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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Dec 18. 2023

전시 <반 고흐 인 서울>

|전시 관람 후기 

<반 고흐 인 서울>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스토리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라는 소개에 홀린 듯 예매했고, 장장 1시간 걸려 홍대입구역 '띠아트'라는 전시장을 방문했다. 솔직한 후기를 물어본다면, 조금 실망했지만 의외의 것을 얻어낼 수 있어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실망한 이유는, '스토리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가 45분 간 영상관람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실망이라기보다, 그게 다라는 사실에 실망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영상. 각 회차가 45분씩 진행. 바닥에 앉아 관람 (방석은 준다.)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을 스토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 그림을 보여주고, 가끔 내레이션과 자막이 동반된다.


chapter1. 나는 빈센트 반 고흐

chapter2. 별이 빛나는 밤

chapter3. 감자 먹는 사람들

chapter4. 폴 고갱과 해바라기

chapter5. 테오와 아몬드나무

chapter6.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


지루할 줄 알았던 영상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그저 유명한 작품 몇 점, 스스로 귀를 자른 광인이었다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던 나는 '반 고흐'라는 화가가 몹시 궁금해졌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까지 연결됐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내게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 셈이다.


반 고흐에 대한 책을 찾았다. [클래식 클라우드 030-반고흐]. 하루 만에 모두 읽었다.

지식을 쌓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읽었다면, 아마 나는 조금 읽다 지쳤을지 모른다.

마치 '반 고흐'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한 편의 소설 같았다. 작품이 아닌 화가의 삶이 궁금해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 더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은 후 내게 반 고흐라는 인물은 위대한 화가 이미지보다 친근하고 안타까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고흐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이 깊었고, 죽기 2년 전에는 더 이상 주변에 민폐가 될 수 없다며 스스로 정신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따뜻한 가정을 바랐던 사람이었다. 저자는 '방랑벽이 심했던 빈센트'라고 표현했는데,  가족, 연인, 친구, 동료 그 어디에서도 끝까지 이방인일 수밖에 없던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그 외로움과 고독, 소외감에서 오는 고통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그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바랐고, 동료와 우애를 바랐다. 누구나 얻을 수 있을 만한 작은 것을 원했지만,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상실감은 고흐에게 더 큰 괴로움을 줬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만약 어머니가 그를 사랑했다면

그가 좋아했던 그 여인들이 그의 사랑을 받아줬다면

고흐의 삶은, 화가로서 작품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스스로 귀를 자른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반고흐 인 서울 전시 내레이션 중>


평생 외로웠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를 만큼 충격이 컸던 사건은, 고갱과 불화, 유일하게 의지하는 인물이던 동생 테오의 결혼이었다. 사랑했던 여인 중 술집 여인 '시엔'이 있긴 했지만, 그녀 때문에 귀를 자른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가장 진하고 인상적인 파란색으로 배경을 그렸다."

"세상의 색채에 압도당할 때, 나는 그림의 문법도 규칙도 모두 잊어버린다."

<반고흐 인 서울 전시 내레이션 중>

출처: 핀터레스트 무료 이미지

고흐의 유명한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구름이 잔뜩 있다. 그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심각한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 독일의 한 정신과 의사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전조증상이 있을 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미로 같은 둥근 원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흐가 그린 그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화가로서 창작 결과라기보다 아픈 환자라서 가능했던 것인가? 잠깐 당황스러웠지만 그 상황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거라는 결론이 났다.


어느새 나는 고흐라는 인물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그의 인내와 노력에 감탄했다.

그는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


<책 [클래식 클라우드 030-반고흐] > 중에서 


| 빈센트는 겁나게 빠른 속도고 많은 습작을 해내는 것이 진정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결국에는 양이 질에 자리를 내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결코 통달하지 못할 정확성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셰: 그림 그릴 때는 행복하죠?

빈센트: 대부분은요. 망칠 때만 빼고

가셰: 가끔은 슬퍼 보여요.

빈센트: 성공작이 하나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파기가 있거든요. 난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껴요. 슬픔이 웃음 보다 더 좋죠.
(어쩌면 슬픔이 더 익숙해서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왠지 빈센트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는 당시엔 늦은 나이였던 27살에 그림을 시작했고, 팔리지 않는 무명화가였다. 그는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다. 좋아하는 화가의 화풍을 모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만의 확고한 화풍을 만들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몸도 마음도 아프던 고흐도 하루에 1장 이상 그림을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데

나는 왜 힘들다고 징징거리고만 있었을까. 이것은 자책도 자기 비난도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자극이고 자기반성이다. 꾸준함이든 인내력이든 갖고 싶다고 장착되지 않는다.

나는 끊임없이 이런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다. 천재화가의 꾸준함과 인내력은 여타 다른 이보다 조금 센 자극이 왔을 뿐이다. 막연하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나의 꾸준함과 인내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원동력이나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지

나만의 방법은 무엇일지


힘들게 그림에 열중하는 고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고민해 봐야겠다.

가볍게 본 고흐의 전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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