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길의 끝에서

까미노 아라고녜스, 마지막 날

by 테우리

그날은 마지막 날 같지 않게 어느 때보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경치도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사진을 찍느라 뒤쳐지곤 했다.



한 산길에서 묘하게 생긴 난초 꽃들을 계속 마주치게 되었는데, 각각이 너무 특이해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이 풀숲에서 쭈그리고 하나, 저기서 하나. 이렇게 찍다 보니 길에 나만 남게 되었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 사이로 멀리 내다보이는 스페인의 들녘이 참 노랗고 순하고 평화로워 보여서 뒤처짐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느긋하게 길을 걷는 데, 저 앞에서 누가 헐레벌떡 뛰어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급정거를 한다.



아이쿠, 피에르 할아버지가 내가 하도 안 오니까 걱정돼서 달려온 거다. 얼굴에 다행이란 기색이 역력하다. 다리도 안 좋은데 뭘 뛰어오시기까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피에르 나 진짜 애기 아니에요, 성인이라고요! 여기 산적도 없고 위험한 거 하나 없어요~!"


그 뒤를 이어 쫓아온 쟝도, 피에르도 꽤나 머쓱했는지 아 그냥, 와본 거라고 하더니 다시 앞장서 걷는다.

이 할아버지들이 고 며칠간 내가 손주딸마냥 정이 들었나 보다. 괜히 걱정 끼치지 않게 적당히 '보이는' 거리에서 잘 따라 걷기로 했다. 어느 새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오늘 하루 일정이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까미노는 이제 나의 까미노가 되었다.




이날은 까미노 아라고녜스의 마지막 기점,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가는 날이었다.





어제 쟝과 둘이 먼저 가는 바람에 피에르가 무척이나 외로워했다고 쟝이 엄청 챙겼다. 쟝은 그래서 오늘 꼭 피에르와 함께 가자고 했고 나도 마지막이니 만큼 같이 가자 했다.


나의 이번 까미노는 아라곤 길까지만이었고, 알고 보니 쟝도 마찬가지였다. 쟝은 가을에 친구와 메인 까미노 프랑스길을 다시 걸을 예정이라 이쯤에서 쉰다고 했다.

해를 등진 쟝-뤽 아저씨


하지만 까미노의 끝까지 걸어 아내의 유해를 뿌린 자리를 가기로 마음먹고 걸어온 피에르에겐 지금껏 걸어왔던 것보다 훨씬 많은 거리가 남아있었다. 아마 그 뒤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지는 모르기 때문에 쟝은 더욱 피에르가 걱정된 것일 거다.



이날 길은 거의 평지나 내리막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보다 아라곤 길에서는 '자연' 속에서 걷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그 끝자락 이어선지, 아니면 팜플로냐라는 나름 큰 도시에 가까워져선지, 점차 '사람 사는 동네' 같아졌다.


길 가의 레몬나무에 초록 레몬이 배 꼭지를 내밀고 앙증맞게 달려있었다. 해가 슬슬 떠오르면서 더워지고 있었다. 6월의 스페인. 해가 떠오르는 저 동쪽으로 쭈-욱 날아가면 나오는 내가 사는 서울과 같은 대륙, 같은 하늘인데. 내 방에서 지낼 때는 이런 세상이 있단 걸 전혀 몰랐구나 - 그런 생각이 또 들었다.


평야지대여선지 조금만 올라와도 훤히 잘 보였다.


너른 대지에 산도 거의 없고 노란 밀로 덮여있는 걸 보니, 초여름 같지도 않고 참으로 외국 같다.


외국 맞다. 흐음. 새삼 마지막이라서 괜히 더 의식되나 보다.







진로를 못 정해서, 회사생활에 정신을 못 차려서, 해답을 얻어보자 하고 온 까미노였는데. 나는 얼마나 찾은 걸까.


까미노를 시작하기 앞서 '이 길에서 얻는 생각과 감정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준 내 인생의 해답이다!' 하고 나 자신에게 못 박아두고 왔었다. 그래서 물이 떨어져 죽을 거 같을 때에도, 인생은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구나-하고 맘에 새기자 싶었고, 너무 힘든 날에는 딱 저 앞까지만 가는 걸로 하고 그것만 생각하자, 인생도 그렇게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해서 사는 게 낫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 그런 답들이 내가 여기에서 얻은 것이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나도 눈에 빛이 나고, 활달하고, 새로운 곳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까먹고 있었다. 회사 책상에선 나는 흐리멍덩하고 의욕 없고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참 많이 혼났는데! 지금 생각엔 물론 그건 환경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나도 또릿또릿 했던 사람이란 걸 잊고 있었다.


이렇게 당장 눈앞에 남이 시키는 일이 없고,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 속에서 자유스럽게 있자니 '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고, 내가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았고, 나는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을 이 길을 걸으며 주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십자가를 멘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이해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니까.

중세시대에도 이 풍경 그대로 였을 것 같다


마지막 날이지만 길에 대한 생각이나, 길에서 친하게 된 사람들이나, 까미노 자체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따로 갖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내 일정 순서대로 쓰되 각 날의 주제를 정해서 테마별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내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쓰게 되었다. 까미노를 가게 된 많은 한국 사람들은 각자 매우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그 중심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였을 뿐이다.


사람들과의 이야기 말고도 정말 매일 새로운 경치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마지막 날의 사진을 조금 풀어볼까 한다.



길 가에 핀 꽃도 어찌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던지.
눈이 아릴 정도로 샛노랗던 꽃, 개나리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정말 다르다


걷는 내내 날씨가 참 좋았다. 유럽의 새파란 하늘과 직사광선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진은 참 아름답게 나오지만 걷는 사람으로선 사막이 따로 없었다. 허허허.


사이좋은 쟝과 피에르, 프랑스어로 대화 중
석회질 때문인지 수로 물조차 에메랄드 빛이다



중간에 도착한 마을엔 사람이 없어서 아름다운 집 모형을 줄지어 세워놓은 세트장 같았다. 하긴, 이런 불더위에 밖에 나온 사람이 더 이상할 거다. 다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쐬는지도 모르겠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낮에 일하는 할아버지를 딱 한번 봤는데, 집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데도 진짜 사막 행군하는 것처럼 빨갛게 익으셔서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어 졌었다. 문화란 그 환경에 적응한 사람들의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시에스타는 꼭 필요했던 거다... 특히나 낮이 긴 스페인의 여름에 굳이 이 낮에 밖에서 일하는 건 효율 감소다, 감소.



이번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있어서 두 할아버지는 잠시 들려보고 나는 그동안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 마을까지 지나자 우리 셋은 그야말로 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더위에 익어버렸다. 지치고 더위 먹어서 이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한참 걷자 드디어 그늘이 좀 나오고, 저 앞에 교회 같은 것이 보였다. 성당 내부에는 스페인 방송국에서 뭔가를 촬영 중이었다. 나중에 해외 다큐 같은걸 보면 나오려나. 쟝이 나더러 저기서 인터뷰해서 한국 대표로 방송 출연하라고 또 농담이다. 참 힘들어도 웃을 줄 아는 아저씨다. 성당 안 나무의자에 앉아 조용히 쉬다 보니 서늘해졌다.


쟝이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푸엔테는 '다리'란 뜻이고, 그래서 우리가 갈 곳은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름 그대로 다음 까미노로 향하는 길목에 다리가 놓여있단다. 그 다리가 우리가 지금껏 같이 걸어온 사람들과 헤어지는 그 기착점이자 다른 까미노 순례자들에겐 다음 여정의 시작점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Puente La Reina. 정말 예쁜 마을이었다.



짐을 풀어놓고 마을을 구경할 때 일부러 이 다리에 와서 내가 본 가장 산띠아고에 가까운 노란 화살표를 사진으로 남겼다. 내일 아침이면 피에르와 프랑스 길을 따라온 수많은 순례자들은 이 화살표 뒤로 걸어갈 것이다.

내가 다음에 올 땐 너를 넘을 거야 - 하고 약속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나도 산띠아고 성당과 그 뒤에 펼쳐질 푸른 바다를 볼 것이다.



아쉬웠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비행기를 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날 저녁은 나만큼이나 아쉬운 쟝과 피에르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 같이 마을을 돌면서 마을의 성당 구경도 하고, 한 바퀴 빙 돌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테라스에 앉아 저녁을 먹는데 우연히 우리를 발견한 이탈리아 아저씨 파울로도 반갑게 인사하곤 합류했다. 파울로는 부르고스 까지 가서 거기 이탈리아 인을 위한 알베르게에서 며칠 일할 예정이란다. 원래는 베네치아에서 경찰관으로 일하지만 까미노가 너무 좋아 긴 휴가를 얻어 이렇게 자주 온다고 했다.


까미노는 오는 사람 모두가 사랑하게 되는 길인 것 같다. 아라곤 길은 참 사람이 없는데도 잘 정비가 되어있어 나는 매번 놀라곤 했는데, 이런 길 점검이나 정비는 '까미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에서 하고 있다고 쟝이 설명해준 적이 있다. 파울로처럼 까미노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까미노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모아서 기여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즐겁게 걸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앞으로 각자가 걸을 까미노, 그 다음날의 까미노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와 쟝이 그날이 마지막이 돼버리자 모두들 서운한 듯했다. 사실 내가 제일 서운했다. 파울로는 다음날 갈 곳에 와인을 무료로 주는 분수(?) 같은 게 있다며 나를 놀려댔다. 피에르는 점차 말이 없어지더니 조용해졌다. 무척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날 밤 쟝은 자신의 호텔로 돌아갔고 그 뒤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 피에르만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피에르도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고 했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일 것이다. 피에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프랑스어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말 슬펐다. 나는 뭔가 작별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줄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속상했다.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정말 잘 챙겨주고, 앞으로 외로운 길을 걸을 이 할아버지에게 꼭 격려를 하고 싶어서 내가 항상 손에 차고 있던 머리끈을 피에르의 손목에 걸어주었다. 그냥 한국 길거리에서 파는 머리끈인데 정말 줄게 그것밖에 없었다. 나도 피에르는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이걸 행운의 증표로 주겠다고, 꼭 끝까지 무사히 걸어서 아내를 만나면 좋겠다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깊었다. 나는 그 뒤로 쟝과 피에르를 보지 못했다. 나의 까미노 아라고녜스는 무사히 끝을 맺었다.







까미노 아라고녜스 7일

: Monreal(몬레알) -> Puente La Reina(푸엔테 라 레이나)



: '푸엔테 라 레이나'라는 이름의 마을은 다리가 있는 마을이 여러 곳이니 만큼 사실 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구별하기 위해 그 뒤에 어디 근처인지가 나오는데, 까미노 아라고녜스의 종착점은 -Gares 로 끝나는 곳이다. 몬레알로부터 이어지는 길은 숲 길이라 그늘지고 걷기가 편하다. 주로 평지길이 이어지다 알베르게가 있는 Tiebas를 지나면 곧 내리막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프랑스 길과 가깝고 사람이 많아져 알베르게 간의 간격이 짧다. 내리막 뒤에는 그늘 없는 길이 이어지므로 꼭 모자를 챙기길 바란다. 푸엔테 라 레이나부터는 프랑스 길과 겹치므로 알베르게에 사람이 엄청 많아진다. 그 전에는 자리가 없는 적이 거의 없었으나 여기서부터는 알베르게가 꽉 찰 수도 있으므로 주의할 것. 마을에 있는 다리 밑에는 물놀이하는 사람도 많으니 낮에 도착하고 여건이 되면 물에 들어가 보면 재밌을 듯.


이 마을 이후로는 프랑스길을 따라 산띠아고 대성당까지 걷는 것이 아를길 또는 아라곤 길로 시작한 순례자의 루트이다.




다 끝난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다음 날 하루를 더 걷기로 했다. 이번에는 집에 가는 길이다. 다른 순례자와 반대방향으로! 프랑스길을 역행해 팜플로냐까지 오전을 걸어 대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마드리드의 공항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마지막까지 나는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걸으면서 이번 까미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까미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을 담은 마지막 글로 이번 브런치 연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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