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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21. 2021

소설<알쏭당>

산책


첫 모임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만난 건 우연이 었다기보다 서로의 처지가 비슷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주말 한창 나른한 오후, 서울의 번화가에서 약속이 끝난다면 그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이른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 약속을 잡기도 애매한 시간. 서울의 외곽에 사는 그녀 역시 주중 내내 경기도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다가 오랜만에 도심지로 나오면 집에 들어가기 싫었을 테니깐.

솔직히 카페에서 그녀의 모습을 먼저 알아챈 건 나였다. 하지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기엔 오늘 처음, 그것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말로 말하기 민망한 주제를 공유하고 난 이후의 인사는 좀 다른 문제였다.

"어머, 아까..."

성량이 굵고 뚜렷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순간 민망한 나머지 한참을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저 있는 자리는 젊은 애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하"

그녀는 이미 앞에 서 있었고 어차피 내 허락이 없어도 자리에 앉을 기세였다. 아, 네..라는 짧은 허락과 함께

그녀는 "잠시만요, 가방 갖고 올게요~" 라며 재빠르게 짐을 갖고 왔다.

모임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어서 볼 수 없었던 렌즈 안의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렁그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자주 울어서 그랬는지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착하고 순해 보이는 눈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착해 보인다고 하기엔 장난기 가득한 눈인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모임 어땠어요? "

그녀는 가방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며 말을 건넸다. 불과 삼십 분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서로를 바라봤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의 수많은 첫 대면이 있었지만 상대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글을 읽고 만나는 만남은 첨이었다. 그래서였겠지, 그녀도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게, 아니면 그녀는 목소리만큼 호탕한 사람 일 수도 있었다.

"제일 인상적이셨어요~"

나는 손을 공손히 내밀며 그녀의 글을 칭찬했다. 죽고 싶다 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감히 사람들, 오늘 첨 보는 완벽한 타인,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아~ 이혼한 얘기요?"

아니요, 죽고 싶다 라는 감정을 솔직히 말한 거요..

"네 뭐 이혼 얘기도 쉽지 않죠.."

"아~이혼, 아휴 그 얘기하지 마세요, 갑자기 머리 아파지려 하네요"

그녀는 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 소송 중이었다. 이혼은커녕 결혼도 못해본지라 뭐라 이어갈 말도 없었지만 아주 짧은 연애의 이별에도 여파가 있는데 무려 7년간의 법적인 동거 생활 후에 헤어짐이라는 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었다.

"아까 마지막에  드라마 작가? 인쇄를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원래 글을.."

오늘 모임에서 그녀의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감정의 솔직함도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야 하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썼다는 점이었다. 화려한 수사든 담백한  비유이든 사람들은 가면에 뒤에 숨어 민낯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니깐.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자신을 이혼 소송 중인 이혼녀라고 말하고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어느 중견회사의 직원식당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막일이라고 자신의 일을 정의한 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가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거나 이혼 얘기에 눈물을 흘렸다면 신선함은 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담담하게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며 심지어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원래 그런 사람일까, 사람을 쉽게 재단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을 미리 정의 내리고 판단하는 버릇이 생겼거나 원래 그랬을 수도 있다.

"전 남편이랑 헤어지고 인생이 바닥을 친 것 같았죠, 어휴, 실제로도 바닥이었어요, 글쎄 갑자기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그녀는 꺼내기 힘든 자신의 힘듦을 원래 그런 말을 자주 한 사람처럼 쉽게 말했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몸은 좀 어떠세요? 암 얘기 안 했음 몰랐을 거예요, 아마"

신이 나서 자신의 고충을 말하길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던 그녀가 표정을 고치고 심각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살이 좀 빠졌다가 찌는 중이에요, 많이 회복한 거예요"

"아하, 다행이네요, 저도 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네?"

"본인을 찌질하다고 했잖아요, 비열하다고 했었나?"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에 답을 찾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그 사람의 배경, 직업 혹은 주변 사람들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배경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신체 같은 것이고 직업은 , 아시다시피 어쩔 수 없는 생계의 방편 아니던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공의 연장선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또 어떤가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무의미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나. 하지만 내가 지금도 좋아하고 좋아했고 앞으로 좋아하고 싶은 것들에는 내 영혼의 모양이 담겨 있다. 거기엔 적어도 내 영혼이 있다. '순풍 산부인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시트콤으로 분류되는, 아직도 티브이에 재방이 나오면 넋을 잃고 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말로 재밌다.

거기엔 인간의 저열함과 찌질함이 있어서다. 아마도 난 참 찌질한 인간일 것이다...


"아 하, 저열함이요, 드라마 얘기하면서 하, 근데 글을 쓰면서 좋은 점이 우리가 평소에 원래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을 다시금 확인하는 거더라고요"

"어떤 거요?"

"찌질하다, 그 말을 우리가 말하는 순간 누구나 느끼는 단어의 뜻이 있잖아요, 근데 사전적인 의미가 변변치 못하다, 볼 품 없다 처럼 외형에서 품기는 뜻도 있지만 어디에 적응 못하고 겉돌다 라는 의미도 있더라고요.

제가 말하는 저의 찌질함은 후자에 해당되는 거 같아요 하하"

"그럼 저도 찌질한 게 맞네요 하하"

"아 그런가요? 하 어? 전화 온 것 같은데요?"

탁자 위에 놓인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폰 화면 위로 엄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어, 엄마, 밥?"

밥 먹으러 오라는 그녀의 전화 같았다. 아마도 남편과 이혼 후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 같았다.

마침 내 전화기도 울렸다. 역시 엄마였다.

"밥 먹을 시간 됐는데 어디니?"

통화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엄마라는 단어에서 신기하게 교차했다. 우리는 동시에 '먼저 먹어요' 라고 전화기에 말하고 나서 피식 웃었다. 불현듯 그녀와 나는 같은 처지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기라는 공통적인 관심사로 만난 모임 친구로서 이제 막 삶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동지로서 이야기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는 거짓말처럼 동시에 전화를 끊고

"저녁이나 드시러 가실래요?"

라고 동시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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