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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an 29. 2022

소설<알쏭당>

냄새

"하하하"

두성만큼이나 자주 듣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와 함께 형은 배를 부여잡고 물기도 없는 수영장 바닥에 널브러져 헤엄치듯 뒹굴었다. 

"뭐야~자격증 있는 거 맞아? 소리 들었어? 히히"

물 밖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자 몸통 한가운데 연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형원이 형은 다시금 내 배를 살펴보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뻘쭘했는지 같이 따라 웃음을 지었다.

"너무 오랜만에 해서 하하~형 그만 웃고 들어와~"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걸터앉아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들어온 나는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수영장의 물의 깊이는 1.8m로 웬만한 성인의 키보다 크고 생각보다 깊었다.

"야~네가 잡아줘야 해, 수영장이 원래 이렇게 깊어?"

아비가 먼저 들어간 뜨거운 탕 속 온도를 어린 아들이 손가락으로 재차 확인하고 들어오듯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몸을 담그기 시작했다.

"어우 야~"

형은 물속에 몸을 담그자 신음소리를 짧게 낸 후 몸이 가라앉기 질세라 육중한 두 팔을 사정없이 저어 쏜살같이 반대편 물가로 이동했다. 한가롭던 수영장에 파문이 일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형, 하하, 워낙 힘이 좋으니 가긴 간다~영법이 뭐야? 하하"

수영장의 턱을 놓치면 큰 일 난다는 위태로운 표정으로 매달려 있는 형은 물에 흠뻑 젖어 어딘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 한번 해봐~우리 애들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쭉쭉 나가던데"

자유형으로 일단 몸을 풀만도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미 몸은 접영을 하기 위해 물속으로 머릴 처박고 있었다. 조금 힘겹게 몇 번의 접영 동작을 보여주고 반대편에 도착하자 형은 정색을 한 표정으로 이미 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조금 버거워 보인다~"

빈말이라고 멋있다, 잘한다라고 말할 만도 한데 턱에 매달려서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사무실에서나 느껴질 만한 굳은 결의를 비추고 있었다.

"형~ 정말 오랜만에 하는 거야~ 하하"

"어, 그렇게 보인다.. 야, 근데 너 그렇게 물 위에 계속 떠있을 수 있는 거야?"

형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물밑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내 발이 궁금했는지 수시로 눈을 밑으로 내리 깔았다.

"우리 애들도 물 위에서 너처럼 그냥 떠있던데 어떻게 하는 거야?"

가르치기 쉬운 평영부터 알려줘야 할지 아니면 형의 성향상 처음부터 화려한 접영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입영에 관심을 보였다.

"역시 고급 기술은 알아 가지고~이건 생존 수영이라고 하는데~인명구조에서는.."

"어! 그래~ 애들이 생존수영이라고 하더라, 학교에서 그걸 배운데~"

형은 마치 애타게 듣고 싶은 정답을 들은 듯 금세 반가운 표정으로 학구열과 호기심에 불타는 모범생의 얼굴을 띠고 있었다. 순간 그런 얼굴이 어쩌면 형의 진짜 얼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사라는 코드를 처음 내자마자 들었던 형의 강의는 그래서 재미가 없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진 거 일 수 도 있었다. 

"여러분 중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신인들 교육 동영상 자료, 넘겨 보지 않고  끝까지 시청하신 분 계신가요?" 

신입 설계사들을 향해 너희들 중에 아마 한 명도 없을 걸 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형이 말했을 때 이제 막 사회 초년생으로 보험회사에 들어온 남자 동기는 혀를 끌끌 차며 "억대 연봉이라길래 뭐 좀 건질 게 있나 했더니"라고 투덜댔다. 형은 특강 내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는 판에 박힌 말만 늘어났다. 강의 초반 후끈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급속히 식어서 졸고 있는 사람도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아, 진짜?? 학교에서 입영을 배운다고? 세상 많이 좋아졌네~하긴 바다에 나가면 거의 입영을 한다고 봐야지"

"세월호 사건? 그것 때문에 생존수영 위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수영의 목적이 물에서 살려고 하는 게 첫 번째니.. 입영을 할 줄 알아야 구조도 오랜 시간 기다릴 수 있으니깐

그게 맞는 방향이긴 하네"

형은 말이 오가는 와중에도 편하게 물 위에 떠있는 내 모습이 신기한지 어서 입영을 알려달라고 수영장 턱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떨리는 손으로 말하는 듯했다.

"형~ 입영을 하려면 로터리 킥이라고 킥부터 배워야 하는데, 내 손을 잘 봐요~"

내가 떠있는 체로 양손을 들어 올리자 형은 이제는 익숙한 소리로 "오우~"라고 늑대 울음소리 같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양발이 이렇게~이렇게 계속 차주는 거지, 그러니깐 물밖에서 봤을 때는 그냥 떠 있는 것 같은데 물 밑에선

열나게 발을 계속 이렇게? 킥을 하고 있는 거지, 콜? 형 손 줘봐~ 내가 잡고 있을 테니 형이 한번 킥을 계속해봐~"

형은 약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재빨리 숨기고, 군소리 한마디 없이 손을 수줍게 내밀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평소의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얼굴로 혹은 가끔 지어 보이는 영문 모를 땡그란 눈으로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긴장한 티를 역력히 냈다.

"형, 몸에 힘을 빼야 돼~최대한~"

안 그래도 온몸이 탄탄한 근육으로 외피를 두른 형은 물에 떠있기에는 불리하다는 걸 안 사람처럼, 처음부터 자신은 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머리를 수시로 물에 처박았다. 수영장 물을 연거푸 먹은 형의 머리칼이 젖은 미역처럼 달라붙은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어젯밤 화장실을 도배했던 머리카락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형, 내가 잡고 있으니 걱정 말고 몸에 힘을 쭉 빼봐~ 일단 몸에 힘부터 빼야 그때 킥을 할 수 있어~"

내 손을 꼭 쥐고 힘겹게 물 위에 떠있으려는 의지에 찬 꽉 다문 입술과는 별개로 눈앞에서 가까이에서 본 형의 얼굴은 사무실에서 항상 봐오던 승리의 얼굴을 한 전사가 아니라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와 같이 그 무엇도 아는 게 없다는 순백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무엇이든 다 잘할 수는 없는 법인데 그는 단지 수영을 못한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인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누구나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행여 그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기면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피할 만도 한데 형은 굳이 내 손을 잡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아무런 가면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와이프랑 고등학교 때 만나서 결혼까지 한 거지 뭐"

어젯밤, 남자들끼리 있으면 의례 꺼내놓는 이성에 관한 대화는 형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시작도 하지 않고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럼 평생 동안 형의 인생에서 여자는.. 형수님이?"

믿기 어렵다는 나의 질문에 씁쓸한 건지 허무한 건지 알 길이 없는 형의 텅 빈 목소리가 수영장 물을 하염없이 먹었다 뱉는 모습과 함께 이상하리만큼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형~담배 한 대 필래요?"

한 시간가량 물놀이를 하고 수영장 썬배드에 형과 나란히 누워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니 몸이 축 늘어졌다.

"형~아침 운동하고 에스프레소 한잔에 담배 한 대~죽이잖아~기다려봐요, 저기 직원 보인다"

"야~난 담배 입에 대본 적도 없어~ 커피는 좋지~"

흰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찾아가 베트남 화폐 200,000동 한 장을 건네자 유니폼 색상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로 성냥갑과 에스프레소 두 잔을 갖고 왔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 배드에 걸터앉아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운동 후 전해오는 기분 좋은 근육통을 느끼며 아침을 만끽했다. 

"형~ 너무 좋다~ 집 앞에 있는 개인 수영장에서 아침 수영을 하고 이렇게 햇살 받으면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에~담배 한 모금~캬~"

"넌 물욕이 없지?"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형과의 대화는 항상 개연성이 연결되지 않고 차선에서 깜빡이도 키지 않고 끼어드는 차량 같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 무렵 장기명 팀장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보고 소릴 지르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조식 먹어~ 늦게 가면 맛있는 거 떨어져~!"

"에휴~저 밥충이~"

에스프레소 잔을 수영장 바닥에 내려 놓은 형은 그제서야 익숙한 웃음을 머금은 장난어린 표정을 슬며시 지으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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