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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Sep 23. 2016

조롱박 수영 선생님, 알리와 아흐메트

이집트 시와 (May 2004)

사막에 대한 환상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가진 환경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척박하기는 해도 오아시스가 있어서 왠지 온통 풍요롭기만 한 곳보다는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에서처럼 사막여우와 서로 길들여지는 과정도 한 번쯤은 꿈꾸어보지 않았을까. 특히 이집트의 시와(Siwa) 사막은 실제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때문에 이집트 여행에서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사막을 두 눈으로 마주하는 일이었다.


시와 사막은 이집트의 5대 오아시스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카이로에서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9시간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니 금방 아무것도 없는 길을 계속해서 달린다. 끝도 없고 경계도 없었다. 끊임없이 지평선만 계속되는 길, 도착하기 전부터 사막의 정취에 한껏 빠져들 수 있었다. 버스를 탄 외국인은 달랑 나와 내 동행 한 명뿐. 우리는 넋을 놓고 사막을 바라보고, 버스 안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시와마을

시와에 도착해서도 내가 그리던 사막은 펼쳐지지 않았다. 오아시스 마을 안에 내려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는 바로 깊숙한 사막으로 들어갈 차량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숙소 주인의 소개로 1박 2일 사막투어를 가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4~5일 이상의 여정으로 시와의 모래사막부터 남쪽에 위치한 바하리야(Bahariya) 사막까지 베두인족의 이동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집트 국내 정치적 사정으로 인하여 중간 경로가 끊긴 상태였다. 아쉬운 대로 두 군데를 나누어 다녀오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나는 사막에 대한 설렘으로 첫날 밤 오아시스 마을에서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막투어에 나섰다. 나와 동행인 친구 외에도 홍콩에서 휴가 차 이집트에 온 프란시스 Francis가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의 운전기사인 알리 Ali 아저씨와 가이드인 아흐메트 Ahmed까지 포함 모두 다섯 명이 함께 가는 나의 첫 사막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막투어는 사막을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모래사막으로 가는 길에 여러 샘과 작은 오아시스 마을들을 들르며 가게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클레오파트라 샘이라고 불리는 투명한 샘에 도착했을 때, 신비로운 청록색 빛깔과 7~8미터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투명함에 차에서 내린 모두는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샘으로 몸을 던졌다. 다만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바다처럼 천천히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덩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7~8미터 수심이라는 말에 나는 바로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멀뚱멀뚱 있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샘 주변만 어슬렁거리는 내가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해서 구명조끼나 하다 못해 튜브라도 있기를 바라보지만, 여기는 바닷가도 아니고 수상 스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곳도 아니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모두 극복했지만 이후에도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아쉬운 것 두 가지가 수영을 못하는 것과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이었다. 다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왜 이리 못 배운 것이 많은지. 이 샘에 몸을 담그면 클레오파트라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어찌 되었건 나는 아름다워지기는커녕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못난 마음만 키운 채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에겐 너무나 깊었던 클레오파트라 샘

이제는 진짜 사막을 마주하며, 조금은 가라앉은 내 마음을 달래야지 했는데 점심을 먹기 위해 중간에 다시 멈춘 곳은 또 다른 샘이었다. 이 곳은 클레오파트라 샘보다 훨씬 더 넓었다.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수영도 즐기다가 모래사막으로 향하는 투어팀이 많은 듯, 우리 일행 말고도 많은 여행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알리 Ali 아저씨와 아흐메트 Ahmed가 준비해 주는 베두인식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이미 다 먹은 여행자들은 여기저기에서 하나둘씩 샘으로 뛰어들기 시작했고, 나는 클레오파트라 샘에서와 같은 울적함을 다시 느끼지 않으려고 최대한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까지 하고도 이미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넉넉히 계산하고 머물게 된 탓에 나는 또 한참을 수영하는 이들에게 부러운 눈빛을 쏘아대며 앉아 있어야 했다. 그때 알리 Ali 아저씨가 다가왔다. 

“승애, 너는 수영 안 해?”

“안타깝지만 난 수영 못 해요.”

“수영하고 싶지 않아? 이 곳에서 수영하면 정말 좋아.”

“하지만, 하지만, 물이 무섭기도 하고 수영도 못하는데 맨 몸으로 저렇게 깊은 물에 어떻게 들어가요.”

괜히 아저씨를 탓하며 갖가지 핑계를 늘어놓고 있는 나의 말에 알리 Ali 아저씨는 내 부러워하는 눈길과 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느꼈던 걸까?

“내가 방법을 찾아줄까? 하고 싶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사막 한복판에서 구명조끼라도 구할 수 있다는 뜻일까, 의심이 생길 만큼 뜬금없다 싶은 말을 남긴 채 아저씨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사막 쪽으로 향했고, 한참 뒤에야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아저씨의 손에 들린 것은 조롱박 세 개였다. 

‘여기에도 조롱박이 있네. 근데 저걸 왜 가져온 거지?’

여전히 아저씨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아저씨를 바라봤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수영할 수 있게 해줄게.”

어떻게 할지는 여전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알리 Ali 아저씨는 조롱박에 구멍을 뚫고 어디선가 가져온 끈을 매어 세 개의 조롱박을 연결했다. 그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 다 됐어. 뒤돌아 서봐.”

아저씨는 어리둥절해하며 뒤돌아 선 내 허리에 연결한 조롱박의 끈을 둘러매 주었다. 내 허리 뒤편에서는 우스꽝스럽게 조롱박 세 개가 대롱대롱 춤추고 있었다. 

“이제 샘에 들어가도 돼. 조롱박이 구명조끼 역할을 해줄 거야. 어서 해봐!”

“아저씨, 이게 정말 물에 뜬다고요? 제 몸을 지탱하기에는 조롱박이 너무 조그맣지 않나요?”

아직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노력해 준 아저씨를 봐서라도 나는 도전해야만 했다. 

“승애, 나를 믿어. 그거면 넌 수영선수처럼 수영할 수 있을 거야.”

한쪽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응원의 제스처를 보내주는 아저씨 때문에라도 이제 나는 샘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 아저씨는 저 쪽에서 쉬고 있던 아흐메트 Ahmed와 프란시스 Francis를 불렀다. 

“아흐메트 Ahmed, 너는 승애가 들어가 있는 동안 샘 주위를 돌며 발차기와 손을 어떻게 저어야 하는지 가르쳐 줘. 그리고 프란시스 Francis, 너는 같이 여행하게 되어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샘에 함께 들어가서 겁내지 않도록 손을 잡아줘.”

수영은 이렇게 하는거야

그렇게 나는 두 명의 보디가드를 이끌고, 허리에는 앙증맞은 조롱박 세 개를 단 채 사막의 한 복판에 있는 샘물에 당당하게 입성하게 되었다. 의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조롱박의 부력이 어찌나 세었는지 내 몸을 충분히 물 위에 띄우고도 모자라 내 배를 아프도록 졸라맸다. 혹시 위급상황을 대비해 일단은 샘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앞에서는 프란시스 Francis의 손을 잡고, 옆에서는 아흐메트 Ahmed가 따라오는 상황인 채로 말이다. 나는 물에 뜨는 것이 신날뿐더러 드디어 나도 덩그러니 앉아 있지 않고 물놀이에 동참하게 된 것이 즐거워서 힘차게 발차기를 해댔다. 

“무릎을 구부리지 말고 다리 전체 힘으로 차야 해. 지금처럼 무릎으로 차면 힘들어서 오래 못 한다고.”

“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차도 돼.”

아흐메트 Ahmed는 정말 선생님이라도 된 듯이 나를 따라 계속 샘 주위를 돌며 끊임없이 조언을 했다. 

“손을 이렇게 꽉 잡지 않아도 돼. 겁내지 마. 내가 잘 잡고 있으니까.”

프란시스 Francis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 바퀴 돌았을까.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나 혼자 해 볼게. 그래도 아흐메트 Ahmed랑 프란시스 Francis, 잠깐만 나를 보고는 있어야 해. 혹시 빠질지도 모르니까.”

대비책까지 든든히 세워놓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나는 엄마 품을 벗어나 첫 헤엄을 치는 아기 오리처럼 힘차게 혼자만의 수영을 시작했다. 간다, 간다, 진짜 간다…. 알리 Ali 아저씨의 수제 구명조끼는 아주 믿음직스럽게 나를 잡아주었고, 나는 발장구를 치고 손을 휘젓는 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알리 Ali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아저씨, 나 해냈어요!”

아흐메트 Ahmed와 프란시스 Francis 역시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해 주었다. 그때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쉬고 있던 다른 투어팀의 여행자들이 나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멋진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좋아.”

“내가 본 중 가장 감동적인 스포츠야.”

나는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으쓱해졌다. 불과 한 시간 전,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쏟아냈던 나였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나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이것은 알리 Ali 아저씨가 나에게 선물해 준 기적의 순간이었다. 알리 Ali 아저씨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는 거라고,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못하는 일은 없는 거라고. 나에게 빛나는 순간을 선물해 준 알리 Ali 아저씨는 나보다도 훨씬 더 흐뭇해했다. 

나중에 친구가 찍어준 동영상을 보니 조롱박 세 개를 매달고 헤엄치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가 조금은 우스워 보이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막에 와서 수영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을 살면서 포기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힘이 되었다. 내가 그때 도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면, 혹은 내가 가진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배운 모든 것 대신 쉽게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은 시와 사막에서 조롱박 수영으로 한 뼘 더 성장하였다. 그리고 나는 한 발짝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 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시와 사막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그 우물을 찾은 듯했다. 

수영 덕분에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그날 오후 늦게 도착한 시와 사막의 모래언덕은 내가 상상하던 사막의 모습 그대로였다. 붉게 타들어가는 사막의 노을을 바라보며 사막의 한 점 모래가 되어버린 나는 그대로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자연의 위대함, 또는 인간사는 먼지와 같이 소소한 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실감했던 것 같다. 해가 모래언덕 뒤로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풍경 안에 동화되어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살결을 따갑게 때리는 모래바람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세찬 바람에 날려오는 고운 모래는 무기와 같았다. 바늘 수십 개로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찌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무래도 모래바람 때문에 오늘 밤에 여기서 자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그림 속 환상 같은 사막의 밤을 꿈꾸며 이 곳까지 온 나는 청천벽력 같은 아흐메트 Ahmed의 말에 감동받았던 마음은 싹 가시고 어느새 울상이 되었다. 힘들고 긴 여정을 통하여 찾아온 사막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아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모래언덕 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고 세찬 모래바람을 그대로 맞아내고 있었다. 애타는 아흐메트 Ahmed의 손짓이 언덕 저 아래로 보여,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는 소처럼 모래언덕을 거의 굴러 내려왔다. 

“내가 바람을 막을 곳을 찾았어. 그곳에서 밤을 보내면 될 것 같아.”

언덕을 다 내려오고 나니, 모래 바람도 조금은 잦아든 것 같은 데다 아흐메트 Ahmed가 묵을 만한 자리를 알아봤다니 이보다 반가울 수는 없었다. 아흐메트 Ahmed가 찾은 자리는 작은 모래언덕을 등지고 있어 어느 정도 불어오는 바람은 피할 수가 있었다. 하루 밤 잠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타고 온 사륜자동차를 바람막이용으로 세워두고 그 앞에 커다란 모포를 바닥에 한 장 깔고, 한쪽 기둥을 세워 차와 연결하여 모포 한 장을 벽 삼아 두르면 끝이었다. 

우리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막의 저녁을 만끽하고 있을 때, 알리 Ali 아저씨와 아흐메트 Ahmed는 우리의 저녁을 준비했다. 작은 모닥불을 피워 닭다리를 굽고 아저씨가 만든 특제 샐러드에 빵과 따끈한 민트차 한 잔, 그리고 후식으로 모닥불 속에서 삶은 감자까지. 부슬부슬 모래가 함께 씹히는 것은 사막에서 먹는 식사의 별미라는 셈 치고,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저녁 식사 동안 우리의 화제는 대부분 나의 조롱박 수영이었다. 


“안 가르쳐줘도 잘하던걸.”

시와 사막

“그러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조롱박 빼고 한 번 해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 완벽하게 낭만적인 사막의 밤이 가기 전에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추억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했다. 

“조롱박을 구해서 멋진 작품 만들어준 알리 Ali 아저씨도 너무 고맙고, 수영할 수 있게 도와준 아흐메트 Ahmed도, 프란시스 Francis도, 너무너무 고마워. 오늘 수영을 할 수 있어서 난 진심으로 기뻤어. 내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승애,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오늘 조롱박을 매달고 수영한 것을 생각해. 너는 무엇이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오늘 아주 멋졌어. 넌 자랑스러운 내 친구야.”

내 진심이 전해졌을까. 아흐메트 Ahmed가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그의 진심도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그들은 온몸으로 인생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그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옷깃을 스치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억겁의 시간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을 믿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승애, 저기 보이는 별자리 이름이 돌고래자리야. 너의 첫 수영을 기념하여 하늘이 오늘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아흐메트 Ahmed가 가리키는 조그만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사각형의 몸통과 하나의 꼬리별까지. 돌고래는 새까만 하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어느새 별들이 쏟아질 듯 빈 틈 없이 박혀 있었다. 모래벌판에 누운 내 왼쪽 어깨 끝부터 오른쪽 어깨 끝까지 온통 별밭이었다. 눈을 깜빡거리는 찰나의 순간도 아쉬워 두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두 눈이 별이 될 만큼 얼마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을까. 저 너머 지평선에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달 안쪽까지 모두 들여다보인다고 느껴질 만큼 커다랗고 투명한 보름달은 흡사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길목처럼 다가왔다. 하늘의 움직임을, 달과 별의 속삭임을 온몸으로 온전히 빨아들이며 밤이 깊어갈 때, 저 멀리서 베두인족의 음악이 어슴푸레 들려왔다.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터질 것 같은 내 마음이 몸속에서 흘러나와 사막의 모래 위를 부유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내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몸이 둥실 떠오른 듯한 느낌은 흡사 물속에서 헤엄칠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나도 돌고래자리처럼 우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물 속인지, 하늘 속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을 자유롭게 헤엄을 치는 꿈을 꾸며,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따뜻한 모래 위에 안긴 채 별빛과 달빛이 수놓아진 이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얼굴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가 누워있던 자리 주변으로 빼곡하고 선명하게 사막여우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날 길들여줘. 이를 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몇 시부터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사막여우가 살며시 다녀갔다. 다음에 다시 찾아오면 꼭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전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자신에게도 진심을 보여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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