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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02.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총 9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회사의 등급표는, 산책이 글쓰기의 또 다른 이름이듯, 설계사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등급에 따라 월급과 수수료가 차등 지급되고 복지 조차 다른 유형의 포인트가 지급되었다. 

진실은 원래 대하기가 불편하듯 사무실의 동료들은 자연스레 상대를 등급으로 기억하고 회사 역시 그랬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차별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가 달고 있는 등급에 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계약을 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등급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나에게는 , 아득히 멀어 보이는 , 최상 등급을 가뿐히 해내고 있는 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지 혹은 해내고 있는지가 알고 싶었다. 새로운 지점을 옮기고 처음 참석한 지점 회식은 3개 팀의 팀장과 팀원들 그리고 지점을 관리하는 지점장을 한데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지점 내의 파벌 문화를 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형네 팀장 조심해요~ 문제가 아주 많아!"

나보다는 경력과 나이는 조금 어리지만, 지점에서는 매우 드문, 그 역시 결혼을 해서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아빠였다. 그는 회식이 끝나고 우연히 말을 트다 사는 동네가 비슷하다는 걸 알고 택시에 함께 몸을 실은 뒤였다. 

"우리 팀장이 왜?"

아직 지점과 팀을 배정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게  팀장 욕을 하는 그가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술에 얼큰히 취했는지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좌석에 드러눕듯 앉아 있었다.

"팀 비 몰래 해 먹는다고 소문이 파다해요, 형네 팀, 팀 비가 워낙 많잖아"

팀 비는 각 팀이 그 달의 실적을 초과 달성하면 지점장이 팀에게 주는 보너스였다. 팀 비는 팀장이 관리하면서 팀 회식이나 단합 여행 같은 곳에 쓰이기도 하고 팀원들에게 현금으로 지급되기도 했다.

"근데 왜 우리 팀이 팀 비가 월등히 많은 거야?"

그에게 돌아오는 답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질문을 한 이유는 그 형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신기하리만큼 그 어떤 배우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하하, 형네 팀에 이게 있잖아~"

그는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더니 엄지 손가락을 펴서 들이대며 말했다. 마치 최고 등급을 가진 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근데 전에 있던 지점에서도 그렇고 그 정도 등급에 있는 사람들 보통 계약 갖고 장난치질 않나?"

유도 질문이었다. 실제로 등급이 높고 고액 연봉의 일 잘하는 설계사들 중에 ,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흔히들 말하는 부실계약이 많다는 소문이 항상 따랐다. 부실계약이라 함은 실재하지도 않는 고객을 만들어 계약을 하고 본인이 몇 개월 정도 보험료를 내다 해지하는 가짜 계약과 본인과 가족들 계약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해지하는 수법 등 다양했다. 실례로 수백만 원짜리 화재보험이 주소를 따라 가보니 계약내용에 나와 있는 사업장은커녕 허허벌판의 빈 공터였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형~ 그 형 고액 계약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겠어? 아침마다 조회 때 뜨는 거 보면 죄다 10만 원 많아야 20만 원짜리야~어쩔 땐 5만 원 자리 계약을 수십 건 하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아무튼 형네 팀장~"

말 그대로 저 형은 진퉁이니 건드리지 말고 다시 팀장 얘기로 돌아가 말을 이어 나갈 테니 집중하자고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적의에 가득 찬 그의 눈빛은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하자 나로 하여금 택시비를 저절로 내게 만들 만큼 불결했고 당연히 입냄새가 동반했다. 유도질문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떠들어 대는 그의 취기가 싫기도 했지만 아직 내가 겪지 않은 사람에 대해 판단을 강요하는 게 싫었다는 게 맞겠다.

"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팀장에 대한 평가는 내가 겪고 판단할게"

풋내 나는 어린 시절이면 모르겠으나 이제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의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할 나이는 아니었다.  나의 단호한 어조에 약간 술기운이 깬 듯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고 마치 비밀을 말하는 사람들이 예의 갖고 있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문을 열었다.

"형네 팀장 여기 오기 전에 00 생명보험에서 지점장 한 거 알아요? 거기서 사고를 치고 우리 회사로 왔는데...

형도 알다시피, 뭐겠어? 결국 여자 문제 아니면 돈 문제예요..."

하긴 3개 팀이 함께 하는 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은 다른 팀과는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회식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팀에 비해 시끌벅적하지 않은 우리 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터라 그의 말은 팀장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기보다 다른 팀에 대한 안 좋은 첫인상을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팀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던 나는 빌딩 숲 사이로 뻗어있는 강남대로를 훤히 볼 수 있는 옥상에서 다른 팀원들과 교환하는 담뱃불 위로 언제나 뒷다마가 따라붙어왔다. 어느 조직이든 친한 사람들끼리 뭉치는 패거리가 있고 짬나는 시간에 서로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인  뒷다마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보험회사의 영업지점은 좀 달랐다. 

9계단에 해당되는 등급은 각자 달랐지만 그것이 위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고 지점을 관리하는 지점장도 단지 관리자일 뿐 상급자가 아닌 설계사와 내근직 관계여서 그런지 뒷마다의 내용은 좀 더 복잡했다.

"어쩌다 1팀에 간 거야? 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다 한대 물러오는 나에 비해 옥상에 살다시피 하는 중년의 여성인, 자신을 편하게 누나라고 부르라는, 그녀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번 팀 개편에도 둘이 딱 붙어서 말이야"

팀장과 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둘은 언제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곁에서 보아도 서로의 가족관계는 물론 서로의 친구들도 알 정도로 가까워 보였다.

"누구긴 누구야, E1이 지점장한테 장기명이랑 같은 팀 해달라고 말했겠지~"

E1은 최고등급을 나타내는 말로 eternal의 명사 eternalness, 의 약자였고 영원이라는 뜻으로 , 누구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최고등급을 영원히 유지하라는 의미로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항상 따라오는 두 번째 의미는 끊임없는 이라는 constant의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일종의 특혜였다. 하지만 누구도 특혜에 대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한 달에 체결하는 계약은 지점의 나 같은 어중간한 등급을 가진 자의 세명 몫을 거뜬히 하고 있었다. 지점장도 겉으론 농담 삼아 등급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섰지만 아무래도 지점에서 그의 의견을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장기명이가 실적이 되니 등급이 되기라도 하니, 그렇다고 계약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1 팀장은 계약이 없어 자신의 가족 이름으로 계약을 넣고 해지하기를 반복해서 그런지 유지율이라고 불리는 보험계약의 유지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가 현저히 떨어졌다. 유지율이 심각하게 낮은 사람들은 계약에 대한 수수료에 치명적으로 적용돼서 원래 받아야 할 돈보다 적게 받게 되어 여러모로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그럼 형이 직접 팀을 맡으면 되잖아요~ 굳이 장기명 팀장을?"

이전 지점에서도 그랬지만, 위계질서가 뚜렷하지 않은 보험회사의 특성상, 연차가 높거나 소득이 높을 수밖에 없는 등급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팀장을 했다. 그래야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온 같은 설계사들에게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아직 걜 모르는구나 호호"

누나의 말 한마디와 첫인사에서 그의 싱거운 농담을 통해 대략 어림짐작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는 고객과 통화할 때는 제외하고는 크게 목소리를 내며 나서는 일이 없었고 팀장 장기명과는 허물없이 지냈지만 다른 팀 사람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 지점에서 등급이 높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걸 많이 봐온 터라 장기명 팀장과 계속 한 팀에 소속되어 있는 것 빼고는 별다른 요구가 없는, 그는 흔히 말하는 진상의 기운을 덜 풍겼다. 

"그래도 그동안 봐 온 E들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야~좀 깐죽대는 거 빼고는~"

제 딴에는 분위기를 풀려는 건지 아님 웃기고 싶은 건지 그 어느 것도 충족 못 시키고 공허함만 남기는 그의 농담을 깐죽이라고 누나는 정의 내린 듯 보였다. 그가 서울의 하고많은 아파트 중 나의 유년시절과 청춘이 깃든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게 우연 같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를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보험시장은 라이더를 하는 동생의 말대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전 국민 누구나 보험 하나쯤은 가입되어 있는 포화시장이었다. 그리고 최근 실적이 저조한 설계사들을 자회사로 편입시킨다는 명목으로 지점 통폐합을 거치면서 이른바 척박한 환경에서도 굳건히 버텨낸 생존력 있는 설계사들만 남은 것이었다. 그중에도 나도 운 좋게 포함됐지만 생존력은 일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새로운 팀원도 왔는데 남자들끼리 한번 뭉치자~"

장기명 팀장과 그는 평소에도 팀의 여자 동료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물론 어머니 또래의, 연배가 어느 정도 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주 일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 소릴 듣기 싫어하는 이유가 컸다. 

"에휴, 정말로 못해먹겠네~상품이 왜 이 모양이야~이래 가지고 이거 팔겠어?"

라고 누군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팀원들이 동조를 했다. 가끔 나도 끼어서 회사에 대한 뒷다마를 하며 불만을 해소했다. 옥상에서의 뒷다마가 주로 같은 지점의 동료에게 향해 있으면 사무실에서의 상품이나 수수료에 대한 뒷다마는 회사와 일에 대한 푸념이었다. 팀장과 그는 그런 대화를 못마땅해했다. 

"오래 살았으면 잘 알겠네? 동네에서 큰 횡당보도 건너면 거기 치킨집 알지? 거기로 와~"

나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고 서로의 유일한 공통점일 수 있는 아파트에서 친목을 다지고 싶은 이유 일 수 있었다. 팀장과 그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이 모이는 단출한 회식이었다. 

"걔 취미가 낚시인데 너 준다고 회 떠온다고 했어~그놈이 원래 그런 놈이 아니여~"

팀장은 허기가 지는지 입맛을 다시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그런 놈은 아니라는 말인즉슨 팀원들에게 곰살맞게 구는 사람이 아닌 그가 너를 챙긴다는 은유였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뒤늦게 치킨집에 도착한 그는 단골 사장한테 양해를 구하고 방금 전까지 살아움직는 생선을 직접 떠왔다며 허세를 부리며 탁자에 회와 각종 야채를 꺼냈다.

"오랜만에 옛 동네에 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치킨집의 벽면에 수놓은 손님들의 낙서를 보니 규호와 친구들이 군대 휴가 나온 나를 보러 이곳에 모여 생맥주와 치킨을 뜯어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디엔가 스쳐간 청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아 한참을 둘러보았다. 

'2002.6.4일 폴란드전'

"어! 저기 있다!"

나도 모르게 치킨 집이 떠나라 큰소릴 외치고 말았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깜짝 놀라 우리를 쳐다봤다.

"하, 뭐여? 뭐 찾은 거야?"

팀장은 상추에 회를 고이 접어 입에 단숨에 넣으며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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