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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24. 2021

소설<알쏭당>

산책


"덕분에 이제는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로스팅을 직접 하는 카페에 가는 맛을 알아버렸어요~

전에는 집 앞에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라테 하나 시켜서 그냥 음료수 먹듯이 마셨거든요, 커피 맛을 몰랐어요~"

키 로스터 1kg에서 사장이 틈날 때마다 콩을 볶는 동네 카페를 단골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싱글 오리진 원두로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의 맛에 빠져 핸드밀과 드리퍼, 주전자 등을 샀다고 말했다.

"퇴근하고 핸드밀로 원두를 직접 갈아서 내려 먹는데, 아마도 일 말고 몸을 사용하는 유일한 시간일 거예요 호호, 정말로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닥 안 한다니까요, 그리고 재즈를 듣죠~"

원래 나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밖으로 자주 돌아다니는 영업직의 특성상 서울 도심에서 더위나 추위를 피해 시간을 때울 만한 곳은 카페 말고는 딱히 없었다. 카페로 자주 피신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실 일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진 셈이다.

"다행이네요~도움이 되었다니깐, 뭐 행복이 별 거 있나요?  암 진단받고 항암 치료하는 동안, 대략 8개월? 9개월? 그 기간 동안 커피를 못 마셨어요, 항암 치료할 때 의사는 마셔도 된다고 했는데 한번 마셔봤는데, 바로 설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안 먹었죠, 아직도 그날이 선명해요~치료가 다 끝나고 단골 카페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데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먹던 커피가 왜 그리 맛있던지, 맛있는 걸 떠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무슨 생각?"
"대마초나 마약을 하는 이유가 기분 좋으려고 하잖아요~ 하면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기분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커피, 술 같은 걸 오랫동안 못 먹게 하다가 어느 날 먹으면 아마도 엇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하하"

"대마나 마약을 해보셨어요?"

정말로 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한 건지 아니면 농담으로 물어보는 건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뇨~하하하, 아, 그거 아세요? "

"뭐요?"

"제가 암 진단받기 몇 개월 전부터 그 좋아하는 커피가 몸에 안 받더라고요, 당기지도 않고 먹으면 설사하고,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때 암세포가 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죠,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병원 바로 옆 배드에 있던 50대 초반의 남자도 맥주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대여섯날은 맥주를 안 마시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아했데요, 그런데 암 진단받기 몇 개월 전부터 그 좋은 맥주가 한 모금도 안 넘어가더래요, 나도 그랬거든요, 커피가 맛이 없다고 느껴서 단골 카페 사장님한테 여러 번 물어봤어요, 로스팅 방식을 바꾼 게 아니냐고, 사장님은 갸우뚱하며 바뀐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둘은 동시에 쳐다보며 말했죠, '아~ 좋아하는 음식이 더 이상 맛있게 안 넘어가면 몸에 이상이 온 거구나 '라구요 크크"

아버지뻘 되는 환자들 사이에서 꽤 젊은 축에 속했던 남자와 나는 수술도 비슷한 시기에 했고 항암도 같이 시작한 엄연한 병원 동기였다. 그와 나는 링거를 꼽고 병원 이곳저곳을 산책하듯 돌아다녔는데 대화의 시작은 항상 '왜 암에 걸렸을까'였다. 그는 암 진단받기 얼마 전에 자신이 직원으로 일하던 회사를 물려받아 전문경 연인이 되었고 어려워진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고 했다. 그는 인정하진 않았지만 직원에서 사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중압감과 부담감이 있었을 거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나보다 열 살은 족히 많았던 그는 왜 회사를 인수해서 사장이 되었냐는 나의 물음에 타이르듯 말했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중간한 위치에 있으면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나도 그런 제안이 왔을 때 레벨업 할 기회라고 생각했지, 물론 사장이 돼서 수주를 따와야 하는 입장이 되니 직원일 때보다 스트레스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암에 걸린 건 아닐 거야"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도 어쩌면 자신의 선택이 암이라는 결과로 돌아온 것을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은 그것이 명백한 진실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꺼려하거나 어려워하는 법이니깐.

나에게 암 종양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협진을 위해 병실에 들어오는 의사와 수술을 집도했던 전문의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명쾌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유전적인 요인, 생활 습관, 면역력의 약화, 술 담배 등, 영향이 있을 테지만 콕 집어서 어떤 이유라도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암에 걸리는 이유가 한 가지라면 그것만 조심하면 될 테니깐. 하지만 내게 암이란 인생에서 제일 건강하고 행복한 시절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등 뒤에서 내리꽂은 칼과 같은 것이었다. 너무도 행복해서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걸까. 영실을 만나면서도 다른 여자와 자고 싶었던 건 아마도 넘치는 정욕 때문이었겠지. 영실과 헤어지고 반년이 지나고 암 진단을 받았으니 벌 받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암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녔으니 어쩌면 영실과의 행복한 순간에도 암이 생겨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라니 마니아님~ 오늘도 가시나요?"

담장을 타고 덩실덩실 매달린 포도나무 마냥 등과 어깨를 덮은 영실의 새카만 머리칼을 떠올리고 있을 때쯤 그녀의 목소리가 담을 타듯 귓가에 들려왔다.

"오늘은 저도 데려가 주세요, 고라니를 보고 싶네요~"

글 쓰기라는 취미, 핸드드립 커피, 재즈 그리고 고라니까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나랑 친해지고 싶어 일부러, 아니면 진심으로 궁금한 걸까.. 이쯤에서 선을 긋는 게 맞겠지, 어차피 연인으로 발전할 관계가 아니라면 결국 시절 인연이 될 테니깐,

"아.. 저희 집 근처로 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 힘드실 텐데요.."

조심스럽게 거절의 뜻을 표현했다.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듣겠지..

"괜찮아요! 어차피 낼 쉬는 날이고 할 일도 없고요 호호~"

아차 눈치가 그렇게 빠른 사람은 아니었지, 음.. 좀 더 세게 거절을 했어야 했나.

"일어나요~ 가요~"

갑자기 그녀가 가방에 주섬주섬 노트북을 넣더니 서두르라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녀의 옆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핸드폰을 두고 가시면.."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부터 둘의 전화기는 소란스러운 카페와 상반되게 매우 한산하다는 것과 대화에 집중하느라 핸드폰을 들쳐볼 여유도 없었다는 사실. 그동안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사람과의 대화가 고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실과의 추억이 계속 떠오르는 걸 보면 아직은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의 공간은 남아있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특유의 엉글엉글한 눈으로 어서 고라니가 있는 숲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매번 가는 산책길을 누군가에게 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위안을 하며 일어났다.

이제 그녀의 엄마는 의례 저녁을 먹고 오는 걸 알고 있는지  연락이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더 우울한 건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전화기는 한가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카페 문을 열고 나오며 문득 어쩌면 우리는 처지가 같은 외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종류만 다른,

내가 어딘가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자발적 외톨이라면 그녀는... 아직 그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진짜 외톨이 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산책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은 외톨이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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