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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Nov 05. 2020

<소공녀> 영화를 빌려

소공녀(2018)


기타를 치는 친구가 있었다. 수염도 멋들어지게 길렀고 기타를 분신처럼 메고 다녔다. 20대 땐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다. 지금도 그럴 거다. 기타를 등에 메고 다니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보면 도시 속에서 외롭게 수행하는 고승자를 목격하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깐. 기타를 생각보다 잘 연주하진 못했다. 그래도 가끔 그가 들려주는 익숙한 팝송들은 생으로 듣는 묘미가 있었다. 우연히 친구의 집에 놀러 갈 일이 생겼다.

친구가 보내준 주소를 따라 하염없이 달동네의 계단을 올랐다. 현 겨울에 이런 등산이 따로 없을 정도로 땀이 맺혔다.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었다니, 달동네의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은 생경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그가 환한 웃음으로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크기의 나무문을 열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방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의 방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여러 개의 방문이 보였다. 방안에 들어가자 방의 끝이 다가왔다. 좁은 침대와 책상 하나 들어가고 나머지에서 난 무릎을 꿇어 안고 그와 맥주를 마셨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기타를 쳤다. 맥주를 먹다 보니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두세 걸음 앞에 보이는 쪽문을 하나 가르쳤다. 공용화장실이었다. 샤워도 겸할 수 있는 화장실의 지붕은 낡은 슬레이트로 덧되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그에게 방값을 물었다.

보증금 3백에 20만 원짜리 방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으로 나를 초대하기까지 그의 고심이 짐작이 된다. 딱 십 년 전 이야기다.

오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달 말에 이삿날인데 자신이 부동산 가서 잔금을 치르는 사이 짐을 좀 봐줄 수 있느냐고.

그는 이제 어엿한 기타 학원의 원장이 됐고 서울 강북에 20평형대의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 만났을 땐 큰 시세차익을 보았다고 함박웃음 지었고 나에게도 어서 대출을 받아 지금이라도 서울의 작은 평수 아파트를 사야 한다고 얘기했다. 곧 패닉 바잉이 올 거라고. 그럴 때면 난 그에게 이젠 직장도 있고 수입도 있고 집도 있으니 여자만 있으면 되겠네?라는 말로 부동산 얘기는 마무리 짓곤 했다.

그는 여자 얘기만 나오면 우울해했다. 연애한지도 오래됐을뿐더러 이성 앞에서 요령껏 대화를 이어 나가는 능력도 없었고 철 지난 청바지를 고집스럽게 입고 머리는 항상 반스포츠 머리였다. 하긴 우리가 항상 여자 이야기로 귀결되는 건 우리들 만남의 가운데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어느 학원에서 알았고 그는 그녀와 대학교 동창이었다. 솔직히 둘의 관계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사귀는 사이였는지 아니면 친구가 짝사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는 순수했고 나는 순진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녀가 공연을 올린다는 얘기에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보증금에 버금가는 돈을 대출받아 빌려주었고 아니 주었고, 그녀의 보디가드처럼 기타를 무기 삼아 항상 그녀 주위에서 존재했다. 그리고 언제나 응원했다.

그 시절, 그는 말보로 레드와 기타 그리고 그녀만이 삶의 이유였다.

따지고 보면 결국 그녀를 제쳐두고 남자 둘이 친해진 이유는 취향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블루스 바를 찾아다니며 맥주 한 병을 놓고 라이브 기타 연주에 취해 있었고 영화 한 편을 보고 와서 밤이 세도록 토론했다. 가끔은 정치색을 가지고 서로 옳다고 논쟁할 때도 있었지만 대화는 항상 여자로 끝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행방을 묻자 돌아온 말은 나로 하여금 그가 변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걘, 그렇게 살면 세상 살기 힘들어~"

워낙 자유로운 영혼인 그녀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인지, 아니면 틀어진 사랑에 배신감이나 애증의 감정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담배를 끊었고 잘 어울리던 수염도 더 이상 기르지 않고 이젠 기타를 메고 다니지도 않는다.

서울에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달동네의 다닥이방에서 살던 그가 어쩌면  제집을 갖는 게 삶의 목표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취향만큼 한 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로는 드물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쉽게 버려지는 것 또한 취향일 거다. 개인들의 취향이 사라질수록 개인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 부유하는 외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말보로 레드, 기타, 그녀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는 또 다른 안식처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독특한 방식은 지켜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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