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MBTI

일상 속 짧은 파편

by 감정 PD 푸른뮤즈

연말과 크리스마스 겸해서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였다.

언니와 형부, 조카까지 모여 맛있는 식사를 했다. 반가움에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MBTI 얘기가 나왔는데 조카는 T가 90%란다. F와 T가 반반인 나는 그저 신기했다. 한참 떠들고 있는데 우리 옆에 앉은 아빠가 조용히 웃으며 얘기를 듣고 계셨다.

여든이 가까운 아빠는 그저 우리 떠드는 모습만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아빠, 요즘 MBTI라고, 기질 테스트가 유행인데요. T는 이렇고, F는 저런 거예요."


아빠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분명 이해를 못 하시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MBTI가 뭘까 궁금하네.

아빠, 아빠도 이거 검사 한번 해보자."


아빠 옆으로 다가가 핸드폰으로 MBTI검사를 시작했다.

핸드폰 글씨 읽기도 힘들고, 버튼 클릭도 수월하지 않은 아빠를 대신해 내가 테스트 질문을 던지면 아빠가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울고 싶어질 때가 많다."

".... 그렇지. "

"아빠가? 그래? 오.. 그렇구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즐거운 파티와 행사로 일주일의 피로를 푸는 편이다."

"그렇지. 혼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래요?"


"전화 통화를 거는 일은 가능한 피하고 싶다/ 친구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는 편이다."

"그렇지."

"잉? 아빠가? 그런가?"

"아빤 수동적인 면이 있어서."

"아빠가 수동적인 성향이 있구나.. 워낙 활동적이라 몰랐네.

짜잔. 결과는 ESTJ-T 경영자 타입입니다. 근데 아빤 대부분 %가 반반이네."


경영자 타입이라는 말을 듣고 아빠가 엄마를 향해 큰 목소리로 "나 사업해야 한대."라고 외친다.

엄마는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을 하냐며 비웃듯 웃고, 가족들도 웃었다. 농담처럼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왜 아빠랑 엄마랑 싸우는지 알 것 같네. 분명 둘이 반대일 듯, 다음에 엄마도 해보자."


다소 한 풀 꺾인 MBTI로 잠시 가족들이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즐거웠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어린 시절 젊었던 엄마, 아빠와 함께 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한테 말했다.


"아까 MBTI 검사해 보니까 재밌더라. 다음엔 당신 부모님도 해보자."

"그래. 아까 재밌었나 보네."

.....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어. 내가 알고 있던 아빠의 모습과 진짜 아빠의 모습이 차이가 있어서 속으로 좀 놀라기도 했고.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니 재밌기도 한데, 왜 진작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알쏭달쏭한 기분이야. 안 좋은 기분은 아니고 뭐랄까. 내가 뭔가 아주 큰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었달까."


어려서부터 엄마보다 아빠와 친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야구에 입문했고, 아빠와 바둑을 두고, 조립식을 하고 놀았다. 아빠는 평소 다정하고 표현을 잘하는 성격인 반면, 다소 감정적인 면도 있었다. 친구처럼, 잘 놀다가도 한 번 싸우면 일주일씩 말을 안 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며 "둘이 똑같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아빠의 MBTI가 나와 정 반대야!! 내가 예상했던 아빠의 MBTI와 전혀 달라!!


MBTI 결과보다, 아빠의 답안이 나의 예상과 너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빤 내가 잘 알지' 하며 큰소리를 쳤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왜 아빠를 잘 안다고 착각했을까?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제일 잘 안다며 새삼스럽다는 핑계로,

관심을 두지 못 한 건 아닐까.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연예인 MBTI에도 관심이 높았으면서 정작 엄마 아빠는 궁금해한 적이 없네.


미안, 아빠. 엄마.

막내딸은 반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