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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Apr 03. 2024

처음 현관 타일 붙인 날

살림은 싫지만

내 평생 최초로 현관 타일을 혼자 붙인 역사적인 날.

부끄럽냐고? 아니. 뿌듯하고 당당한데? 사람이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훗.


친구들한테 자랑스럽게 타일 사진을 보내면서 내 태도는 당당함을 넘어 '뻔뻔함'이었다.

살림이나 인테리어에 1도 관심 없이 평생을 살았다. TV에서 사람들이 집을 이렇게 꾸몄다 저렇게 꾸몄다고 공개할 때 내 반응은 하나였다.


그런가 보다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였다. 대체 공간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열심히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곳까지 열심히 꾸미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한테 공간이란 그저, 쉴 수 있는 침대나 소파,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 TV나 부엌,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있으면 되는 곳이었다. 집은 오직 '집'으로서만 기능할 뿐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건 불과 1-2년 전이다. 머릿속이 한참 거미줄처럼 엉켜있던 시기였다. 뒤죽박죽인데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퍼진 자료와 파일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하나하나 거슬리기 시작했다. 눈에 띈 건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살았던, 오래된 낡은 집이었다.


'거슬린다'는 느낌이 뭔지 난생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하자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모두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눈에 띈 건 현관이었다.

죄송..

살림을 얼마나 싫어하고 안 하는지 예상할 수 있는 사진이다. 이 현관이 이제야 거슬리기 시작했다니 말 다했다. 마침 친구가 안 쓴다고 줬던 스티커형 타일이 생각났다. 안 쓰고 묵혀둔 물건도 하나씩 정리하던 시기였다. 스티커도 써서 없앨 겸 결심했다.


'타일을 붙여보자!'


시트지 관련 지식, 없음.

손재주, 없음.

꼼꼼함, 없음.


그날따라 무엇에 씐 걸까? 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준비물을 하나씩 챙겼다.

타일, 가위, 휴지, 마른걸레, 젖은 걸레, 걸레 빨 작은 대야, 노동요 대신 태블릿으로 예능을 틀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무식하면 즐겁다.

마음속에서 주문처럼 되뇌었다.


뭐 어때?


망칠까 봐 살짝 움츠린 마음을 피기 위한 주문이었다. 까짓 거 망쳐봤자 별 거 아니다. 최악은 보기 흉한 게 다다. 그러니 마음껏 망쳐보자는 다짐을 했다. 망칠까 봐 너무 조심조심하기 싫었다. 인생에 중요한 일은 너무 많다. 망치면 큰일 나는 일도 셀 수 없다. 현관 타일 붙이는 일까지 그러기 싫었다.


놀아보자!


더러운 현관을 먼저 쓸고 닦았다. 젖은 걸레로 닦고 물기를 없애기 위해 마른걸레로 한 번 더 닦았다.

물기가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 편히 예능을 시청했다. 몇 분쯤 흐르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타일을 하나 꺼냈다. 화학제품 같은 냄새가 확 났다. 다시 덮어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들었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타일은 정사각형으로 한 박스에 한 장씩 총 10장이 들어있었다. 스티커처럼 떼서 붙이면 끝이었다.

하나하나 떼서 붙이는데 아뿔싸, 점점 평행이 안 맞더니 듬성듬성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4-5개 붙였을 때쯤 뭔가 사고를 친 기분이었다. (사이즈를 재서 붙여야 한다고 한다.)

이 기분에 지면 안된다. 일단 한 줄을 붙였다.


그리고 ....용감하게 덧대기 시작했다.  

어쨌든 바닥이 안 보이게 모두 붙이면 되는 거 아닌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그만이랬다.


처음이 어렵지 덧붙이는 건 점점 쉬웠다. 처음엔 모양이 좀 그런가? 삐뚤어졌는데? 덧대니까 볼품이 없긴 하네.. 주춤거릴 때도 있었지만 하다 보니 점점 대범해졌다. 어차피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는 마음이 이겼다. 가끔 예능도 힐끔힐끔 거리며 타일을 붙인 영역은 점점 넓어졌다.

새로 깐 타일 위에 털썩 앉아 흥얼거리며 스티커를 쭈욱 뜯어서 철썩 붙이는 행위는 왠지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을까. 나 혼자 만족한 현관 타일 붙이기가 끝났다.

일어나서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현관이 환한 느낌이었고, 이전 현관이 워낙 더러웠다 보니 깔끔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신발을 하나 꺼내서 현관에 배치하니 그럴싸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냄새'였다. 냄새는 지독했다. 문을 열고 내내 환기를 시켰다.  

(환기는 하루로 안 끝나서 2-3일 걸렸다.)


사진을 찍어 남편한테 전송했다.


"미안 내가 사고 쳤네."


1이 사라지고 바로 답이 안 왔다. '분명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있겠지.' 핸드폰에 액정 필름 하나 붙일 때도 신중한 성격의 남편인지라 걱정도 됐지만.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너의 운명을'


답장이 왔다.


"잘했네 ㅎㅎ"

"진심이야?"

"응. 진심이지."


울며 겨자 먹기든 아니든 받아들인 것 같았다.

다행이다.

곧이어 친한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네가 요즘 웃을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웃으라고 보낸다

"ㅍㅎㅎㅎㅎㅎㅎㅎ"

"출장 가능하다. 너희 집 현관 타일 붙일 일 있으면 해 주마. 한 번 해봤더니 이제 손이 좀 익네."

"괜찮다. 사양하마."


나중에 들어보니 현관용 타일은 면적이 조금 더 넓은 걸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집에 있는 걸 없앨 겸 시도한 거라 현관용을 따로 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아니, 엉망이지만.

누군가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박아뒀던 타일 스티커를 없앴고, 더러운 현관이 일단 깨끗해졌다. 누군가는 웃었고, 나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관심 없던 인테리어에 흥미가 생겼다.

다음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졌다.

예쁘지 않을 뿐 얻은 것이 더 많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꼭 완벽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뻐야 성공인 것도 아니다. 그것이 정신 승리에 불과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행복했다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뭐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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