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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24. 2021

소설<알쏭당>

산책


지난여름, 수마(水魔)가 지나간 자리는 마음이 아팠다. 강이 넘치다 못해 공원 산책로를 덮쳤으며 그곳을 감싸고 있던 자연은 폐허가 됐다. 강의 상, 하류에서 흘러들어온 온갖 잡동사니가 버드나무와 수크령들 사이로 걸터 있었다. 용케 살아남은 나무들도 있었지만 버티다 못해 휘어진 나무는 산책로를 막기도 했고 서로 안고 뒤엉켜  휩쓸리지 않고 버티다 뽑힌 나무들도 있었다. 한동안 쳐다 보기가 괴로웠다. 무성하고 짙은 푸르름을 자랑하던 지난여름 자연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사이에 노란 짐볼이 보인다. 어디서 흘러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과 짐볼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 짐볼이 놓여 있는 자리는 고라니 가족이 풀을 뜯어먹고 뒷다리의 건강함을 자랑하던 그들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산책로에서도 검은 그림자로 보이는 고라니들을 귀신처럼 찾아냈다. 하루는 쫑긋한 귀를 세우고 나를 바라보는 고라니를 발견하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우린 한참을 그렇게 쳐다봤다. 작은 소리와 행동에도 예민한 고라니와 눈을 마주하기 위해선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야 했고, 숨소리도 죽여야 했다. 순간 산책로의 공기에 적막함이 흘렀다. 팔당대교 아래를 뒤덮고 있는 드넓은 공원을 자기들의 영역으로 구축한 고라니들의 동선도 대략 알 것 같았다. 녀석들은 공원의 한 복판 널따란 수풀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강물 근처의 습지의 나무 덤불 사이로 사라졌다. 물에 친숙한 고라니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집이었다. 대략 몇 마리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발밑에서 첨 보았던 고라니 새끼는 제일 막내였고 위로 형, 누나들이 세 마리 더 있었다. 그리고 건장하고 힘센 놈 두세 마리가 정신없이 풀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 목격했으니 대략 여덟 아홉 마리가 공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 매립지처럼 변한 자연에서 한동안 고라니들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 갔는지 아니면 예전 같지 않게 더럽혀진 이곳을 떠나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고라니 가족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잠자리에 누우면 고라니 가족이 가시덤불 같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서로의 몸을 포개고 자는 상상을 했다. 폭우가 갑자기 쏟아지면 녀석의 잠자리를 걱정하기도 했다. 난 왜 자꾸 고라니들이 보고 싶고 생각나는 걸까.

이놈들이 넓은 자연을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가 벅차올랐다. 그 감정은, 재즈로 표현하자면,  "LOVE FOR SALE"에서 피아노 전주가 끝나자마자 캐논볼 애덜리의 색소폰 소리가 치고 들어올 때의, 짜릿함 같은 것이었다. 날씬한 다리와 연결된 매끈한 엉덩이로 폭발적으로 뛰어오를 때의 생동감은 가슴을 때리는 재즈의 선율만큼 아름다웠다. 아니 그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하늘 아래  예봉산이 그 자태를 드러냈을 때, 강물의 출렁임이 빛에 반사되어 일렁임으로 바뀔 때의 그것과 사뭇 비슷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내가 간절히 갖고 싶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산책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녀석들이 출몰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해가 지는 초저녁, 녀석들은 뜯어먹을 풀을 찾아 자연에서 산책로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고라니들은 강을 끼고 있는 자연에서 산책로로 넘어와 풀을 뜯어먹었다. 밤이 되면 차가워지는 강의 온도 때문에 잠들 수 없었을 것이고 산책로를 덮고 있는 무성한 억새풀은 눕기에도 적당하고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아 유용했을 거다.

드디어 보름달이 선명하게 수놓은 어느 날 밤, 공원 한복판의 억새풀 사이를 사정없이 뛰어노는 녀석들을 발견했다. 언덕에 올라 고라니들이 지들끼리 장난을 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염려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을 녀석들의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참말로 다행이었다. 아무도 산책로를 따라 하얀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풀을 타고 고라니들이 서핑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하겠지.

혹여나 알고 있더라도 알고 싶지 않다. 나만 알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건 무슨 마음일까...


결국은 말해버렸다. 결국 글쓰기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것' 은 산책을 하는 것이었고 산책은 고라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산책과 고라니, 산책 중에 만나는 고라니,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 분위기가 왜 이러지.. 조용하다. 강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라니의 생사를 확인한 거죠?"

"네"

"다행입니다"

너무도 진지한 강사와 나의 문답을 듣던 모임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크게 한바탕 웃었다. 허허, 나도 그들과 같이 따라 웃었다. 약간은 헛웃음이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의도치 않았지만 나로 인해 웃고 있을 때 같이 따라 웃지 않으면 이상해질 것 같은 그런. 허허.

"어디길래 고라니들이 그렇게 많아요?"

"우리 동네도 뒷산 오르면 가끔 봐요~"

"생각보다 도심에 많더라고요~"

"산에서 내려오는 거 아닐까요?"

"노루랑 고라니가 다른 거예요?"

오고 가는 대화 속을 뚫고 들어 온 그녀의 물음에 방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네~다릅니다. 처음엔 나도 녀석들을 봤을 때 '도심에 노루가 있네'라고 착각했었는데 웬만해선 노루는 육지에 거의 살지 않는다고 보아야 해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서식한다고들 하고  물론 사향노루나 산양 노루가 강원도의 험한 산기슭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노루는 제주도에서만 살고 있죠. 그리고 제주도는 세계적인 노루 서식지로 유명하고요.

멀리서 보면 구분이 안 가지만 자세히 보면 달라요, 저도 첨엔 헷갈렸어요, 제가 보니깐 고라니는 얼굴에 비해 귀가 훨씬 커요 음 그리고 뿔이 없죠, 노루는 암컷은 없지만 수컷들은 큰 뿔을 갖고 있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루 궁둥이라고 하는 엉덩이의 흰색 반점! 그게 없죠 고라니는, 음 그리고 송곳니가 살짝 나와있죠 고라니는.. 또 몸집이 더 작아요 노루보다, 비슷하지만 다르죠"

모임 사람들이 일제히 "아~"하고 합창하듯 소리 냈다. 그때부터 모임 사람들은 나를 고라니 아빠, 고라니 박사, 그녀는 고라니 마니아,라고 불렀다.


글쓰기 모임이 끝나면 당연한 의식처럼 카페를 들려 그녀와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정도 많다고 했는데 주민등록증을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게 사람의 나이 아니던가. 외형을 통해 나이를 가늠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무래도 비교 대상이 있을 때 일 거다. 글쓰기 모임은 그래서 나이를 숨기기엔 안 좋은 여건인 건 분명했다. 주로 직장인으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이제 막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서부터 30대의 여성들이 제일 많았고 , 남성은 아무래도 나를 포함해서 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을 것 같은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 이렇게 둘 뿐이었고, 40대의 주부가 한 명과 그녀였다. 분명한 건 30대의 직장인들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일단 노랗게 염색한 머리가 그것이었다. 40대를 훌쩍 넘기면서 새치가 나기 시작했을 거고 염색을 염두하고 있다가 이왕 하는 거라면 탈색을 해볼까 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녀의 말대로 최근에 안 좋은 일들을 겪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만했다. 여자들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스트레스를 푸니깐. 그래서 그런 걸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얘기를 주로 글에 쓰는 40대 중반의 주부 옆에 그녀가 앉으면 나이대는 비슷한데 , 어울리기 쉽지 않은, 지구 상에서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독특함이 느껴졌다. 이혼과 죽음을 쉽게 말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음~ 전에는 커피를 안 마셨어요, 덕분에 커피 향을 들이마시고 음미하면서 마셔요, 그럼 행복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녀는 뭉글뭉글 올라오는 커피잔에 코를 박고 뿌여지는 안경 렌즈는 안중에도 없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밑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피부는 탄력을 잃고 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미소는 아직까지 소녀 같았다. 그녀의 미소를 보니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십 대 주부와 같이 있을 때 느껴지던 이질감을,

"커피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 하하, 아무튼 다행이네요.."

연상을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이와 이혼경력을 떠나 그녀를 이성으로 좋아할 이유도 없었다. 외모적으로든 상황적으로든 그녀는 내가 선호하는 이상형은 아니었다. 영실처럼 검은 흑발이 등까지 흘러내리지 않았고 아담하고 가려린 몸을 거스르는 당찬 결기도 없었다.

"아~추천해준 노래 좋았어요! 커티스 퓰러도 들었어요~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이거 좋던데요,

그런데 트럼펫 연주자가 아니라 트롬본이에요"

"네? 아 커티스 퓰러가 트럼펫이 아니라 트롬본? 주자였군요"

그녀는 노란색 단발머리를 하고 눈동자를 가린 뿔테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소리가 달라요~"

"그래요? 몰랐어요~그동안 트럼펫인 줄 하하"

그녀는 한번 다시 들어 보라고 이어폰을 건넸다. 그리고 쳇 베이커의 트럼펫 소리도 같이 들려줬다. 달랐다.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다르게 들렸다.

" 무언가 웅장하면서 중후하다고 해야 하나요, 트럼펫은 명확하고 직선적이라면, 트롬본은 넓고 감싸는 느낌..

트럼펫은 좀 더 즉각적이고 경쾌한 거 같아요"

그녀는 동조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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