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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Oct 11. 2016

네가 나의 첫 외국인 친구야, 알렉세이

쿠바 산티아고데쿠바 (September 2013)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우리에겐 멀기만 한 쿠바에 도착한 후 아직도 사회주의의 냄새가 물씬 나는 폐쇄적인 공항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잠시, 아바나(Habana)에서 뜻하지 않게 한국인 여행자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는 했지만 흥에 겨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아바나를 떠나 혼자 오롯이 쿠바를 느낄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13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쿠바 섬의 동남쪽 끝에 있는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로 향했다. 


역시 쿠바 음악의 본고장은 달랐다. 물론 아바나도 길거리를 걸으며 어렵지 않게 살사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데쿠바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게다가 내가 묵는 까사(Casa)의 바로 옆에 까사 데 라 트로바(Casa de la Trova)와 파티오 아르텍스(Patio Artex)가 있어서 나는 산티아고데쿠바에 머무는 동안 24 시간 짙은 음악의 향기에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까사 데 라 트로바

천성이 여행자인 신체를 가진 덕분에 긴 야간 버스 여행에도 피곤을 모른 채 까사에 짐을 풀자마자 음악 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까사 데 라 트로바에서 카를로스 Carlos와 알렉세이 Alexei를 처음 만났다. 나를 한참 동안 몽환 상태에 빠뜨렸던 노부부의 트로바(Trova) 선율에 취해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카를로스 Carlos가 조심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트로바 좋아해?”

“아, 응. 실은 쿠바에 오기 전엔 살사만 알았어. 트로바니, 손(Son)이니 이런 건 알지도 못했는데, 여기 와서 많이 듣다 보니 너무 좋아졌어!”

“사실 이 시간에는 옆에 있는 아르텍스에서 하는 공연이 더 좋아. 같이 보러 갈래?”

카를로스 Carlos와 내가 음악에 대해서 한참 떠들 동안에도 왠지 모르게 수줍어하는 알렉세이 Alexei는 우리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카를로스 Carlos와 알렉세이 Alexei는 친구였지만, 나이 차는 꽤 났다. 카를로스 Carlos는 한 아이의 아빠로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알렉세이 Alexei는 이제 20대 초반의 엔지니어였다.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옮겼고,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와 콘트라베이스 실력을 가진 리더가 이끄는 공연에 흠뻑 빠져 오후 내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심지어 이런 수준 높은 공연이 무료라니! 음악 하나만으로도 쿠바에 온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첫 날 함께 들었던 아르텍스 공연

쿠바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음주량이 평소 한계치를 훌쩍 넘고는 했는데, 그것에 대해 물보다 술이 더 쌌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여행 내내 어디를 가더라도 흥겨운 쿠바 음악의 리듬이 언제나 내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내 마음도 항상 들썩였으며, 그 때문인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곳이 이 곳, 쿠바이기 때문이었다. 카를로스 Carlos와 알렉세이 Alexei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르텍스에서도 음악에 집중한 채 맥주와 럼, 달짝지근한 쿠바 와인까지 이들이 내어 주는 술을 계속 마시다 보니 늘 그렇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덥디 더운 산티아고데쿠바의 날씨에 내 얼굴이 그만 빵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까사로 돌아가 에어컨 바람 아래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승애, 그럼 오늘 밤에 더 좋은 공연을 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 번 가 볼래?”

“그래? 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관광지 같은 곳보다는 쿠바 사람들이 진짜로 음악을 즐기는 곳에 가보고 싶어.”

“잘 됐네. 함께 가려던 곳이 그런 곳이야. 까사 데 라스 트라디시오네스(Casa de las Tradiciones)라고 네가 머물고 있는 까사에서도 멀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 공연은 9시 시작이야.”

“좋아. 그럼 이따가 8시에 다시 이 곳에서 만나자.”

“그래. 푹 쉬고 나와.”

처음 집에서 떠날 때는 늘 혼자 나선대도 결국 여행지에서는 혼자인 시간이 많지는 않다. 쿠바에 와서 사귄 한국 여행자들이 내 곁에 없으니, 나에겐 이제 쿠바 친구들이 생겼다. 저녁이 되어 그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까사 데 라스 트라디시오네스는 주택가 안에 있어서 여행자들은 잘 찾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온 손님들 역시 동네에서 가볍게 산책 나온 듯한 차림의 편안해 보이는 쿠바 사람들이 전부였다. 게다가 서로서로가 모두 친구였다. 그리고 역시나 귀를 사로잡는 연주와 노래로 나를 감동시키는 공연팀은 나를 안심시켰다. 사실 거의 디스코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댄스음악으로 변질되어 버린 아바나의 음악에 내심 조금은 실망했었기 때문이다. 아직 쿠바의 음악은 살아 있구나! 

음악과 춤이 없으면 쿠바가 아니다

살아있는 음악의 소용돌이 속에 쿠바 사람들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없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짝이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환상적인 리듬감과 현란한 골반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들썩하지만 결국에는 나무 막대기 같은 내 몸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의 질투 어린 눈빛을 본 걸까. 카를로스 Carlos와 알렉세이 Alexei가 내 손을 잡아끌어냈다. 

“승애, 이럴 땐 춤을 추는 거야.”

“나는 정말 춤을 못 춘다고. 그리고 살사를 춰 본 적도 없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나만 따라와.”

말로는 불편해하며 거절하는 듯했지만 내심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춤 선생님인 카를로스 Carlos의 리드가 빛을 발했고 수줍어하기만 하던 알렉세이 Alexei도 춤출 때만큼은 정열적인 쿠바 사람이 확실했다. 그들이 잡아 준 손에 의지하여 조금씩 발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스텝도 엉망이고 그들만큼 멋진 춤사위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나는 신이 났다. 그저 음악에 내 몸을 내맡기면 그만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곳에서는 지독한 몸치라며 엉망인 내 춤을 조롱하지 않는다. 그냥 흥겹게 함께 춤을 출 뿐이었다. 내 손은 카를로스 Carlos에서 알렉세이 Alexei로, 알렉세이 Alexei에서 다른 친구에게로, 그리고 또 다른 친구에게로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을 추었다. 쭈뼛쭈뼛하던 나는 어느 틈에 진심으로 신이나 몸이 뜨거워져 땀이 온몸을 적실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한 채 산티아고데쿠바의 한밤을 온몸을 던져 즐기고 있었다. 

“승애, 잘 추는데?”

 “춤추는데 부끄러워할 것 없어. 그냥 음악을 느끼고 즐겁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곳에 있던 쿠바 친구들이 앞다투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렇게 기쁨과 흥분에 빠진 채 산티아고데쿠바의 첫날밤이 지나고 있었다. 


지난밤 알렉세이 Alexei가 까사까지 나를 데려다주었고, 우리는 다음 날 함께 산티아고데쿠바의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까사에서 아침을 먹고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알렉세이 Alexei가 데리러 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걷다가 지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 돌아보기도 하고, 공원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산티아고데쿠바를 여행하는 날이었다. 알렉세이 Alexei라는 든든한 친구가 옆에 있었기에 나는 겁날 것이 없었다. 산티아고데쿠바에서는 현지인들도 굉장히 싼 값에 오토바이 택시를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곧 부서질 것 같은 트럭을 개조한 버스가 가끔 다니기는 했다. 

고난이도 트럭버스 체험기

“알렉세이 Alexei, 나 저 버스 타보고 싶어.”

“저걸 타보고 싶다고? 진심이야?”

잠깐 당황하는 듯했던 알렉세이 Alexei는 내가 위험하고 불편할 것을 걱정하면서도 호기심에 눈이 반짝거리는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하든 하루를 살더라도, 현지인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도 산티아고데쿠바의 트럭버스는 가장 최고 난이도의 탈 것이었다. 일단 트럭 뒷부분으로 올라타야 하는데 다리가 긴 쿠바 사람들 생각만 한 것인지 나는 올라타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게다가 제대로 정차하지 않아 슬금슬금 움직이는 트럭에 올라타야 해서 꼼지락거리는 나를 거의 알렉세이 Alexei가 끌어올려줬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좌석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처럼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버스 안에서도 그는 나의 손잡이가 되어 주었고, 이리저리 밀려 다른 사람들 사이에 파묻히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트럭버스를 체험하고 났더니 손수건을 짜내야 할 정도로 우리는 땀범벅이 되었다. 바로 근처에 산티아고데쿠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우리만 더운 건 아니었는지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줄이 어림잡아 500미터는 서 있는 듯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알렉세이 Alexei와 이야기하면서 기다리니, 기다리는 시간도 금방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천천히 걸어 우리는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알렉세이 Alexei가 살고 있고, 내가 머물고 있는. 한 발짝 떼어 걸을 때마다 길거리에는 알렉세이 Alexei의 친구들이 가득하다. 쉴 새 없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나를 소개하고. 덕분에 나는 진짜 이 곳이 우리 동네가 된 듯 걷다가도 마주치며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 번 만나고도 나를 반갑게 알은체 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이 곳이 정말 포근해졌다. 그렇게 나는 이 곳에, 나의 쿠바 친구들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내가 동네에 맛있는 카페를 찾았는데 커피 한 잔 먹고 갈래?”

“승애 네가 맛있는 카페를 소개해 준다니 벌써 여기 사람 다 된 거 같은걸?”

우리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넣어 쿠바의 방식으로 커피를 세 잔씩이나 마시고는 헤어졌다. 내가 익숙해져 가는 만큼 우리는 쿠바 커피처럼 진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눈을 뜰 수 없게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데쿠바에 와서도 새로 사귄 쿠바 친구들과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나도 모르게 피곤이 쌓였다. 그래서 셋째 날은 조용히 산책하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만 잠깐 알렉세이 Alexei를 만나기로 했다. 처음으로 혼자 걸어 다니면서 보는 산티아고데쿠바의 모습은 함께 볼 때와 또 달랐다. 까사 뒤편으로 동네의 은밀한 구석을 보고 싶어 산책을 나섰는데, 가는 곳마다 친절하고 호탕한 쿠바 사람들 덕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는 까사로 돌아오는 길에 또 음악 소리에 홀려 아르텍스에 들러 오늘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이 날은 점잖은 신사분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어김없이 술을 마시던 쿠바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황홀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단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지라도 음악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들이, 즐거우면 즐겁다고 온 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이들이 너무 부러워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질투심에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어? 알렉세이 Alexei!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이 앞을 지나가는데 동네 친구가 알려 주더라고. 내 코리안 친구가 여기서 음악 듣고 있다고.”

“신기하네. 그렇게 말하니 정말 나도 이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우연히 약속시간도 훨씬 전에 알렉세이 Alexei를 만나게 되어 우리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러 또 다른 공연을 보러 나갔다. 이 날 알렉세이 Alexei가 나에게 추천해 준 곳은 파티오 데 로스 도스 아부엘로스(Patio de los dos abuelos)였는데, 무언가 장비에 이상이 생겨 공연이 취소가 됐다. 

“승애, 공연을 못 보게 되었으니 엊그제 우리한테 배운 살사 추러 갈래?”

“춤추러 간다고? 흠…. 괜찮을까? 나 또 자신이 없어졌어.”

“물론 괜찮지. 오늘이 우리 마지막 밤이잖아. 실컷 즐기자고.”

뜻하지 않게 우리는 살론 데 손(Salon de Son)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알렉세이 Alexei의 영어 선생님과 그의 독일 친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자신이 없다던 나는 알렉세이 Alexei의 격려로 또 한 번 음악에 몸을 맡기고 쿠바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휩싸여 결코 아쉽지 않을 순간을 만들어 갔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악의 없이 다가와주고,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대해주고,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함께 해 준 나의 쿠바 친구들 덕분이었다. 함께 춤을 추는 시간도 충분히 근사했지만, 다음 날이면 나는 쿠바의 다른 도시로 이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알렉세이 Alexei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알렉세이 Alexei, 이제 우리 그만 나가자.”

우리는 멀리서 음악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알렉세이 Alexei 네 덕분에 지난 3일 동안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네. 너무 고마워.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

“고맙긴. 나도 네 덕분에 즐거웠어.”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하고는 슬슬 까사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알렉세이 Alexei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짙은 속눈썹이 말려 올라간 큼직하고 선한 눈을 끔뻑이며 뜸을 들였다. 

“승애, 너는 여행 많이 다니니까 외국인 친구도 많겠네?”

“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몇 좋은 친구들이 있지. 여행은 친구를 만드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거든.”

“실은…. 나한테는 네가 첫 외국인 친구야. 내가 너랑 이렇게 눈 마주치고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춤도 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너같이 대화도 잘 통하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좋아.”

소중한 것을 다루듯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또박또박 그 말을 하는 알렉세이 Alexei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수줍은 고백과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해져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내가 너의 첫 외국인 친구라니 이거 영광인데! 나도 낯선 곳에서 너같이 착하고 좋은 친구를 만나 정말 행복해. 그리고 나와 지난 며칠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산티아고데쿠바를 잊을 수 없을 거야.

”오늘이 마지막 밤이니까, 인사로 비쥬(bisou) 해도 될까?”

우리는 양 쪽 볼을 맞대 인사하고, 서로를 꼬옥 한 번 안아주었다. 그렇게 산티아고데쿠바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던 알렉세이 Alexei를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 오후 2~3시쯤 다시 우리 까사에 들러줄 수 있어? 너한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어.”

“응, 그래. 3시쯤 까사로 올게. 잘 자.”

다시 한 번 누군가의 따뜻한 진심을 건네받았지만 곧이어 헤어짐의 순간을 맞이하는 여행자로서 이런저런 상념들로 잠에 쉽게 들지 못해 다음 날은 늦게까지 침대 속을 헤매었다. 

산티아고데쿠바의 거리풍경


쿠바 중부 도시인 뜨리니다드(Trinidad)에 가려면 또 11시간 야간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느지막이 일어나 배낭을 싸 놓고는 까사 주인인 밀레나 Milena와 까사 앞 계단에 걸터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오고 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며 진한 아쉬움을 달랬다. 그 계단 위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그들의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쿠바 친구들이 사는 곳, 산티아고데쿠바. 그러나 약속했던 3시가 훨씬 지나도 알렉세이 Alexei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진심에 대한 보답으로 준비해 간 엽서에 알렉세이 Alexei의 얼굴을 그려 선물하려고 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어 까사 근처에서 우리가 함께 갔던 까사 데 라 트로바와 아르텍스도 둘러봤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전에 마주친 적이 있는 알렉세이 Alexei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알렉세이 Alexei에게 줄 엽서를 부탁했다. 

결국 전 날밤의 비쥬가 마지막 인사가 된 채로 나는 산티아고데쿠바를 떠났다. 혹시 몰라서 엽서에 내 이메일 주소도 함께 남겼지만, 아직까지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인 쿠바의 특성상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그의 첫 외국인 친구가 된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그의 마음속에 우리의 즐거웠던 3일간의 시간이 기억되는 한, 나는 그의 친구이고 그는 나의 친구일 테니까. 언젠가 우리가 다시 산티아고데쿠바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우리가 함께 그때 그곳을 활보하며 마주쳤던 사람들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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