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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Nov 05. 2021

소설<알쏭당>

알송당

                                                                                                                                                                                                                                                                                            나는 책의 서문만 읽고 책의 전체 내용을 가늠하고 독서를 마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리고 서점에서도 책의 서문을 잽싸게 읽고 마음에 들면 책을 사는 편이다. 서문은 책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 줄, 몇 장 안 되는 서문을 읽고 책 한 권이 주는 감동보다 더 큰 전율을 느낀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거다. 책의 서문은 영화의 도입부와 음악 인트로와는 사뭇 다르다. 서문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단 몇 줄에 집약하기도 한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혹은 숙소에서 자기 전에 읽으라고 두 권의 책을 빌려 주었다.

하나는 에르베 켐프의 "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와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다. 환경과 자본주의.. 글쓰기라는 취미를 통해 우리는 마치 숲 속을 산책하듯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암에 걸린 후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주제를 그녀는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전 다 읽어본 거라 읽고 가지셔도 돼요"

신기하게도 영실과 그녀는 돌려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책을 빌려주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면 그에 합당한 걸 받아야 했고 내가 받았다면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 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관계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 그리 한다고 생각했으니깐.

공항에 도착해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사귀고 나서의 첫 여행인지 무척이나 설레어하는 커플, 흰머리가 성성한 부모님을 모시고 탑승을 준비하는 듬직한 자식들의 어깨, 이제 막 착륙한 비행기에서 갓 내린 승무원들의 한결 가벼운 표정과 이륙을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기장과 승무원들의 꼿꼿한 허리가 교차하는 공항은 그래서 마치  책의 서문을 보는 것 같았다. 공항의 분주한 분위기는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이미  여행의 첫 페이지가 시작됐다고 알리는 거나 다름없을 테니깐. 공항이라는 공간은 현실의 세계에서 여행의 세계로 인도하는 중간 매개체일 거다. 탑승구간에서 표를 인식받고 검색대에서 몸을 홅는 행위가 끝나면 현실 세계를 벗어날 자격을 부여받은 셈이니깐. 여행의 세계가 프랑스, 파리 또는 뉴욕이 될 수 있고 가까운 부산이 될 수도 있지만 거리가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공항에서 대기하고 검색을 통과하면서 여행에서 느낄 행복감의 절반 이상을  느끼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기다란 브릿지를 걸어 내려가면 비행기의 몸통의 한 부분이 신기하게 맞닿아 있고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반겨주는 승무원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여행의 묘미는 생각지도 못한 삐끗 거림이다. 수화물을 맡겼던 가방에서 라이터가 발견되어 한차례 소동이 벌이지기도 하고 여권을 갖고 오지 않아 망연자실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가장 큰 삐끗 거림이겠지. 여행의 서문이 막 시작하려 하는데 끝나버리는 미완성의 여행이 될 테니깐.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공항에서 항상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곤 하는데 비행기 좌석에 비로소 앉아야만  여행의 서문을 평온하게 일단락 한 기분이 든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왜 난 대한항공의 티켓을 끊어놓고는 아시아나 항공 수화물 접수하는 곳에 가서 당당하게 짐을 싣고 민증을 보여줬을까. 지금도 아시아나항공 직원의 영문 모를 표정을 잊을 수가 없고 대한항공임을 알고 나서의 당황스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이 너무 들뜨면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될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아무튼 순조롭지 않아도 모든 검색이 끝나고 내려가는 기다랗고 구불거린 그 브릿지를 내려갈 때의 기분이란.. 승무원들의 환한 인사에 마스크라도 벗고 씩 웃으며 인사하고 싶은데 말이지. 참자, 참어, 비행기를 첨 타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으니 워워, 속으로만 아주 크게 안녕~하고 외쳤다. 서울이여 안녕~도시여 안녕~



실은 이번 여행에서 내심 걱정했던 부분은 일 년 만의 제주도행으로 말미암아 예전만큼의 감흥을 받지 못할 가봐 내심 걱정했다. 물론 작년 제주도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작년 제주도는 나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 같았고 이전에 알고 있던 제주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변했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일탈, 그래 해방 아닐까. 여행지에 도착하면 산적한 일거리나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잠시 떨어지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요즘같이 한달살이, 일 년살이 같은 장기간 한 도시에서 체류하는 여행의 방식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공간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떠나 일상의 연장이 되어가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니 여행을 간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설렘에 부풀 이유도 없다. 천천히, 처음 살아보는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느끼면 되니깐.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책부터 먼저 챙기는 버릇이 있는데 이륙 직전부터 비행기가 상공에 뜰 때까지 그리고 여행 도착지를 알리는 승무원의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평소에 안 읽히던 책이 술술 잘도 읽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참 희한한데  매번 그러니 매번 책부터 먼저 가방에 챙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행기 탔을 때뿐만 아니라 수능시험 전날 삼국지를 읽다가 엄마에게 걸려 눈앞에서 그 두꺼운 책이 찢겨나가는 광폭한 장면을 본 적이 있고 회사에서 실적이 안 나오는 달에는 항상 근처 교보문고를 찾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안감을 느낄 때 책을 찾았던 거지.

자연을 닮은 녹색 표지의 "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를 펼쳤다. 책장을 몇 장 넘기자마자 서문이 체 나오기 전 몇 줄의 글이 나와 있었다.

"이 세대는 자신의 유년기가 항상 계속되리라는 착각 속에서 자랐고 역사의 한순간에 불과했던 것을 확정된 것으로 오인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활기차던 불빛이 그 힘을 잃어가는 것도, 우리의 야먕이 이울어가는 것도, 우리 청춘의 순진함이 음산한 이기주의로 바뀌어가는 것도 보지 못한 체, 계속해서 생산하고 노동하고 소비해왔다. 우리는 존재가 망가지는 것도 모른 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유의 산을 쌓아 올렸다"

이번 독서는 서문으로 도달하기 전에 책 읽기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덮었다.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쳤다. "기류의 영향으로 잠시 비행기가 흔들렸습니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고 기내를 둘러봤지만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트에 파묻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만약에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는 걸 반복하다가 지상으로 갑자기 추락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나만 하는 걸까?


제주와 서울은 같은 대한민국 영토지만 이상하리만치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동 떨어져서 일 수도 있고 비행기를 이동수단으로 대부분 택하기 때문에 일 수고 있다. 하긴 십 년 전 나와 규호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8시간 차로 이동후 선박으로 차량을 인도하고 선실에서 잠을 청하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제주항에 도착해 있었다. 그때는 제주가 그냥 제주였다. 우린 목포까지 이동한 그 차량으로 제주를 돌았고 다시 제주에서 배로 목포로 갔다. 그때의 여행이 기억에 안 남는 이유는 여행의 세계로 이동하는 중간과정이 너무도 지지부진하고 길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긴장감 있고 긴박하게 여행 캐리어를 끌며 여행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런 숨 막히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느새 제주도가 창문 너머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제주의 모습이 대략 눈에 보인다. 제주도의 동쪽, 삼양 해수욕장에서 월정리까지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그 자태를 드러낸다. 저 멀리 듬성듬성 몇 개의 오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한라산이 구름들 사이로 자취를 드러냈다.

이번 여행은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소에서 조리가 가능해서 웬만하면 식사를 해 먹으려고 한다.

일정을 길게 잡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타이트한 계획을 세워 미션을 수행하듯 여행을 하는 건 안 한만 못하니깐. 소형차 한 대와 재즈 그리고 책 한 권이 이번 여행의 주인공이다. 언제나 그렇듯 제주의 구불구불하면서 부드러운 곡선의 도로는 재즈의 선율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처음 운전해보는 소형차는 은근히 운전하기가 편하고 도로 폭이 좁은 제주와 찰떡궁합이다. 재즈만큼이나.

폴 데스몬드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색소폰 소리와 함께 늘 그랬듯 제주 동쪽의 해안선 도로를  달렸다. 마음에 드는 바닷가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거침없이 해변가로 달려갈 요량이었다. 이미 반바지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기에 그냥 뛰어들기만 하면 됐다.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며 여러 번 해변가를 지나쳤다.

숙소가 가까워질수록 몸을 담글 해변가를 결정해야 했다. 지나쳐 왔던 해변가로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자림로 들어가기 전 핸들을 급하게 꺾어 마지막 해변가로 들어섰다. 인적이 드물고 소박한 해변가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급하게 세우고 비치타월 하나를 몸에 두른 체 바다로 뛰어갔다. 고운 모래들이 발바닥에 밀리지 않으려 단단하지만 부드럽게 서로 엉겨 뭉치고 있었고 눈앞에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연한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화창한 하늘만큼이나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서 뛰어들라고 유혹하는 바다는 주저할 이유가 없을 만큼 매혹적이고 순수했다. 바다를 장식하고 있는 검은 현무암은 영실의 머리칼처럼 시커멓고 단단해서 어서 그것을 밟고 바다의 심연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7월 한 여름이어서 그런지 바닷물은 적당히 차가웠고 시원했다. 몇 번의 발걸음을 떼고 난 후에 몸을 바다로 내던졌다. 그리고 팔을 여러 번 휘저어 등대가 보이는 해변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한가운데서 두 팔과 양다리를 벌리고 테왁처럼 둥둥 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에 누워 있었다. 제주 하늘은 눈부시게 아니 강렬하고 뜨거웠다. 파도도 적당히 나를 흔들며 반겨주는 것 같았다. 처음 온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해변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해변가를 둘러싸고 있는 편의점과 도로 사이에 표지판이 보였다.

"평대 해변"

평대 해변.. 아, 영실이 바이크를 해안도로에 내팽개치고 뛰어들었던 그 바다. 맞아, 숙소 근처였지..

흩어진 솜사탕 마냥 하얀 구름이 수놓은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영실과 함께 바다 위에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파도가 현무암을 부딪칠 때마다 들리는 철썩 소리와 함께 영실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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