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아라고녜스 연재 후기
빠르면 5일, 보통 걸음으로 6일, 느긋하게 걸으면 1주일 걸리는 아라곤 길을 완주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주일 만에 스페인을 떠나게 되어버렸지만 아쉬움이 커서 마드리드 가는 날에도 거꾸로 프랑스길을 걸어 팜플로냐로 갔다.
노란 조가비 표식 때문에 쉬울 줄 알았는데 거꾸로 간다는 것은 생각보단 어려웠다. 표시라는 게 가끔은 보물 찾기처럼 숨어있곤 하고, 한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역주행하는 사람에겐 도통 상상하기 힘든 곳에 있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더 어려워서 나중에 역주행으로 완주해도 좋을 듯 싶다 ㅎ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결국 팜플로냐 시내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고속도로 근처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길가에 있는 아저씨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구조요청을 해서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하긴 했다만 ㅎㅎ
역주행하면 좋은 점은 모든 순례자와 반대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인사하기 매우 좋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라곤 길과 완전 다르게 6월 말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아서 거의 10미터쯤 걸어가면 새로 인사할 타이밍이 되곤 했다. 프랑스 팀, 미국 사람, 미국에 이민 가서 남친과 함께 걷다 내가 중국동포인 줄 알고 반갑게 인사하던 중국 여자분, 멕시코계 미국 이민자 부부, 남아공에서 온 할머니, 우리나라 재외교포인데 한국말 하나도 못하던 청년 등등 온갖 사람이 가득했다. 아라곤 길을 걸으며 처음 본 순례자들에게도 웃으면서 "좋은 길 되세요!" 하고 먼저 말 건넬 정도는 되었다. 사람들도 하나하나 인사할 때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렇게 걸을수록 더 아쉬워지고 나와 함께 걷던 사람들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중간에 한 마을에서 한국인 유학생 자매를 만났는데 그 둘은 정말 까미노를 만끽하고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여유 있게 체리를 나눠주며 바닥에서 쉴 줄도 알고, 들렸던 마을 강가마다 수영도 하곤 했단다. 30여 일을 비우고 즐겁고 행복하게 걷고 있는 그들이 참 멋지고 부러워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들도 까미노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즐겁게 걷는 중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내가 모르는 곳과 시간 속에서도 나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 웃음을 나누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동질감과 새로움이 느껴졌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서 번잡하고 유명세 타는 프랑스 길을 피해 일부러 조용하고 한적한, 한적하다 못해 인적이 드문, 아라곤 길을 택해 걸었는데도 결국 1주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해보라면 '사람'이었다.
오히려 더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그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속했던 그 어느 공간에서보다 빠른 시간 안에 동지애가 생겼고, 서로를 위하게 되고, 작은 일에도 진심으로 웃었으며, 따뜻한 눈빛을 띄었다.
나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아라곤 길에 대해 아무런 한글 자료가 없었기에 내가 출발하기 전에 겪었던 어려움이 이번 연재를 통해 좀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동시에 한국에 알려지지 않고 계속 조용하고 사색할 수 있는 길로 남길 바라는 마음도 있긴 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결국 내가 중점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건 아마 나와 그 시간대를 공유한 사람들만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건 내 작가로서의 역량 부족일 테다. 나의 그 개인적인 시간들은 아라곤 길과 함께 완결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길을 걸으며 그와 비슷하지만 또 완전 다른 새로운 사람들 간의 만남, 이야기들이 색색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
까미노의 매력은 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이 이뤄지는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라곤 길이 아니더라도 까미노 안에서 그들만의 만남과 이야기를 찾길 바란다. 나 또한 다음에 프랑스 길을 걸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추신: 아라곤 길에서 만난 파울로 아저씨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오로지 까미노에서 만날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길 바래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지만 까미노를 갈 거라면 기본적인 영어를 해두길 추천한다. 정말 사람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아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추신 2: 귀국 전날 마드리드에서 한인 알베르게 "까미노의 친구들"에서 묵었는데 프랑스 길, 은의 길을 다 완주하신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까미노를 사랑하는 한국 분들이 참 많았다. 한국어로 까미노 얘기를 실컷 하고 싶으면 이곳에 들리길 추천. 알베르게 주인아저씨도 친절하신 분 :)
추신 3: 길에서 친해졌던 피에르 할아버지는 무사히 완주를 하고 동네신문에 그 사연이 기사화되기도 했단다. 요즘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초콜릿과 직접 담근 와인을 보내주신다. 쟝도 이메일로 종종 안부를 묻는다. 인연이란 자신이 가꾸는 만큼 계속 이어진다고 믿는다.
추신 4: 그동안 글 말미에 덧 붙였던 지도의 출처는 아래 링크이다. 아라곤 길 외에도 프랑스 메인 길, 은의 길, 포르투갈 길 등등 모든 까미노 길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나와있다, 스페인어로! 지도만 참고하더라도 매우 유용하니 처음 가보는 길에 대해 일정을 짜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
http://caminodesantiago.consumer.es/los-caminos-de-santiago/aragones/
까미노와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그 길을 다시 찾는다고 했다.
나의 다음 까미노 순례길을 기다리며 이 연재를 마친다.
이 글을 통해 아라곤 길의 매력을 찾으러 갈 순례자들에게 행운을 빌며. A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