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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01. 2021

소설<알쏭당>

냄새

누군가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성격이라며 비난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상이 흑과 백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있다면 회색은 때에 따라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미완이었다. 여지가 남아 있지  않는 완성품은 어떠한 매력도 느껴지지 않듯이 회사가 만든 일종의 계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을 수년째 달고 다닌 그를 내가 매력적으로 볼리가 만무했다. 등급의 이름은 숱하게 만들어진 SF영화의 인조인간들을 명명하는 바코드 번호처럼 입에 딱 달라붙어, 실적이 곧 인격이라고 생각하는 몇 명 존재하지 않는, 동료 설계사들과 지점장이  장난 삼아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지점에서 유일하게 최상의 바코드를 갖고 있는 그는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면 어디선가 명령이 떨어져서 움직이듯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아주 또렷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고객과 통화를 했다. 사무실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석고 보드의 나사를,  콧소리와 두성을 적당히 섞은 약간은 방정맞아 보이는 메아리로, 돌려서 해체할 만큼의 간결하고 딱 떨어지는 통화 목소리는 사무실의 누구라도 거슬릴 만한 데 아무도 뭐라 말하는 이가 없었다. 자신의 책상은 통화가 끝나면 돌아와 쉬는 곳으로, 사이보그의 필수 장착품인 넥밴드 형식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가장 먼 팀장 자리로 가서 찍고 다시 거슬러 내려와 제일 끝자리인 내 책상 앞을 서성이며 통화했다. 그나마 지점 초창기 때 2팀 수석팀장이 작정하고, 돌아다니며 통화를 하는 건 에티켓이 아니라고, 물론 불만을 토로하는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 소리 했다고 하는데 돌아오는 그의 말에 찍소리 못하고 깨갱했다는 떠도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도 했다. 그 말인즉슨 '꼬우면 너도 나와 같은 최고의 바코드를 받던가, 그게 아니면 군소리 말고 일이나 해'  뭐 이 정도 수준의.

주워들은 풍문을 상기하며 문득 2 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2팀 팀장도 경력으로나 나이로도 지지 않고 더 따지고 들어갔을 주옥같은 문장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네가 실적이 좋아 등급이 높다고 나한테 하등 도움 되는 게 있니?  이곳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이야,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야지,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통화하는 게 막 창의성이 샘솟고 영업능력이 향상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가서 개인 사무실을 차리렴"

그러나 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 둘을 키우는 2 팀장은 나와 같은 회색이 될 수 없었다. 아마도 지점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동료들은 그의 바코드를 선망하거나 그렇게 되는 것이 목표일 수 있는 같은 종의 인간일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험회사의 영업소는 밥벌이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그것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동안의 영업소의 관리자들이 가장 많이 해 온 말은 "여러분의 소득이 떨어질 위기입니다!", 맞다, 돈을 벌러 왔는데 쓸데없는 잡생각 하지 말고, 돈, 돈을 법시다. 지점장도 소속 설계사가 계약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수수료를 더 챙겨가는 회사의 구조는 어느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촘촘한 거미줄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2 팀장과의 짧고 허무한 언쟁 이후로 바뀐 거라면 지점 사무실을 굵고 지나다니던 그가 그나마 같은 팀원들의 눈앞에서만 얼쩡거리며 통화를 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니깐 같은 팀원들은 당연히 그의 전화예절을 용인한다는 어느 정도의 동의를 갖고 시작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지점에 처음 왔을 때 지점장은 무척이나 흐뭇하게 1팀으로 지정되었다고 통보했다. 강남 노른자위 땅의 건물 12층에서 신입으로 일을 시작하여 , 8층에서 6층으로, 이번엔 4층으로 두어 번의 지점 폐쇄를 겪은 뒤라 무어라 내 뜻을 말할 처지도 아니었을뿐더러 이미 사무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설계사들도 나와 같은 지점 통폐합과 폐쇄를 통해 걸린 운 좋은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랬다. 운 좋다는 표현보다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말이 더 알맞을 거 같다. 

강남역에 하차하면  하루에도 몇 번을 허리춤의 벨트로 단말기로  비싼 땅에서 일할 자격을 검색당하고 강남대로를  제 집 앞마당 드나들듯 오고 간 내 구둣발도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였고 고객을 만나 상품을 제안할 시간에 서로의 흐릿한 색깔을 확인하는 안도감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때였다. 아뿔싸, 지난 역사를 더듬기보다는 현재의 모습이 역사 자체라고 말하는 강남역에서 멈추어 있는 행위는 아직은 공사가 한창인 건물이 완성을 목도하지 아니하고 헐벗은 몸으로 서있는 나태와 수치의 징조였다. 

마음 맞는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허물없던 여자 동료는 넘치는 기운을 살려 점핑 다이어트 사업장을 차렸고 모두가 영업을 하러 나간 사무실에서 홀로 약관을 숙지해야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의 남자동료는 역설적이게도 고객의 민원에 시달리다 오토바이를 장만하고 도시의 밤, 야식의 행복을 전해주는 라이더가 되었다.

"형, 보험업은 사장될 산업이야, 앞으로 AI가 형이 하는 일을 대체할 거라고, 이 일은 너무 단순해,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을 맞댈 일이 없어서 너무 좋아, 난 그냥 고객의 집 대문 앞에 물건만 정확히 두고 오면 된다고~"

동생의 말도 맞았다. 보험 영업은 계약이라는 공격과 보상이라는 수비가 병행하고 있고 고객과 얼굴을 대면하는 감정노동이면서 서울, 경기권과 필요하면 지방 출장도 가야 하는 이동이 잦은 고된 육체노동이면서

도심 사무실에 거처를 두고 있는 직장인이지만 건강보험은 지역 가입자이고 고용보험과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불리는, 그래 아직 미완의 회색지대였다. 택배기사도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므로 동생은 전혀 다른 업종으로 이직한 게 아니었다.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쳇바퀴 돌듯 끝나지 않을 실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느껴졌고 휴,  내쉬는 숨소리에서 차가운 밤공기도 함께 느껴졌다.

농담을 던지면 언제나 웃을 준비를 하고 있는 쾌활한 성정의 여자 동료의 목소리는 하루 종일 고객의 다이어트를 위해 점프를 한 탓인지 결혼과 출산의 중압감 때문인지 목소리가 몰라보게 쉬었고 축 쳐져있었다. 평소 현실적인 성격의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내 안부 인사에 펄쩍 뛰며 말렸다.

"오빠야~밖에 나오면  춥다~그래도 강남역에서 오빠들이랑 일하고 수다 떨 때가 좋았다~"

꿈을 포기하고 보험회사에 온 것도 뻣뻣한 낯선 사람에게 보험 가입을 제안하기 위해 창피를 무릅쓴 것도 모두 종국에는 최악은 면하기 위해서였다. 최상을 꿈꾼 게  아니라 최악이 두려웠던 건 나의 소심한 성격 때문일 수도, 앞보다는 항상 뒤를 돌아보는 성향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고객 리스트는 적어도 앞으로 굶어 죽을 확률보다 좀 더 높은 바코드를 수여받을 기회가 있었기에 쉽게 그만둘 수 없는 형국이었다. 마침 새로운 지점, 새로운 팀에 다다른 것이었다. 지점장은 최초의 면담 자리에서 같이 갈 생각인지 아니면 여기서 일을 그만두고 싶은지 내 뜻을 물어보았다. 그때 만약 일과 단절을 했더라면 장기를 절제하는 큰 수술을 앞둔 비참한 환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을까, 친한 동료들처럼 익숙한 일에 벗어나 낯선 세계로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내 몸을 지켜야 했었나 라는 후회나 미련을 가지기엔 당시 내 경제적 상황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팀장이 나를 팀원들에게 소개해줬던 아침 회의의 내 복장은 정장을 깔끔히 차려입은 초심에서 벗어나 있었고 회사 안에서도 보기 드문 등급을 가진 선배이자 형인 그의 얼굴을 대했을 당시 우러러 보이지도 않았지만 은연중에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다. 

1 팀장은 푸근한 뱃살이 원래 그런 사람인 듯 한 덩치를 하는 사람이었고 예전에 잠깐 같은 지점에서 근무를 했던 나이는 한참이지만 경력은 나와 비등한 설계사였다. 굳이 팀장과의 안면을 떠나 2 팀장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지점의 옆 팀의 팀장이었으니 지점은 강남역의 여러 지점이 통폐합되면서 필터에서 걸러 내린 핸드드립 커피처럼 알짜배기들만 남은 셈이었다. 팀장은 나에게 소개 인사를 하라고 했다. 단출한 구성의 팀원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봤고 소개가 끝나자 그가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행이다~ 동생이라서 하하, 반가워요"

싱거운 농담은 그의 강의에서 느꼈던 딱딱하고 거만한 인상을 어느 정도 지워내는데 일조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연단의 그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지점의 회의실에서 동류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마음가짐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마침 다른 팀보다 팀원이 현격히 모자라 애를 먹고 있던 터라 팀장과 그는 날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여자 친구는? 근데 이제 결혼해야지~"

진부한 질문만이 첫 만남의 어색함을 깰 수 있다고 믿는 팀장은 자신의 배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형~ 꼰대 같아~"

하지만 이내 그의 타박이 돌아왔다. 나와는 한 살 터울인 그는 일찍 결혼을 해서 벌써 초등학교를 다니는 자녀 둘을 가진 가장이었다. 그의 연차를 따져보니 결혼과 아이가 생길 때쯤 일을 시작한 듯 보였다. 

"내 친구들 중에도 아직 결혼 안 한 애가 있는데 즐기면서 재밌게 살더라고"

불룩 나온 배위로 한물 간 베스트 조끼를 걸치고 있는 팀장에 비해 그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니트와 은색의 안경테를 걸쳐 좀 더 깔끔해 보였고, 꾸준히 운동했는지 누가 보아도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건물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들과는 어딘가 달라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특성상, 높은 등급의 대다수 설계사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50대 이상이었고 성비로는 여성 설계사가 아무래도 많은 곳에서 20대 젊은 남자가 일을 시작하여 자리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여타 설계사들과 달리 보였던 이유는 월말 마감을 하루 앞두고 누구나 예외 없이 풍기던 그 냄새를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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