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문러의 글쓰기연습장]
내게 필사는 '시간낭비'였다.
웃긴 말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필사를 안 한다니.
진짜 쓸데없는 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조급함이 문제였다. 가끔 필사를 할 때면 문득문득 '이거 한다고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시간에 차라리 글을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양을 늘리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은 그저 눈으로 읽으면 된다, 그렇게 믿었다.
하루종일 불안했다. 가끔 불안이 찾아오니 익숙하지만오늘은 하루종일 붙어있었다. 날은 따스한데 따듯함도느끼지 못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고, 글도 계속 들락날락했다. 책도 눈에 안 들어왔다. 머릿속이 엉킨 건 알겠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공쳤구나'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았는데 여전히 멍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글쓰기 강좌를 찾았다. 딱히 기대는 없었다. '똑같은 말이겠지, 뭐'. 아웃풋이 안되니 인풋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시를 필사하는 게 참 좋아요"
평소라면 뻔하다며 넘겼을 이야기가 뻔하지 않았다.
불안과 평소 글맛을 높이고 싶다는 욕구와 우연이 만나 어떤 효과가 난 걸까?
필사가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시집을 한 권 찾고 새 노트를 폈다. 무심코 흘러가는 시간이 날 불안하게 만들까 봐 20분 타이머를 맞췄다. 20분. 내가 필사에 할당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었다.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난 필사만 하면 된다는 안정감.
저녁 9시. 동네는 이미 다음 날을 위한 휴식에 들어간 시간. 밖은 조용하다.
천천히 필사를 한다. 가끔 소리 내서 읽고, 가끔 시선을멈추는 문장을 만나면서. 한참 집중해서 쓰다가 타이머 소리에 깜짝 놀라 멈췄다. 왠지 아쉬워 조금 더 썼다사각사각. 볼펜 소리가 좋고, 살짝 아픈 손 느낌이 좋다글씨도 잘 써진다.
이런 날도 있구나.
부끄럽지만, 필사가 이런 감각을 주는 거라는 걸 처음 깨달은 날이다. 2025년 계획에 필사는 없었다. 당분간 매일 필사를 해보려 한다.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질 때까지. 좋아하는 시집 한 권 필사를 완성할 때까지.
기상 후와 저녁 중, 나에게 맞는 시간을 찾아보면서.
나에게 제일 잘 맞는 시간대가 언제인지 찾으면서.
이렇게 오늘 겨우 한 편의 글을 썼다.
필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