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my feeling, 전시후기
한파가 매서운 금요일 오후,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빼놓지 않고 보는 그림책 전시, <2025 그림책이 참 좋아>를 보기 위해.
전시장 입구부터 익숙한 그림체가 반긴다. 최숙희 작가님의 따듯한 그림체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난다.
전시 포스터에 쓰인 그림은 최숙희 작가님의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표지 이미지였다.
어쩜 이렇게 색도, 그림체도 따듯할까.
입구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반겨준다.
"어서 와"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나는 7살로 돌아가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간다.
늘 책 한 권 읽는 기분으로 전시를 관람한다.
입구에 있는 문구는 책에서 저자의 말이나 들어가는 말과 같아서 꼭 읽고 들어가는 편.
"그림책에 담긴 삶의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옳음과 그름을
두루 경험하면서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림책 전시를 왜 봐?"
"아이들이 보는 거 아니야?"
....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2021년.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그림책을 빌리러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아이들 카테고리를 서성이며 책을 고르는 데 머쓱했다. '이 나이에... 나를 위해 그림책을 빌리다니..'
마치 유년기 시절 꿈속에 있는 듯, 낯선 기분이 들었다. 대충 눈에 띄는 대로 5권을 빌려왔다.
좀 전에 느낀 민망함은 사라지고 차분히 글과 그림을 읽었다.
'나'를 위해 읽는 그림책은 달랐다. 따스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울렁였다. 포근히 서로 안아주는 장면을 보며 드라마나 영화 속 슬픈 장면을 마주했을 때처럼 울컥했다.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 그림책은 나를 안아주는 존재가 됐다. 이 날 이후 그림책은 내 마음의 안정제 역할을 했고, 그림책 전시는 나를 위로하는 공간이 됐다.
마음이 힘들 때, 그림책 읽어보는 걸 추천하는 이유다. 물론, 나와 맞는 그림책을 잘 만나야겠지만..
아직 전시관람 초보자이지만, 나만의 방법이 생겼다.
예술적 지식이 없는 내가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이 전시에서 궁금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질문을 하나 만든다.
내게 전시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림책 전시 질문은 늘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일까?'
그림책 전시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캐릭터, 그리고 싶은 그림 스타일 등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 마음대로 캐릭터 순위 매겨보기.
마음에 든 캐릭터 순위
1위. 아니사우르스
-뭐든지 '아니'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작은 공룡입니다-
캐릭터로서도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투박한 펜선, 여백, 따듯한 색감의 조합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절로 따라 그리고 싶어지는 그림.
2위 구름공장
개인적으로 구름을 굉장히 좋아해서 사적감정을 듬뿍 담은 캐릭터.
포근한 느낌의 색채와 입체적인 연출이 매력적이다.
3위. 달평씨
평소 '느림의 미학'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흐르는 세상에서 분명 '느림'은 단순히 속도가 아닌, 삶에 대한 가치관이 아닐까. 방향만 맞다면 조금 느리게 가도 좋을 것 같다. 달팽이, 거북이..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라 애정이 더 간다.
'또 만나요 달평씨'
4위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신박한 아이디어다. 고무장갑을 캐릭터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귀엽기까지...
다른 장갑 친구들도 너무 귀엽다. 색감의 조합과 색연필로 그린 느낌이 좋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5위 슈퍼거북. 슈퍼토끼
거북이 당첨.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책.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네 마음을 외면하는 실수만 하지 마.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돼. 한 때는 토끼였고, 한 때는 거북이였던 작가가 꾸물꾸물 제 길을 가며 찾아낸 이 답이 독자의 마음에도 전해지기를 바라봅니다."
누구나 토끼일 때도 있고, 거북이 일 때도 있다.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
<수크를 찾습니다>
심플한 그림체와 여백. 화려하지 않은 색채가 눈길을 끌었다.
<너의 날>
"그림책을 만든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
황 K 작가의 말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잠시 글 앞에 머물렀다.
투박한 그림체. 단순한 배경에 인물을 부각했다. 어린아이 그림처럼 친근한 느낌이 좋다.
<인사>
펜으로 슥슥 낙서하듯 그린 그림.
캐릭터만 색을 칠해 강약조절이 부각됨.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건 늘 이렇게 담백한 그림이다.
<꽃점>
귀여운 곰 캐릭터.
따스한 색감.
<바람숲 도서관>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통틀어 가장 훔치고 싶은 그림실력과 연출력을 가진 작가였다.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져봤다.
연출과 구도. 상상력이 마음에 든 작품.
<엄마를 구출하라>
내용은 평범하지만, 연출과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스토리 보드를 보는 듯한 느낌.
아이들을 위한 영상관이 있다. 나는 영상보다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영상이 입체적이라 재미는 있었다.
상상력이 놀라웠던 작품
<뒤죽박죽 박물관>
캐릭터도 귀엽지만, 상상력과 입체적인 연출력이 무척 뛰어나다.
명화를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연출한 방식이 놀랍다.
영상임. 나폴레옹 그림에 손가락이 등장해 망토를 빼앗아 버린다. 놀란 나폴레옹 표정이 압권이다.
흥미로웠던 전시
전시에서 제일 좋아하는 카테고리는 '작가들의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디어를 만들고 장면연출하는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제일 흥미롭다.
얼마나 힘들게 작품을 만드는지 알 수 있는 코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한 전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조던 스콧' 작품.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은 아니다.
어두운 톤의 수채화 느낌을 안 좋아하는 것뿐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았던
<빵 공장이 들썩들썩>
빵 모형이 함께 있어 진짜 빵 집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유쾌한 느낌의 전시.
<으라차차 라면가게>
귀여운 고양이.
마음에 들었던 영상관.
1월부터 12월까지 태어난 달에 맞춰 그린 그림.
영상미도 좋고 따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내가 태어난 4월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당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 최숙희 작가님의 작품.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매번 그림책 전시를 볼 때마다 설렘을 느낀다. 현실이 아닌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좋아하는 그림체와 캐릭터를 만나기도 하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림체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어떤 그림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답은 중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
전시는 나를 더 알아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전시장 입구에서 반겼던 친구가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느낌.
안녕. 또 올게.
<그림책이 참 좋아> 전시 정보
전시 기간: ~ 2025. 3. 2까지
장소: 예술의 전당 서울 서예박물관
시간: 10시~ 7시까지 (입장마감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