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일 수 있다면, 지성인가? 튜링이 AI에게 던진 질문

AI시대를 만든 거인의 어깨

by TEUM Lab

1950년 10월, 맨체스터 대학의 한 연구실.

유난히 쌀쌀한 가을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있었지만, 타자기 앞에 앉은 남자의 손끝은 망설임이 없었다.


앨런 튜링.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영화〈이미테이션 게임〉속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인상적인 연기 덕분에,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치 독일의 암호 ‘에니그마’를 무너뜨린 영웅이자, 동시에 개인의 삶 때문에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 고립되기도 했던 천재.


오늘은 그가 남긴 가장 섬뜩한 질문을 따라가 보려 한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


The_Imitation_Game_(2014).png 영화〈이미테이션 게임〉포스터 [출처: Wikipedia]



가면무도회: 고로 나는 인간입니다

튜링은 복잡한 정의 대신, 단순한 게임을 고안했다.


방 안에 있는 세 사람. 남자, 여자, 그리고 심문관.

심문관은 다른 방에 격리돼 있고, 오직 타자기로 인쇄된 문장으로만 대화를 나눈다.


심문관의 목표는,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 맞히는 것.

반면 남자의 목표는, 심문관을 속여, 자신이 여자라고 믿게 만드는 것.


"이제 남자의 자리에 기계를 앉혀 보자."

튜링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간다.

만약 기계가 심문관을 속인다면, 우리는 “기계가 생각한다”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튜링은 목소리나 외모 같은 껍데기가 본질을 가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몸을 지우고 텍스트만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이 제약은 기계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육체의 굴레를 벗어던진 기계가 오직 언어라는 무기로 인간과 대등한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내면의 ‘본질’을 파고들 때, 튜링은 관찰 가능한 ‘행동’을 해답으로 내밀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속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지성이라 정의한 셈이다.


일명 ‘튜링 테스트’.

인공”지능”의 출발선은 여기서 그어졌다.

Turing_test_diagram.png 튜링 테스트 [출처: Juan Alberto Sánchez Margallo / CC BY 2.5]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

2026년의 일상에서 ‘속이기’는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스마트폰에 말을 걸고, ChatGPT와 Gemini에게 문장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한다.


튜링의 예언대로 기계는 2024년 5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

인간을 배려하듯, 조금 멍청한 척 애써 노력까지 하면서.


우리 인간은 기계에게 우주 유일의 “지성”이라는 자리를 쉽게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이제는 ‘인류의 마지막 시험(Humanity’s Last Exam)’ 같은 비장한 이름의 시험지까지 꺼내 든다.


AI도 속으로 욕하고 있을지 모르지.

“이건 약속과 틀리잖아.”


인간이 아직까지 AI의 "시험감독관"으로 남아있는 2026년 오늘.

덕분에 인류의 자존심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10년 후에는? 20년 후에는 과연?

그때는 AI가 인류의 “감독관”이 되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누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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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이나 편견에 갇히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자유롭게 호흡하는 하루이기를.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방대한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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