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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Sep 21. 2016

잠자는 기차 안의 공주와 친절한 기관사 아저씨

그리스 테살로니키 (June 2004)

나는 여행 도중 갑자기 터진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터키 도우베야짓(Dogu Bayazit)에서 이탈리아의 로마(Rome)까지 육로를 이용하여 논스톱으로 이동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터키 도우베야짓에서 이스탄불(Istanbul)까지 버스로 24시간,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아테네(Athens)까지 기차로 24시간, 그리고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배와 기차로 22시간까지. 물론 이스탄불 친구의 집에서 하루 밤 쉬고 오긴 했지만, 여정 중간중간 기차와 버스를 갈아탔던 것까지 다 설명하자면 책으로 세 페이지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때 기록한 여행일기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 여정을 다시 한번 따라가 보니 정말 당시의 나는 많이 어렸고 체력도 넘쳤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꼬박 3박 4일이 걸렸던 이동에도 피곤한 줄 모르고 그저 신났었던 그 시간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 나도 그 사이 꽤나 나이를 먹었구나 싶으면서 조금은 씁쓸해진다. 

이동하는 3박 4일 동안 세 나라를 거치면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매 순간 첫 경험에 대한 흥분에 젖었던 행복한 기억이지만, 그중에 특히나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사건은 그리스 국경에서 아테네까지 가는 도중에 발생했다.


이스탄불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기차는 5시간쯤 지났을 때,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국경에 도달했다.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기차는 한가하여 나는 6인용 쿠셋 칸을 혼자 독차지하고 편하게 누워 가던 중이었다. 터키 국경선이라고 여권을 거두어 가 출국 도장을 찍고 돌려주더니 다리 하나 건너고는 다시 그리스 국경선이라며 여권을 거두어갔다. 엄청나게 큰 아시아 대륙과 연결된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섬 아닌 섬 같은 나라를 조국으로 가진 탓에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체험을 처음으로 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내가 여행하며 사랑했던 땅, 터키지만 국경을 벗어나는 느낌은 왠지 탈출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리스 국경 역의 풍경

감격과 감상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기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가자마자 있는 간이역에서 모두 내려야만 했다. 나는 기차가 아테네까지 직행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함께 내리는 여행자들로부터 국경에서 한 번, 테살로니키(Thessalonoki)에서 한 번, 도합 두 번을 갈아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유레일패스 Eurail Pass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갈아타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젊은 패기가 충만하여 오히려 우여곡절을 겪고 고생을 많이 하며 여행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이 생각은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내 마음은 스물셋 그때에 멈춰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테살로니키행 기차표를 끊어 놓고는 아테네까지 연결되는 기차 편의 시간까지 완벽하게 알아두었다. 테살로니키에 도착하는 시간이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연결되는 차편이 애매해지면 숙박할 곳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테살로니키에 도착하고 나서 15분 뒤에 바로 연결되는 기차 편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날씨가 내 기분만큼 화창한 그리스 국경의 간이역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며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히 점심이라도 해결하고 싶었지만, 수중에 유로화는 동전 몇 개가 전부였고 현금지급기도 환전소도 없는 곳이라 그 동전이라도 꼭 필요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괜한 걱정으로 최대한 몸을 적게 움직이며 굶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를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만 받아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잊게 했다. 그리고 지나온 이집트와 터키 여행을 곱씹으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것만으로 나는 배고픔을 완전히 머리 속에서 지웠다. 

그리스 국경 역에서 테살로니키 역까지 가는 기차표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햇살이 이글거리는 늦은 오후 나는 테살로니키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만 해도 테살로니키라는 도시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이름이었다. 어차피 아테네에 가기 위해 잠시 들르는 것뿐이므로 기차역에 멈춰서는 것 외에는 기억하고 싶은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없을 줄만 알았다. 터키에서부터 타고 온 사람들의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테살로니키행 기차의 탑승 손님의 수는 더욱 줄어있었다. 낮에 이동하는 기차라서 그런지 7시간 정도 걸리는 데도 침대 칸이 없이 그냥 좌석만 있었는데 모든 승객을 한 객차에 몰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다 합쳐서 10명이 못되었지만. 그나마 그중에 절반 정도가 여행객으로 보여 안심이 되었다. 나만 귀찮게 돌아가는 험한 여정을 자초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일종의 동지애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보다. 원래도 잠자리는 가리지 않는 털털한 성격인 데다 특히나 이동수단을 타면 거의 항상 잠이 들어버리고 마는 평소 나의 특성상 별 큰 일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나 약속 장소에 가면서 잠이 들었다가도 한 번도 내려야 할 곳은 놓치지 않고 눈이 번쩍 떠지는 쓸모 있는 습관 덕을 톡톡히 보기도 했다. 어쩌면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은 다른 여행자든, 현지인이든 항상 주변에 사람이 넘쳤기에 그리스로 가는 기차에서도 혼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 잠이 깼는데 기차 안은 고요하고 나 혼자 덩그러니 좌석에 앉아있었다. 

한밤 중의 테살로니키 역 플랫폼

‘이게 뭐지? 난 어디에 있는 거지?’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되어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한참 걸렸다. 창 밖을 보니 이미 어둡고 캄캄한 밤. 불현듯 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밤 1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앗!”

실제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것 같기도 하다. 11시 30분경 나는 테살로니키 역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11시 45분은 테살로니키 역에서 아테네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시각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해냈을 때 멈춰있던 기차가 서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창 밖에 있는 플랫폼의 팻말을 확인했다. <Thessaloniki>.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리고 없는 기차 안에 나만 홀로 남겨져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났을 때는 종착역에 다다라 멈춰있던 열차가 이제 막 다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차고로 들어가거나 기차 안 청소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깃털처럼 들쳐 매고 무작정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뛰기 시작했다.

‘객차 안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분명 있을 거야.’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원래 기차 안 청소를 매일 하지 않는 건지,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내일을 위해 남겨두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꼬리 칸부터 맨 앞 객차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뛰었지만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이제 어쩌지….’

당황하고 난감한 마음에 갑자기 겁이 나기도 해서 한숨을 몰아 내쉬고 있을 때, 기차가 멈춰 섰다. 그때 남은 내 희망은 딱 하나였다. 

‘분명 기차가 움직였으니 기관사는 있겠지.’

기차가 멈춰 선 곳은 역에서 5분 넘게 달려온 기차 차고였다. 주변은 숲이 가득하고 불빛조차 없어 보였다. 기관사마저 집에 가버리기 전에 나는 그 사람을 찾아야 했다. 기차 문을 열고 철로로 뛰어내려 무작정 기관실이 있을 법한 맨 앞 객차를 향해 뛰어갔다. 거의 다다랐을 때, 기관실 문을 열고 한 아저씨가 내렸다. 나는 아저씨를 향해 두 팔 벌려 흔들어댔다. 알아듣지도 못할 ‘아저씨’를 외치면서 말이다. 

“아저씨, 제가 잠을 자다가 기차에서 못 내렸어요. 11시 45분에 아테네로 가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는데 그것도 놓쳤고요. 어쨌거나 전 지금 테살로니키 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거든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영어로 내 상황을 내뱉었다. 내 말을 들은 기관사 아저씨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저씨는 그리스어밖에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반면 나는 그리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또 한 순간 당황했지만, 나의 이 야심한 밤에 유일한 희망인 기관사 아저씨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타고 온 기차를 가리키고는 두 손을 포개어 귀 옆에 대고 자는 시늉을 했고, 테살로니키와 아테네 사이를 기차로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보였다. 그제야 아저씨는 웃으며 자는 시늉을 따라 했다. 아저씨가 웃으니 나도 이제야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따라오라는 아저씨의 손짓에 차고 앞 도로로 나가니 아저씨의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내가 테살로니키 역까지 태워다 줄게.”

“감사합니다!”

언어가 아닌 몸짓과 손짓으로 이야기했지만 절박한 나의 눈빛과 친절한 아저씨의 눈빛은 서로 통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차로 이동하니 도로를 통해 돌아가서 그런지 역이 꽤나 멀었다.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말 고생할 뻔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몇 번이나 허리를 90도로 꾸벅이고는 역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저씨가 뒤따라 들어왔다. 내가 아테네에 가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아테네 가는 가장 빠른 기차가 몇 시에 있어요?”

“음, 아테네라…. 제일 빠른 게 새벽 3시 30분에 있어요. 그걸로 드릴까요?”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어딘가로 가서 숙박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냥 역에서 버티고 있다가 가장 빨리 오는 기차를 타는 수밖에. 그렇게 나는 새 기차표를 손에 쥐었고, 이제 이 캄캄하고 아무도 없는 역에서 3시간 여 동안 버티는 일만 남았다. 점심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급격히 배도 고파졌다.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왠지 쓸쓸해졌다. 나는 그 와중에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분명 나 말고도 10여 명이 한 객차 안에 있었고, 그중에는 여행자도 네다섯 명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종착역에 도착한 후에도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지 않고 내려버릴 수가 있을까? 푸근한 사람의 정을 너무 많이 느꼈던 이집트와 터키를 벗어나 유럽 땅을 밟자마자 사람들이 이렇게 차갑고 매정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문득 서럽고 외로운 마음에 눈물까지 울컥했다.

그때, 내가 새 기차표를 구입하는 것을 지켜본 기관사 아저씨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웃으며 내게 눈을 찡긋했다. 당시로서는 서글픈 상황에 그나마 유일하게 고마운 사람이라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곤 십 여 분이 지났을까. 한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기차역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나는 알렉산드라 Alexandra라고 해요. 이이의 부인이에요.”

내게 영어로 다정다감하게 인사하던 여자는 기관사 아저씨의 부인이었던 것이었다. 아저씨는 부인에게 전화해 내 사정을 이야기했고, 한밤중에 세 시간을 역에서 떨어야 하는 나를 생각해 집으로 초대하기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부인을 불러냈던 것이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따뜻했지만 새벽시간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고 염치없어 나는 거절했다. 그러나 결국 아저씨 부부의 강한 권유에 못 이기는 것처럼 따라가게 되었다. 아저씨 집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담한 집에 단 둘이 살고 있는 아저씨네는 들어가자마자 훈훈함이 훅 끼쳐오는 아늑한 곳이었다. 

“우리 집에서 쉬다가 기차 시간 맞춰서 역에 데려다 줄게요.”

“알렉산드라 Alexandra, 너무 고마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막막한 상황에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새벽에 이렇게 집까지 찾아와서는….”

“괜찮아요. 어려워하지 말고 편히 쉬어요. 원래 이이가 늦게까지 운행할 때는 우리도 새벽까지 이야기 나누다 깨어있는 일이 많아요.”

그때 마침 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내 뱃속을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나는 잠시 당황했는데 알렉산드라 Alexandra는 웃으며 부엌으로 나를 안내했다. 부끄럽고 미안하여 얼굴이 붉어졌지만 준비된 음식이 없다면서도 알렉산드라 Alexandra가 내어주는 따뜻한 야채수프와 빵 냄새에 나는 그대로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동안 참았던 허기를 채우고, 아저씨 부부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나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집트와 터키에서 여행하면서 보았던 굉장한 문화유산과, 겪었던 모험심 넘치는 경험과, 만났던 잊을 수 없는 인연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알렉산드라 Alexandra가 한 번 더 통역하여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승애, 당신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군요. 부러워요.”

“알렉산드라 Alexandra, 오늘 나에게 보여준 당신과 아저씨의 모습은 이렇게나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들인걸요. 나는 그게 부러워요.”


새벽이라는 시간이 무안하게 우리는 아주 단란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나에게 생경했던 테살로니키는 기관사 아저씨 부부의 기억으로 가슴 깊이 남게 되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의 유명 관광지가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이후에도 여행을 다니면서 내 여행의 이유는 나와는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행을 통해 나와 다른 곳에 살아도 결국 사람은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아저씨 부부는 다시 차를 타고 나를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아저씨 부부는 꼭 시간을 내어 나와 똑같은 여정으로 여행해 보겠다며 웃었다. 그 여행을 진짜로 하게 되면 꼭 나에게 연락을 주겠다고도 했다. 

“앞으로 기차 탈 기회가 많을 텐데 혼자 있을 때는 깊이 잠들지 말아요.”

아저씨 부부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이다. 나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테네행 기차에 올라탔다. 새벽의 달콤한 꿈같은 시간이었다. 깨고 싶지 않은 꿈같은 행복한 테살로니키였다. 


국경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계획된 것처럼 잠에 빠져들고, 나는 어두컴컴한 기차의 차고에서 얼굴이 벌겋도록 땀을 흘린 채로 아저씨를 처음 만났다. 그것을 계기로 새벽에 집까지 방문하게 되어 따뜻한 음식까지 대접을 받고 떠날 수 있으니 문득 이건 세상에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와 아저씨 가족은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와 아저씨 가족은 전생에 어떤 깊은 인연을 맺었던 걸까? 만약, 나의 전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런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맺고 살아온 따뜻한 인생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 생이 지금의 내 인생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테니. 그리고 나는 다음 생을 위하여 작은 인연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이 생을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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