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기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들로 가득 찼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질문이 안개처럼 잔뜩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은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해하는지 그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선명해질수록 새롭게 떠오르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균형이 잡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창업 초기에는 균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초조함과 조급함이 나를 계속 몰아세웠다. 그리곤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지금만 버티면 돼, 이것만 지나가면 돼.' 하지만 몸은 버티다 못해 한 번씩 크게 앓았다.
코로나에게 고마운 점이 딱 한 가지 있다면,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하던 내게 브레이크를 가한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늘어난 시간 덕분에 지쳐있던 몸을 좀 추스를 수 있었고,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균형 잡기'의 중요성을 느꼈다. 일도 중요하지만 일과 떨어져 있을 시간도 꼭 필요하다는 당연한 이치를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스마트폰 하나면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요즘일수록 일과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폰을 끄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 시간만 꺼놔도 불안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는데 그럴수록 내가 얼마나 일과 떨어지지 못한 생활을 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일과 떨어지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소위 '좋은' 일은 하는 사람들이 이윤을 추구하면 속물처럼 바라보는 (묘한) 사회적 분위기가 깔려있다. "동물을 위한다면서 돈이 뭐가 중요해?" "기후 위기에 대해 알리고 싶다면서, 보수는 적어도 상관없지?"라는 식이다.
물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윤이 충돌할 때에는 당연히 전자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아무리 저렴한 재료라고 해도 자연과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재료라면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이 더 필요하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속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돈을 밝히는’ 자세는 좋지 않다는, 그 근거가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막연한 느낌 때문에 돈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를 취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도, 아무리 가치 있는 일도, 경제력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덤벼보려고 한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여러모로 생각해야겠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든 지속하기 위해서는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일에 잠식되지 않도록 일과 휴식에서 균형을 잡고, 돈에 잠식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제력을 갖추길, 그래서 쓰러지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기를, 누구보다 내가 나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