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20대 후반까지 늘 불안하고 외로웠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끝없이 땅을 파고 스스로 그 안에 누워 흙을 덮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아무 사건 없이도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발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나만 멈춰 있고 주변은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통과의례일지 모르지만, 유독 그 시기를 고통스럽게 지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나였다.
친구들과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텅 빈 마음이 가장 싫었다. 가겠다는 친구를 붙잡으며 "조금만 더"를 외쳤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던 감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마음속에 균열이 생겼다.
'나는 왜 늘 외로운 걸까?'
그날따라 느낌이 달랐다. 북적이는 술집,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대화소리, 눈부신 조명 속에서도 외로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밤인지 낮인지 시간이 멈춘듯한 그 공간에서 내 시계만 순간 '째깍'하고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고독과 공허감은 훨씬 서늘했다.
결국 술자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리를 나섰다.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려렸다. 그때 깨달았다.
내 외로움은 결코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질문이 바뀌었다.
'이 감정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저 외로움이라 여겼던 감정은 공허함이었다.
공허함: 아무것도 없이 텅 비다.
외로움이 물리적으로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공허함은 정서적 고독에 가깝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야 하는 상태.
스스로 채워야 하는 공간.
감정의 정확한 이름표를 붙인 이후, 당연했던 감정은 낯선 감정으로 바뀌었다.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은 오히려 방어 본능을 자극했다. 공허라는 단어는 왠지 더 묵직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무기력하게 맞이했다면, 공허함은 두 손에 글러브를 끼고 전투적으로 맞아야 할 것 같았다.
'무언가 비어있어 그런 거라면 무엇이든 채우면 되지.'
그 날이후 내 인생의 키워드는 '채우기'가 됐다.
처음엔 어떻게,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막무가내 식이었다. 제일 먼저 홀로서기가 필요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가 당면한 과제였다.
취미를 찾으려 애쓰고,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를 뒤지고 무언가를 계속 배웠다. 자기만족형 학습이었다. ‘안 채워지면 다른 거, 또 다른 거’ 하며 미친 듯이 시도하기를 몇 년.. 뚜렷한 결과물은 없어도 채우려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공허함의 농도는 조금씩 옅어졌다.
아이러니하게 공허함 채우기 시도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이젠 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마음은 한 번도 내가 채우려 생각해 본 적 조차 없는 공간이었음을.
아픈 후 건강을 챙긴 듯, 긴 시간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몸에서 보낸 신호였음을 깨닫자 욕심이 생겼다.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10분, 2시간, 하루.. 무채색이었던 시간을 조금씩 알록달록하게 채워갔지만, 여전히 홀쭉한 마음은 '좀 더 좀 더'를 외쳤다.
'나는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