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돈이란
나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학생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가사 노동을 분담했다. 하지만 늘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 먹이고 입히고 살 곳을 마련하는 이의 권력은 엄청나게 느껴졌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나에게는 돈 버는 자의 말을 거역할 자격 따위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부모의 말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돈을 가진 자를 (너무나 당연하게) 권력자라고 여기다니, 이 얼마나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의 사고방식인지.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본 기억도 없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말을 들은 기억도 없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게 지금 돌이켜 보니 좀 이상하다.
취업에 성공하고 나서는 돈에 대한 콤플렉스가 좀 사라졌다. (미미할지언정) 나도 이제는 돈을 버는 사람이 된 거니까.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 인생을 팔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취업한 곳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오직 '돈'만을 위해서 시간과 체력과 감정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모든 것과 맞바꾼 돈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돈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현실에서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빨리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삶을 되찾겠다며 모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 차곡차곡 모아둔 돈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무기 같은 것이었다.
자유로웠기에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기가 없어지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도 끝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의 시선은 돈의 언저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동안 계속해보고 싶었으니 그림을 그려봐야지! 그런데 이걸 계속하면 돈 버는 것과 연결될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없다면, 이걸 하면서 계속 돈을 쓰는 게 현명한 일일까?' 이런 의문은 책을 읽어도, 심리학 강좌를 들어도, 글을 써도, 계속됐다.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돈이 충분하다면, 돈을 더 이상 벌어도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지금 이 일을 아주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돈 걱정 없이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
평생 시달려 온 돈 문제가 사라지면 뭔가 더 특별한 걸 하고 싶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한 대답에 내가 놀랐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유일한 걱정거리를 꼽자면 돈이다. 돈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기획하는 모든 것은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래서 나에게 공방,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중요했고, 무리를 해서 작업실을 오픈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작업실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존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이었고, 비거니즘이 낯선 사람들도 그것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공간의 의미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기 시작했고, 모인다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가 동반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일 년 내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었다.
결국 직접 만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오프라인 클래스만 기획하고 진행해 온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금, 온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있다.
오프라인 클래스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었다면, 온라인으로 하는 프로젝트까지는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클래스의 수입은 너무 불안정해졌고,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큰 걱정도, 대담한 도전도 모두 '돈'으로부터 출발했다. 지금 나에게 '돈'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천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걸 모색하게끔 하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