를 불편해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됐다. 나처럼 불편한 진실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언행이 경솔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별 같잖지도 않은 게, 나보다 00한놈이,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에 가까운 정도의 핵심적인 단어였다. 나는 단지 그것을 하찮게 여기어 문제를 겉돌고 있었던 거였다.

진실과 별개로 당시 받았던 불쾌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를 피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는 항상 주위에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어딜 가도 사람을 잘 사귀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대화를 잘 나누는 그런 분. 가끔 자신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지인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상대방이 기분 안 나쁘게 거짓말을 잘하셨다. 오늘 집안 행사가 있다거나 없는 선약을 만들거나 엊그제 치른 내 생일을 또 소환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통화를 듣고 있다 "오늘 또 내 생일이네~"라며 엄마를 놀리곤 했다. 선의의 거짓말은 인간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지만 지능과 센스가 필요한 이성의 영역이다. 상황에 따라 변주되어야 하고 관계의 시작점에 시작된 거짓말은 계속 인지하고 체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려면 매번  새롭고 창의적인 거짓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에 내가 잠깐이나마 연기를 하게 한 동기도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적절한 톤으로 떨지 않고 감정을 실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엄마의 연기를 보면서 감탄하곤 했으니깐.

누구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경험은 갖고 있을 거다. 반대로 관계를 위해서 혹은 상대방을 위해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건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대게의 진실은 불편하거나 꺼내놓기 어려운 것 들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능력보다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더 많은 걸 요구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받아 들일수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말을 꺼낼 때의 분위기라든지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선의의 거짓말이 보통 상대방을 배려해서 한다고들 하지만 실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속마음이나 진실 혹은 상대방의 치부가 될 수 있는 말을 할 때만큼 배려가 필요한 순간은 없다. 물론 관계의 깊이도 어느 정도 진전된 후라야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인간관계의 갈등이 서로가 느끼는 속도 차이에서 비롯되는 걸 경험하면서 좋은 관계란 서로의 보폭을 신경 쓰면서 맞춰가는 과정임을 매번 느낀다.

나는 당신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아직도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고 있지 않다니..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남녀가 무수히도 접촉을 시도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는 서로의 속도가 맞지 않는 관계 아닐까.

솔직함은 인간관계에서 복잡 미묘하게 작용한다지만 그래도 거짓으로 일관된 관계보다 진솔함이 기반된 관계가 더 오래가고 깊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결국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통하였느냐가  관계를 더 깊어지게 하는 촉매제가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럼 과연 정치인에게 솔직함은 미덕일까? 반대로 말하면 과연 유권자들은 솔직한 정치인을 원하는 걸까?

 애석하게도 국민들은 정치인의 솔직함을 원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영리하게 포착하는 것이 유능한 정치인의 자질이 되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어떤 경우에는 정치인의 솔직함이 불편한 진실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  대통령이 이 말을 하고 나서 모든 언론은 대통령이 무책임하다. 정제되지 못한 언어를 사용한다. 뽑아 났더니 저런 망언을 한다 등등. 지금도 망언으로 검색하면 쏟아지는 전임 대통령의 언사는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인간적이었고 솔직했다. 후보 시절 그의 연설은 솔직하고 과감했으며 여타 정치인들과 다르게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그런 그를 신선하게 생각했고 좋아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의 장점은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얼마나 대통령 하기 힘들었으면 저런 얘길 할까 라는 공감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도 인간이니  힘들다고 하소연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나도 대통령은 권위가 서야 하는데 자꾸 저런 얘길 하면 어쩌나 안타까웠다. 아마도 우리 세대도 알게 모르게 이상적인 대통령상은 흑백사진 속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입술을 꽉 다문 체 먼 곳을 응시하는 어느 대통령의 모습 일거다. 딱딱하지만 핵심만 말하는 단호함과 마치 기계같이 일정한 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걸이.

그와 반대로 솔직한 전임 대통령은 걸음걸이도 삐딱했다. 뉴스에서 청와대를 활보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때면 아버지는 꼭 한마디 거드셨다."대통령이 걷는 게 왜 저래"  불과 15년 전 이야기지만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아니 변했을까.

만약 지금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들은 그의 솔직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직자의 솔직함은 정직함으로 연결되고 공정성으로도 연결될 수 있기에 어찌 보면 필수적인 자질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개인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상황에서 선택적인 자질이 될 가능성이 클 거다. 그만큼 솔직함 혹은 정직함은 상대에게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데 참으로 어렵고 복잡다단하다.


개인적으로 코미디 영화를 보기 전에 체크하는 건 영화의 감독, 배우, 스토리가 아니라  현재 기분 상태다. 상대에게 웃음을 주거나 상대방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파안대소했을 때는 십중팔구 걱정이 없는 여유로운 그러니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유머는 상대가 여유가 있을 때 웃음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까닥하면 조소나 놀림을 당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유머의 기술은 다양하고 희화화를 하지 않은 유머도 존재하지만 유머의 본질이 풍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전제 아래 남을 웃기려면 일단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코미디 영화와 연기의 첫 시작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거다. 기분이 우울해서 코미디 영화를 보고 기분전환을 꾀한다면 아마도 더 기분이 다운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치료제 같은 코미디 영화가 있다면 나에게도 추천해주라. 코미디 영화는 기분이 좋을 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일에 치여 살 때가 아니라 산적한 서류뭉치에서 해방됐을 때, 머릿속에 계속 떠도는 어떤 고민거리가 없을 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온전히 코미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장면에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영화의 사소한 미덕도 발견할 거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건 정직함

이라는  품성뿐만 아니라  코미디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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