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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22. 2021

소설<알쏭당>

산책


나는 아직도 한참을 먹어야 했지만 그녀는 추어탕을 정말로 들이마시듯 금세 먹어 버렸다.

"괜찮아요~저 원래 밥을 빨리 먹어요"

눈치를 보듯 그녀 앞 초라하게 남은 빈그릇을 쳐다보는 날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언제 그렇게 허겁지겁 먹었냐는 듯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의 남녀가 '엄마'하고 전화를 동시에 받는 걸 생각하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삼십 대든 육십 대든 모름지기 모든 자식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소가 나왔다.

" 왜 웃어요? 하"

"아니요 하하, 아까 엄마한테 둘 다 전화 온 게.."

"아, 이혼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어요.. 어디 갈 데가 있어야죠, 정말 아버지랑은 같이 살기 싫었는데..

어서 빨리 재산분할 소송이 끝나야 독립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상대로 그녀는 이혼 후 부모님 집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도 병치레를 하면서 원룸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갔으니깐. 핸드폰에서 살짝 들려오는 그녀의 엄마의 목소리에서 암환자 아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엄마의 염려가 느껴진 건 우연이었을까.  추어탕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는 것도 자신의 심정을 담은 상대의 글을 읽은 후라 그런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죽고 싶다 라고 말하면서도  담담했던 그녀는 추어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역시 담담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왜 푹 숙이고 있는 것처럼 처량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문득이라고 말했지만 암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 싶어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 듯 어쩌면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지난날을 돌아보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 곡 하나 추천해주세요~"

이제 막 추어탕 한 그릇을 비우고 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그녀가 그렁그렁한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까 재즈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순풍 산부인과도 좋아하고 재즈도 좋아하고

원래 음악 듣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아까 존 콜트 레닌이라고 했던가요?"

맞다. 순풍산부인과도 좋아하고 재즈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한다고 했던가. 인간의 지질함을 드러내는 순풍산부인과를 좋아하고 로스팅을 직접 하는 카페가 아니면 잘 가지 않는다고 했었지. 무엇보다 암에 걸리고 난 후의 심정을 재즈 취향이 변한 걸로 비유했던 것 같다. 스탄 게츠에서 존 콜트레인으로.. 약간 허세가 있어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뭐 사실 그러니깐. 아프고 나서 재즈를 더 많이 듣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존 콜트레인이요 , 재즈를 입문용으로 존 콜트레인 보다는 커티스 퓰러가 나을 것 같은데요. 저도 최근에 듣는데, 아트 블래키 재즈 메신저스 출신이죠, 아, 아트 블래키가 낫겠네요."Moanin'" 들어 보세요"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귀를 쫑긋 세우며 아. 트. 블. 래. 키 하면서 폰에 저장을 했다.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런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몸이 쭉 늘어져서.. 소파에 누워 맥주 한잔 마시면 금세 잠들어요, 불면증엔 힘든 일이 제격이라니까요"

휴 하고 한숨을 쉬는 그녀를 마주하고 있으니 거북이처럼 굽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오래 봐서 거북목으로 휘어진 걸까? 아니면 그동안 안 했던 육체노동을 하면서 몸이 상한 걸까?

"불면증이 있어요?"


수술 후 식사를 재개했지만 아직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그랬는지 며칠 밤 음식을 먹는 족족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고 나면 시원한 보통의 구토와는 달랐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힘이 빠지고 발끝과 손끝이 찌릿하며 쓰러졌다.  수술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라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그때 태어나서 첨으로 엄마의 손을 먼저 잡았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엄마의 손은 너무도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걸. 엄마의 손을 잡고 있으면 어느새 고통을 잊고 잠에 들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항상 처방받은 약은 수면제였다. 항암제를 꼽고 배드에 누워 있으면 잠이 도통 오질 않았다. 그제야 내가 처한 상황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5인실 항암 병동에서 나는 제일 어리고 젊은 사람이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무슨 일이야?" 입원을 해서 털래털래 병실에 들어가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어김없이 맞은 편의 중장년의 환자는 원래 그렇게 아팠던 사람처럼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억울하고 분했다. 왜 내가..

불면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다가오는 밤의 전령 같았다.

"뭐 만성 우울증이죠, 오래됐어요, 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죽음이란 말을 쉽게 꺼내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 일거라 생각했다. 항상 그것을 염두하고 사는 철학자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에 물들어 평생을 자책하고 사느라 눈앞에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자..

"상담받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네, 선생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상담을 받으려고 마음먹는 순간이 나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요,

이혼한 것도 숨기지 말고 터놓고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였구나, 이혼 얘길 쉽게 꺼냈던 이유가,

"이런 게 바닥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죠, 뭐 지금은 나름 노력하고 있답니다!"

지금이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두 남녀가 바닥을 드러낸 추어탕 한 그릇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했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글을 쓴다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금요일 밤의 화려한 분위기에 취해 토요일 오후까지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지금 쯤 소파에 파묻혀 재미도 없는 티브이를 멍하니 보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병치레도 좋은 면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아마 아침 회의 시간에 이런 주제를 꺼낸다면 무슨 소릴 들었을까, 팔자 좋은 소리 그만하고 자, 오늘 계약 들어가는 사람? 이러면서 스치듯 지나갔겠지. 하, 저 여자도 나도 비록 인생의 바닥을 맛보고 있지만 팔자 좋은 얘기를 늘어놓으며 만나고 있으니 모든 인생사는 마냥 좋고 나쁘다고 정의 내리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시면 뭐하세요?"

그녀가 창밖으로 고개를 물끄러미 내밀며 물었다. 높다란 빌딩들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고라니들이 이제 슬슬 강가 근처에서 사람들이 다니는 공원 산책길로 넘어 올 시간이었다. 이제는 녀석들의 출몰 시간을 알고 있었다. 한낮에서 오후까지 사람들의 인적을 피해 강과 밀접한 야생의 습지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어둑어둑해지면 슬슬 공원으로 넘어왔다.

'고라니들을 보러 산책을 가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글쎄 꼭 고라니를 보러 간다고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고라니를 보러 간다는 건, 왠지 마지막 남은 가면까지 벗는 기분이였을까,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나만 알고 싶은 어둠속 비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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