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ㅣ잠시 베를린에 와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모든 게 끝나고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는 뜻이겠죠. 그동안 몰아치는 일들을 쳐내면서 언젠가는 이 모든 걸 글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마침내, 이렇게 그날을 맞이했네요.
저는 지금 베를린에 있습니다. 저의 여행기를 봐 온 분들이라면 제가 작년에 여행을 다녀온 후 베를린에 홀딱 반해버렸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애정이 생각보다 좀 진지했다는 거였죠.
베를린에 대한 애정은 저를 독일어 공부로 이끌었어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독일어란 언어에, 그리고 독일이란 나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사실 전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어요. 그 당시의 저에게 꽤나 매력적이었던 나라가 있었고, 언어 배우는 것도 재밌어서 그 나라 언어 자격증 중 최고 등급을 따기도 했지요. 그런데도 그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그곳에서 사는 건 너무 다르더라고요.
여행의 목적은 ‘즐기기‘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가고 싶은 곳만 가면 되고,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 되는, 말 그대로 ’돈을 쓰는‘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생활’이 되면 말이 달라지더라고요.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혹은 살아남아야 하는 게임으로 바뀌거든요. 공부를 하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여행으로 갔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더라고요.
여행으로 간 베를린은 저를 반하게 할 만큼 멋진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 어떨지 너무 궁금했어요. 잠시 다녀온 여행으로 그 나라에 대한 환상만 가진 채 삶의 터전을 옮길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잠시라도 베를린에서 생활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지는 벌써 열흘 가량 지났어요. 글 쓰는 게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제 몸 상태가 영 좋질 못했기 때문이에요.
여기 오기 전까지 끝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았고, 독일어 공부도 매일 해야 했어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인적인 일들까지 터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고장 났어요. 결국 주사에 수액까지 맞고 베를린행에 오르게 되었어요.
그런 상태로 출국을 했으니 베를린에 도착하고 나서도 일주일 이상을 골골대다가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되었네요.
작년엔 겨울에 여행을 와서 겪어보지 못했던 베를린의 초여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해가 내리쬐기 시작하면 한여름처럼 더워지는데,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함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천둥 치며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요. 비가 한차례 쏟아지고 나서는 언제 더웠냐는 것처럼 한순간에 싸늘해지기도 합니다. (제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베를린의 초여름을 겪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낭만보다는 서바이벌에 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어학원에 다니면서 독일어 실력을 더 키우고 싶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요, (어학원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예산상의 문제로 에어비앤비 방을 빌렸는데 (집 아닙니다, 방입니다.)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야금야금 느끼고 있지요.
베를린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부럽다.’ 예요. 저 역시 누군가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하면 너무 부러워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막상 제 일이 되니 주변에서 하는 부럽다는 말이 왜 그렇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을까요.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 있을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분명 부러워할 것 같으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을 최대한 즐겨보려고 해요.
전 앞으로 한 달 정도 이곳에 있을 예정이에요. 열흘가량 있었는데도 비건의 천국 베를린답게 벌써부터 소개하고 싶은 비건 음식들이 한가득이에요. 그리고 그동안 (겪고 싶지 않았지만)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도 쌓여가고 있고요. 앞으로 틈틈이 공유할게요!
베를린 한 달 살기,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