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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 Sep 23. 2016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소년의 모습, 파샤와 젤린

터키 샨리우르파 (June 2004)

터키는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성향이나 조건을 물어보지 않고도 주저할 것 없이 추천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지리적 특성상 동서양의 문화의 교차로로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찬란한 문화유산이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맛있는 음식, 비싸지 않은 물가, 넓은 땅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자연경관 등 어떤 누구라도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터키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사람에 있다. 정 많고 온화하며 친절한 터키 사람들. 특히나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여기며 가까이 지내왔던 터키이기에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다가오는 터키의 느낌은 사뭇 색다르다. 그동안 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했지만, 거리에서 낯선 동양인을 보고 제일 먼저 한국인인지를 물어오는 나라는 터키가 유일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내게 일본인, 중국인인지를 확인하고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어리둥절해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소한 관심 덕분에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나는 터키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긴 시간을 터키에 체류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더 가까이에서 터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추억을 쌓고 싶었다. 때문에 여행자들이 주로 휴양과 유적 탐방을 위해 찾아가는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의 서쪽 해안가 도시들을 뒤로 한채 나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깊숙한 터키의 속살로 향해 가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괴레메(Cappadocia Göreme)에서 야간 버스를 7시간 이상 타고 도착한 샨리우르파(Şanliurfa)는 이제까지 보았던 다른 터키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모래 내음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쨍쨍한 날씨와 더불어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모래색의 건물들과 황량한 벌판이 샨리우르파의 첫인상이었다. 아브라함의 탄생지로도 알려져 있는 샨리우르파인지라 여행지 같은 느낌보다는 왠지 모르게 경건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는 나에게 벌 떼처럼 달려드는 호객꾼 들은 어디를 가나 여전했다. 적당히 호객꾼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나름 터득했다고 여기기도 했고, 별다른 정보도 없이 도착했기에 가장 친절한 호객꾼에게 슬쩍 넘어가 줘야겠다, 라고 내심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상황은 내가 결정하기도 전에 모두 정리되었다. 호객꾼들 중한 아저씨가 큰 목소리를 앞세워 모두 물리친 후 내 앞에 당당하게 홀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샨리우르파의 악연은 시작되었다. 

결국은 아지즈 Aziz 아저씨를 따라 나서 마을 안에 있는 아저씨의 집을 숙소로 정했다. 아저씨는 유창한 설명과 적극적인 태도로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고, 집에 와서 만난 아저씨의 부인, 페리다 Ferida 아주머니는 인상이 인자해 보였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 반으로 짐을 풀게 되었다. 짐을 풀자마자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한 숨 돌릴 때였다. 

“오늘 어디 갈거니? 내가 하는 투어에 참여할래? 다양한 투어가 있으니 봐봐. 너 한국사람이니까 내가 특별히 싸게 해 줄게.”

아지즈 Aziz 아저씨는 본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근교의 하란(Harran)이나 샨리우르파 시내를 돌아보는 투어를 권유하며 나에게 은근한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굳이 더 비싼 돈을 내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하는 것을 내키기 않아하는 편인 데다 돌아가는 일정이 계획되지 않아 시간이 여유로운 여행자였던 나는 굳이 투어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고 아저씨에게 나의 뜻을 전했다.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오늘 나와 돌아다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내가 마침 특별한 일이 없으니 오늘 너와 샨리우르파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을 함께 다녀줄게. 물론 이건 공짜야.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것뿐이야.”

혼자 조용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돌아보고 싶어 괜찮다며 사양하는 나에게 굳이 함께 해주겠다며 나선 아지즈 Aziz 아저씨는 그 날 하루 종일 나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 주었다.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포함한 여러 자미들,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샨리우르파의 성채, 그리고 바자르까지. 하루를 함께 해준 아저씨 덕분에 몰랐던 역사 이야기나 명칭들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워낙 여행자가 드문 지역이라 나에게 들러붙는 호기심 많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과 호객꾼 들을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물리칠 수 있었지만 나는 아쉬웠다. 나에게는 여행의 목적이란 것이 유명한 건축물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었고, 역사를 따라 문화탐방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꼬맹이들과의 장난스러운 실랑이가 재미있었고,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들과 손짓, 몸짓으로 대화하려고 애쓰는 것이 기억에 남았고, 내가 보던 책 속에 있는 문화와 자연 속에서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밤, 아저씨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아지즈 Aziz 아저씨, 오늘 너무 친절하게 여러 곳에 데려다주시고, 설명도 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내일부터는 저 혼자 다녀 볼게요.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그럼 네 맘대로 해.”


끝내 아저씨는 나의 뜻에 따라주는 듯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할 때부터 집을 나설 때까지 아저씨는 나에게 하란 투어를 강요하고 있었다. 

애증의 아지즈 아저씨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혼자 다녀올게요.”

질긴 아저씨의 집착에 내 마음은 더없이 불편해졌고, 나로 하여금 더더욱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한 땅 위의 무너져가는 폐허 같은 고대도시 하란에서 나는 동네 꼬마들과 신나게 공놀이를 한 판 하고 무거워지는 마음을 애써 날려버렸다. 느지막이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샨리우르파로 돌아오는 길, 다시 아지즈 Aziz 아저씨네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지만,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도 아닌데 미워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싶어 억지웃음이라도 지으며 들어가려고 애썼다. 

집에는 새롭게 호주인 여행자가 들어와 있었고, 아저씨는 여전히 투어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대신하여 아저씨의 소원풀이를 해 줄 사람이 나타난 것에 대하여 내심 기뻐했다. 그러나 호주 친구 역시 투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아저씨는 다시 우리를 모두 앉혀놓고 장장 연설을 했다. 아주머니가 몸이 조금 불편하셨던지 아저씨를 불렀고, 우리는 그 덕에 겨우 아저씨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안타깝고도 허탈해서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마당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방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아지즈 Aziz 아저씨의 아들인 파샤 Paşa가 우리를 불렀다. 

“난 우리 아빠가 싫어. 맨날 돈만 밝히고, 여행자들한테 투어를 강요하지.”

파샤 Paşa 의 방으로 들어선 우리에게 그가 제일 처음 뱉은 말이었다. 그의 방으로 초대해 준 파샤 Paşa로 인하여 뜻밖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파샤 Paşa는 빨리 어른이 되어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우리네 사춘기 소년과 다름없는 터키의 소년이었다. 불만을 쏟아내는 소년에게 물었다. 

“그럼 네 꿈은 뭔데?”

“나는 음악을 하면서 살 거야. 나는 기타 치고 노래할 때가 제일 행복해.”

철부지 같아만 보였던 소년이 돌연 눈빛이 바뀌어 답했다. 터키의 동남부 지방에는 쿠르드족이 아직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아지즈 Aziz 아저씨네도 역시 쿠르드족이었다. 당시 내가 듣기로는 쿠르드족은 대부분이 이슬람교 수니파로 우리 민족 못지않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민족 중의 하나이다. 그런 집안에서 자라 시골마을에서 음악인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소년이 어른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순간을 그리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때였다. 소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파샤에게 받은 이메일 주소

조그만 소년의 방에 퍼지는 노래는 나에게도 익숙한 노래였다. 이 곳에 머물다 간 한국인 여행자가 가르쳐준 노래라고 했다. 

“정확하게 모든 가사의 뜻을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배웠어. 그리고 난 멜로디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짐작할 수 있어. 이 노래의 멜로디가 나는 참 슬프면서도 좋아.”

소년은 그 노래가 꼭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족성을 지키기 위하여 터키 정부와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현실도, 보수적인 데다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하여 아들의 꿈에는 관심 두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도, 자신이 가진 모든 문제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담담해지고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이 노래를 소년에게 가르쳐 주고 간 여행자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소년을 대신하여 그 여행자에게 고마웠다. 

“파샤 Paşa,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꼭 이 음반을 구해서 너에게 보내줄게. 오래된 음반이지만 아마 구할 수 있을 거야.”

악보도 없이, 오래된 기억에만 의존해 온 터라 곡 전체를 연주하지 못하는 소년을 위하여 나는 그에게 약속했다. 소년 자신의 마음뿐 만 아니라, 어느 순간 내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버린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에 대한 보답이었다. 하마터면 불편한 기억만 간직하고 돌아설 뻔했던 아지즈 Aziz 아저씨의 집에서 은은한 밤을 울리는 감미로운 선물을 받은 듯했다. 


파샤 Paşa 의 도움으로 느지막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아 밝은 얼굴로 마당으로 나섰을 때, 아지즈 Aziz아저씨는 나에게 대뜸 큰 소리를 쳤다. 

“승애, 너 넴루트 산(Nemrut Dagi) 투어도 안 갈 거야? 도대체 투어를 안 할 거면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당황한 나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일찍 일어난 호주 친구는 어젯밤을 보낸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난 후였다. 다시 나만 덜렁 남아 아저씨의 투어 강요를 받아내야 했던 것이었다. 

“아저씨,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투어는 하지 않고 숙박만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온 거잖아요. 그런데 투어 안 한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는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요?”

결국 아침부터 큰 소리가 오가고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오늘 중으로 집에서 떠나겠다고 말하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샨리우르파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아졌다. 원래 계획은 샨리우르파 이후 넴루트산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오늘 당장 출발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생각으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서야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호객행위를 할 때부터 주변 호객꾼 들을 모두 물리쳤던 아지즈 Aziz 아저씨는 샨리우르파에서 목소리 꽤나 큰 사람인 모양이었다. 내가 터미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와 있던 아저씨는 이미 모든 버스회사에 나를 태우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는지 어느 버스회사도 나에게 버스표를 팔지 않았고, 종종거리며 버스회사를 기웃거리는 나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내 투어를 이용하지 않으면 너는 어디로도 못 가.”

아저씨의 야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넴루트 산은커녕 다른 어떤 도시로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터키 사람들에게 받았던 따뜻한 정과 친절이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낙동강 오리알처럼 동떨어져 모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비웃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상대편에 서서 똘똘 뭉친 사람들 중에 홀로 버려진 이방인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갑자기 숨을 쉴 수도 없게 답답해진 마음에 터미널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째, 처음으로 느껴보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파샤 Paşa에게 도움을 청해 볼까?’

소년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도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나 혼자 버텨야 했다.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로 터벅터벅 얼마나 걸었을까.

“저기,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또 다른 한 소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파샤 Paşa와 비슷한 또래일 것 같았다. 복잡한 머리와 무거운 마음에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대답을 않고 한참을 걸었는데도 묵묵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누구와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좀 가줄래?”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년의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방해해서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젤린 Celin이라고 해요. 15살이고요. 특별한 걸 바라는 건 아니고요, 다만 나는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데 이 곳에서는 대화할 외국인을 만나기가 어려워서요.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나랑 대화 좀 나눠줄래요?”

수줍어서 얼굴이 빨갛게 된지도 모르고 소년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어렵게 용기 낸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두 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는 파샤 Paşa가 돌아오는 저녁까지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 그럼 잠시만 이야기 나누자. 나는 한국에서 온 승애라고 해. 반가워.”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나도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그때는 몰랐다. 젤린 Celin이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쓰다듬어 줄 천사 같은 사람인 줄은. 젤린 Celin 역시 쿠르드족이었다. 지금의 터키의 일부로 살고 있지만, 아직 쿠르드족만의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그 꿈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끄러움이 많아 연신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하는 젤린 Celin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마음이 가시고 흐뭇해졌다. 

“전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16남매가 있는 대식구의 막내라서 의사가 될 때까지 공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소년은 내가 첫눈에 반한 순수한 두 눈을 빛냈다. 샨리우르파의 소년들은 두 눈을 빛나게 하는 멋진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구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 역시 5남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 내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양보와 포기를 먼저 배워야 했기 때문에 단번에 젤린 Celin이 걱정부터 되었다.

“16남매면 많이 힘들겠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공부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원망하지 말고 꿋꿋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게.”

“전 가족이 많은 것에 대해서 원망 안 해요. 쿠르드족은 대가족이 전통이에요.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집이 자랑스러워요. 형제들끼리도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요.”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어른스럽게 소년에게 충고한다고 내뱉은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이었는지 소년의 말을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소년의 진중하고 깊은 눈에 매료되어 대화를 시작했음에도 어느 순간 그의 앞에서 세상에 대하여 훨씬 더 많이 아는 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나에게 던져주는 시련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던 나 자신의 모습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냥 소년의 손을 잡았다. 굳이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꼬옥 쥐는 내 손의 온기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내 눈빛으로 소년은 꿈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자그마한 힘을 얻었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아까 처음에 만났을 때는 왜 그렇게 화난 표정이었어요? 말 걸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다고요.”

나는 망설이다가 아지즈 Aziz 아저씨와의 일에 대하여 소년에게 털어놓았고, 그 일로 인하여 터키에 와서 내가 가졌던 좋은 감정들이 다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야기를 들은 젤린 Celin은 놀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터키 사람이든, 쿠르드족이든 원래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다만 조그만 도시에도 여행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돈에 욕심이 생겨 잠시 안 좋은 생각들을 하는 거죠. 누나가 우리를 모두 싫어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버스표를 사는 것은 내가 도와줄게요.”

뜻밖에도 구원의 손길은 갑작스레 내 눈 앞에 나타난 소년이 뻗어주었고,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손을 잡았다. 소년은 급히 전화를 걸어 자신의 형을 터미널로 불렀다. 아무래도 일을 해결하는 데는 어린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른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듯했다. 젤린 Celin과 함께 아지즈 Aziz 아저씨네로 가서 내 짐들을 챙겨 나왔다. 다행히 집 안에는 페리다 Ferida아주머니만 있었다. 또다시 아저씨와 마주쳐 좋지 않은 감정으로 서로를 대하게 될까 봐 아주머니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파샤 Paşa에게 쪽지를 남긴 후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와 터미널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젤린 Celin의 형 파티 Fatih와 조카 지오 Jio가 나와 있었다. 파티 Fatih는 젤린 Celin보다도 수줍음이 많아 젤린 Celin을 통하지 않고는 나에게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청년이었고, 12살 지오 Jio는 한시라도 조용히 있지 않는 개구쟁이였다. 가족들까지 총동원하여 도움을 받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잘 해결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오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몇몇 버스회사는 젤린 Celin 가족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버스표를 내놓지 않았지만, 계속 도전한 결과한 군데에서 터키의 동쪽 끝부분에 자리 잡은 도시인 반(Van)으로 향하는 버스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날 밤에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 반에 도착하는 티켓이었다. 

“파티 Fatih, 젤린 Celin, 지오 Jio, 모두 모두 정말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버스표를 구했어.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주지 않았으면 정말 막막했을 거야.”

고마운 사람들 - 젤린과 파티, 그리고 지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고마워 웃고, 그들은 내게 도움이 된 것이 기뻐 웃었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버스회사 사무실에 앉아 먹을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넉넉하게 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밤새 내내 버스를 타야 하는 나를 걱정하며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누나, 혼자 여행하기 힘들지 않아요? 여자 혼자서 여행하면 오늘보다 더 힘든 일도 있을 수 있어요. 항상 조심하고 다음부터는 꼭 누군가와 함께 다녔으면 좋겠어요.”

소년은 그새 또 내 걱정이다. 내가 누나가 되어서는 이 어린 친구에게 걱정을 너무 많이 시켰다 싶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나 힘도 세고 싸움도 잘 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소년을 안심시키고는 버스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간식거리를 사둘까 해서 터미널에 있는 조그만 가게로 갔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내가 즐겨먹던 비스킷이 있었는데, 그것을 집어 들고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고 내가 값을 물었을 때였다. 갑자기 소년과 가게 주인이 서로 큰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고, 가게 주인이 말한 액수보다 적은 돈을 내어 놓고는 나를 잡아끌어 가게 밖으로 나왔다. 

문제의 비스킷, Biskrem

“무슨 일이야? 왜 그런 거야? 나 때문에 네가 가게 주인하고 싸우다니. 무슨 일인지 말해줘야 나도 덜 미안하지.”

몇 번은 설득한 뒤에야 소년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가게 주인이 누나에게 원래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말했어요. 그래서 내가 왜 비싸게 받냐고 물었죠. 가게 주인은 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자기 장사에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친 거예요. 나도 터키 사람인데 터키 사람 편을 들지 않고 외국인 여행자 편을 든다고요.”

자신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값을 속인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고 미안해하는 소년을 바라보다가 그냥 한 번 꼬옥 안아주었다. 터키에서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사 먹었던 비스킷이었고, 나도 대략 가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큰 도시가 아닌 조그만 마을의 구멍가게에서는 조금씩 비싸게 값을 받는 일이 허다했고, 너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나도 어느 정도 묵인해 왔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 순수하고 착한 소년이 만난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은 친구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동네 사람과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소년이 사람을 대할 때,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를 그때서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누나, 미안해요. 여행하는 동안 안 좋은 일은 그만 겪었으면 좋겠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네요.”

“미안하기는…. 나는 젤린 Celin 너를 만나서 터키가 더, 더, 더 많이 좋아졌어. 네가 함께 해준 오늘 하루 덕분에 나는 샨리우르파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거야. 그러니 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네가 나한테 미안할 일이 아니야.”

소년은 어둠 속에서 내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가 나를 대할 때 보여준 진심 어린 마음과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는 두 눈은 잊히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그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 소년이 적어준 이메일은 아무리 보내도 답장이 없었고, 나는 그가 진짜로 의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는 역시 좋은 사람, 좋은 어른으로 자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쯤 이십 대 청년이 되어 있을 젤린 Celin은 어디에서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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