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어느 날 '딩동' 카톡 하나가 왔다.
"안녕? 나 00 고등학교 000인데,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잘 지내니?"
고등학교 시절 친해졌다가 30대 초반 끊긴 인연이었다. 오해가 생겼고, 그 친구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내가 화를 내고 끊었던 관계다. 사람마다 관계에 있어 최소한의 선이 있다. 그 선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나였지만, 내 기준에서 '이건 넘으면 안 돼'하는 선을 그 친구가 한순간에 훌쩍 넘어버렸고, 그 친구를 향한 애정은 한순간에 끊어졌다.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몇 년 후, 그 친구가 화해를 요청하는 연락을 했다. 화해는 했지만 끊겼던 관계가 예전처럼 딱 이어지진 못했다. 어설픈 관계로 지나던 와중에 그 친구가 결혼을 하게 돼서 결혼식을 갔다. 그게 딱 10년 전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 몇 번 카톡을 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리고 이번에 연락이 온 것이다. 내가 생각이 났다며. 연락만 안 했을 뿐이지 과거 이야기할 때마다 종종 언급되던 친구였다. 기억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새삼 너무 모르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온 연락이 웃겼다.
"당연히 기억하지. 00 고등학교 00은 뭐야. 내가 널 기억 못 할까 봐? 잘 지내?"
"응. 너무 오랜만이라 혹시 해서 보냈는데... 이상했나 보네.. ㅎㅎ"
"이상한 건 아닌데 왠지 오글거렸어. 당연히 기억하지"
"그러네. 네 성격에 오글거렸을 순 있겠다."
아차! 난 심리적으로 가깝다고 생각해서 던진 반응이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친구 입장에선 민망했겠다 싶었다. 변명하자면, 내 입장에선 화해도 했고, 결혼식도 갔고,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몇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기억을 못 할까 자신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왠지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입장이다. 그 친구는 과거에 끊어진 기억도 있으니 그 시간이 나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을 수 있고, 내가 자신을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린 심리적 거리가 달랐다.
그 친구가 내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자체가 '그때 그랬었는데..' 하는 그리움이라면,
나는 '오랜만에 연락했네'정도였다.
나도 그 친구처럼 "와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야?" 이런 반응을 보였어야 했던 걸까?
나는 그저 잠깐 떨어져 지냈던 정도 느낌이라 그랬는데, 그 친구는 내 반응이 서운했을까?
어쩌면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서 그랬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떨어져 지낸 물리적 시간까지 신경 쓰지 못한 내 불찰일 수도 있겠다. 마음이 쓰여 다음날 다시 연락을 했다.
"어제 너랑 연락해서 그런지 꿈에 네가 나오더라. 너 시간 될 때 한번 통화라도 하자."
다시 예전처럼 꽁냥꽁냥 지내진 못한다 해도
내가 생각나 연락했다는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끊긴 관계를 억지로 낑낑대며 이어 붙이는 마음과 시간적 여유 따윈 진작 사라졌지만,
징검다리 건너듯 긴 삶을 사는 중간에 넘나드는 관계도 있다.
그 관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자연스레 끊어져 추억 속에만 남는 관계가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 추억을 공유하는 관계가 있고,
이제 평생 가는 게 당연해진 관계가 있다.
관계의 성격이 다를 뿐이다.
그 친구가 "00아~ 나 00야 잘 지내니?" 하며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단지 내 욕심이다.
먼저 연락조차 안 했으면서..
여전히 마음에는 있는 존재라고, 나와 심리적 거리가 달랐을 뿐이라고,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욕심에 불과하다.
다음에 만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먼저 연락 줘서 반가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