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의 평범한 하루

어느새 내 집같이 편안해진 아라곤 길에서

by 테우리

오전 7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나는 이미 밀밭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앞에는 쟝이 긴팔 잠바를 하나 걸친 채 걷고 있었다. 오늘 가야 할 길은 27km. 전날 21km를 걸은 것에 비하면 꽤 된다. 도보 여행자에게 몇 킬로 차이는 엄청난 피로도 차이로 다가온다.

이 날은 내가 몇 년 전 유럽에 왔을 때 친해진 스페인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시간제한이 생겨 평소와는 달리 일찍 출발하였다.

쟝은 걱정이 많이 되는지 부득부득 우겨서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내가 제 시간에 못 갈까 걱정된 걸까.


동이 터올 즘에 출발하니 길 가의 풀엔 이슬이 한가득이다. 제법 쌀쌀해서 나는 긴팔, 긴바지를 입었다. 발전소 같아 보이는 교외 산업용 건물들을 지나 사람 키만큼 자란 관목들 나뭇가지가 웃자란 사이로 길이 시작되었다. 하늘은 여명으로 이미 투명하게 푸르렀고 해가 밝아오면서 노란 밀밭이 붉그스레 빛을 받아 오묘한 색으로 가득 찬 세상이 펼쳐졌다.


참으로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바쁘게 걷느라 대화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뺀다면!




아직 다 못 간 하현달이 아침 하늘에 걸려있었다. 그 뒤로 태양이 온 세상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길에는 나와 쟝뿐이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아마 좀 더 해가 뜨면 출발하겠지?

분명 6월인데도 아침 햇살 아래 빛나는 들판은 황금물결로 가득했다. 아직 해가 비치지 않은 산들은 남색으로, 햇빛으로 빛나는 들판은 주황, 황금빛으로 가득 찼다. 가을의 색깔들이었다. 정말 이상해서 마음이 싱숭생숭 즐거워질 정도였다. 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에 있게 될 때 느껴지는 들뜸이라. 6월의 아침이 아니라 10월의 초저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시공간.



까미노를 걷다 보면 마주하는 풍경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나온 것과 같아서 마치 내가 그 안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몬레알(Monreal)은 완만한 산을 넘어가야 나온다고 했다.


해가 이제 완전히 떠올라 이슬의 흔적이 하나도 없어질 즈음 오르막이 시작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노란 꽃이 인상 깊었던 곳이다. 누군가 까미노를 가게 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꽃을 좋아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사람이라면 봄에 가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6월은 늦게 피는 들꽃들이 만개하는, 정말로 아름다운 때이다.



산길을 가는데 울타리와 나무문이 막아선 곳에 다다랐다. 쟝은 장난스레 "Lady first~" 하고 열어주면서"여기 방목장이 있다는 거야. 동물들이 나가지 못하게 한 거지, 우리는 지나가도 돼." 하고 말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비탈 즈음에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침엽수림을 지나면서 한국의 산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괜히 외국에서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한 비탈은 어린 나무들로 빼곡했는데 이제 벌써 2년 여가 지났으니 지금쯤 그 나무들도 꽤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겠다.


어린아이 같은 쟝의 뒷모습. 분명 50년 전엔 그도 산을 쏘다니는 소년이었을 거 같다. 그 모습이 보이는 듯.


종종 산길에는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었는데 이걸 하나하나 찍는 나를 쟝은 좀 이해 못한 듯했다. 내가 한국에는 이런 꽃들이 없다고 말해주자 자기네 집에서는 정원 잔디깎기 기계로 맨날 밀어버리는 것들이라고 했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들꽃들은 원래 소박한 색감이 대부분이고 화려하지 않다고 배웠다. 그래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최근엔 희 부연하고 잎이나 꽃이나 색이 축축 처지는 외래종 식물 돼지풀이 온 지천을 뒤덮어서 꼴불견이 돼간다고 교수님이 걱정하셨었다. 그게 왜 갑자기 떠올랐나 모르겠다. 다만 우리나라는 먹물로 그린 산수화가 정말 잘 어울리는 나라고, 스페인은 유화로 노랗고 파랗고 빨갛게 그리는 게 잘 어울리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쟝이 어제부터 뭔가 생각은 나는데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끙끙대다가 여기쯤 와서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던데 맞지!?" 하고 의기양양하게 - 마치 내가 외국 사람 만나면 그 나라에 대해 아는 사실을 죄다 하나씩 던져보는 것과 같은 의미로 - 말했던 게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산을 다 넘으니 눈이 멀 것 같은 흰 길이 펼쳐져 있었다. 까미노는, 단조로울 것만 같은데 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이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마을들을 거쳐가는 길을 따라간다. 뙤약볕이 시작하는 흰 길 위에서 우리는 마르쿠스라는 독일인 아저씨를 만났다.





몸에서 반경 1m 내로 땀냄새를 풀풀 풍기는 엄청 젊고 건강한 아저씨였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독일 시골 농부와 같은 말투에 착한 곰 같은 인상이었다. 마르쿠스는 자기가 전날 머문 마을에서 오렌지를 자루째 세일하길래 한 자루 들고 왔다며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오렌지가 너무 무거워서 지금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오렌지로 먹고 있다고 했다. (...) 이런 느낌의 아저씨였다.


까미노는 짐 무게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나는 다른 순례자들보다 훨씬 가볍게 하고 다녔다. 원래 여행 가서는 안락한 인간의 삶에 전혀 연연해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옷도 최소한으로 가져가서 계속 빨아서 입고 빨래랑 샴푸랑 샤워 모두 단 한 개의 비누로 해결하기로 했다. 전자기기 따위는 손에 들어오는 디카 한 개뿐이었고, 식량은 딱 그날 먹을 만큼만, 물은 중요하니까 1리터, 휴지는 두루마기 하나. 이렇게 하면 더 무거운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해도 내 가방이 10여 kg 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20여 kg을 넘게 드는데, 그렇게 해서 발에 물집 잡히느니 나는 좀 불편해도 가벼운 게 좋더라.

나중에 한인 알베르게에서 듣기로는 어떤 아주머니는 너무 고생스러워서 짐을 차로 먼저 보내고 걷기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짐을 막 버렸다는데, 으.. 상황에 따라 그럴 수는 있겠지만 나는 딱 처음 싼 내 짐 그대로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짊어지고 걷는 것이 좋았다. 순례자가 원래 그런 거 아닐까. 내 십자가는 내가 질 수 있는 무게여야지 욕심내서 걷는 건, 나는 별로다.


이렇게 짐의 무게가 중요한 길에서 오렌지를 한 자루 들고 다닌다?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이다!

마르쿠스 아저씨는 "하하하하 맛있어요! 하하하하" 이러면서 전혀 문제없다고 했다. 멋지다 여러 의미로..






쟝과 마르쿠스와 함께 걸으면서 이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들의 가족 이야기다.


내가 한국인인걸 알자마자 마르쿠스는 자기 아들내미가 k-pop 팬이라고 반색했다.

(할아버지들은 하나도 모르던 케이팝 파워를 여기서 처음 들었다. 감격!)


40대 초중반의 마르쿠스는 아이가 셋인데 벌써 첫째 딸이 임신 중이라 아마 까미노에 있는 동안 첫 손자가 태어날 예정이랬다. 자기도 일찍 결혼한 편인데 딸도 십 대인데 벌써 임신했다며 헤헤 웃는다.

(... 뭔가 웃는 게 파트라슈 같음)


쟝은 외동딸만 늦게 얻었는데 그 딸도 30대인데 시집은 갈 기미가 안 보인다고 했기 때문에 마르쿠스를 엄청 부러워했다. 자기보다 무려 20살이나 어린 친군데 벌써 손주를 본다고 무척이나 부러운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


마르쿠스는 아내에게 까미노를 걷는 게 소원이라고 싹싹 빌어서 딱 한 달의 여유를 얻어 처음 온 길이란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순박한 아저씨다.

이런 마르쿠스는 나에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며 아들이 동아시아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도 좋아해서 대학 가서 중국어 전공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할 때 표정이 마치 "우리애가 갑자기 크로아티아어 전공을 하겠다지 뭔가!" 하는 느낌이랄까... 이상한 나라 말을 배워서 자기도 모르는 세계에 가서 어떻게 먹고살련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애가 아직 중학생이니까 천천히 두면 알아서 잘 선택할 거라고 다독여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중국어는 아주 유망한 전공이 될 것 같다. (비정상회담의 알베르토를 보면 더더욱 그 생각이 든다) 마르쿠스 아저씨 아들이 꼭 아빠를 설득해 중국어 전공을 했길 바란다. 나중에 부탁받아 마르쿠스 아들 이름을 한글로 써주었다. 그걸 받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ㅎㅎㅎ 아빠 마음은 어디서나 다 같구나 싶어서 나까지 웃음이 나왔다.




이제 길이 완만한 평지에 뻗어나가 걷기 한결 수월했다. 그늘이 없어서 무척이나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같이 걷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을 수 었었다.




길이 어찌나 하얗게 빛이 나던지 눈이 아팠다....


일찍 출발한 만큼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몬레알(Monreal)은 프랑스길에 있는 팜플로냐와 매우 가까웠다. 이제 아라곤 길의 끝이 가까워 온다.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에 사는 친구와 중간 지점인 팜플로냐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가능한 쟝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가는 버스 편은 많았다.

며칠 내내 걷다가 '탈 것'에 오르니 참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고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오르막도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갔다. 이럴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몬레알(Monreal)'에 도착하셨습니다.
몬레알의 알베르게, 침대도 많고 널찍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바스크인 내 친구는 아주 미인이다. 벌써 엄마가 되었지만 미모는 여전했다. 바스크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한 친구였는데 고향 이름도 '산세바스티안'이라고 하면 무척이나 식겁해하며 꼭 정정해주었다. "그건 스페인 사람들이 쓰는 말이고, 원래 바스크 지방이니 도노스티아라고 해야 해!"


무려 4년 만에 만났지만 나를 위해 달려오는 친구를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외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느끼는 게, 반드시 나에게 지역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맛 보여 주려고 한다.


내 친구 레이레는 여기 왔으면 핀초스를 꼭 먹어야 한다며 핀초스 골목에 데려가 줬다. 내가 핀초스가 뭐냐고 물으니, 타파스라고 스페인 사람들이 간식처럼 먹는 게 있는데, 바스크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훨-씬! 맛있는 핀초스를 먹는다며 또 강조해준다. 레이레의 꼬마 아들 알레는 이제 서너 살이 되었는데 바스크 말과 스페인어와 아빠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다 배우고 있었다. 레이레는 꼭 바스크 말을 모국어로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레이레는 학생맘이었는데 취직이 어려워진 스페인 얘기와 취업 걱정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무척이나 씩씩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따스하고 밝고 장난 좋아하는 엄마를 처음 보았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도 잔소리 없이 아이가 혼자 잘 뛰놀게 해 주고 그러면서도 잘 지켜보다가 달려가 풍차 돌리기도 해준다. 주차장에서 차를 찾을 때도 신난다! 하며 춤을 추고, 시크하면서도 유쾌했다.

친구로서 볼 때도 이런 면이 참 좋았는데, 엄마로서도 아이와 너무 즐겁게 놀아주기에 알레가 조금 부러워졌다. 물론 알레는 무진장 귀엽고 사랑스럽고 활달해서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딱 한번 전망대에 가는 길에 아이가 넘어져서 울기 시작했는데 레이레가 바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아이가 아파하는 곳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곤 꼭 안아주니까 금세 울음을 그쳤다. 너무 신기했다. 레이레가 그렇게 바로 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엄마가 그래 줬기 때문일까.

알레는 사랑을 듬뿍 받고 커서 가슴이 따뜻한 훈남으로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난 광장의 카페. 진로와 취업, 스페인 정권, 유로존, 바스크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알렉산드로, 줄여서 애칭은 알레. 밝은 갈색머리에 유독 이마 위쪽만 하얗다. 날 때부터 그랬단다.

핀초스는 너무나 종류가 다양하고 모두 맛있었는데 다 사 달라고 할 수도 없어서 두세 개뿐이 못 먹었다. 그것들도 정말 맛있었지만 나중에 꼭 다시 와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보니 레이레의 집이 있는 도노스티아는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레스토랑이 많아 유명한 곳이었다........ 나중에 반드시 다시 갈 테다.


한 번은 외국 친구들이랑은 무슨 대화를 해야 하냐고 대학 동기가 내게 물어왔다. 나는 네가 지금 고민하는 진로나, 인생 얘기를 하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했다. 외국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인 건 다 똑같지 않나.


레이레는 노는 것 만큼이나 생각하는 것도 좋아해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나를 만나서 하는 얘기가 취직 문제로 경영학 전공으로 바꾸었단다. 안 그래도 아라곤 길을 걸어오는 내내 사람이 안 보이는 마을들을 무척이나 많이 봤다. 쟝 말로는 스페인 경제가 좋지 않아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가까운 타 유럽 국가로 가는 일이 많다고 했다. 레이레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참 우리나라랑 비슷한 게 많은 듯해서 여러 가지로 동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학업이 끝나는 대로 곧 알레의 아빠가 사는 로마에 가기로 했다는 레이레. 다음에 만날 때는 로마에서 보자-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안녕.






스페인 친구를 사귀게 된 건 2010년 독일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덕이다. 그때도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함께, 한 목표를 가지고 지내다 보니 저절로 친해지게 되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는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레이레와의 시간도 좋았지만 까미노의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베르게의 식당에서 그날 묵는 순례자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를 일부러 비워두고 기다렸단다. 알레의 사진도 보여주고 친구를 만난 이야기도 하니 마치 여기가 집이고 까미노에서 가족이 생긴 기분이다. 마음이 환하게 채워졌다. 남의 동네에까지 와서 무슨 사서 고생이람, 하던 첫날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저녁 식탁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고 기다려준 다는 것의 소중함이 행복하게 다가왔다.



나 없는 새에 친해진 피에르와 마르쿠스, 전날 길에서 마주쳤던 레오와 파울로, 오늘 처음 식사를 하며 친해진 스위스 부부까지. 모두의 얼굴을 보면서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게 보였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끼리의 유대감. 휴식과 맛있는 와인, 농담과 웃음, 따뜻한 빵.



까미노에서 만난 인연들이 레이레처럼 또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이렇게 예전에 만난 친구와의 인연과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모두가 정말 소중하고, 그렇게 내 삶이 채워진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만약 내가 처음 까미노에 왔을 때, 알레한드로 할아버지를 따라 하루 늦게 걷지 않았다면 이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치 부분이었을 때는 모르다가 전체 그림이 그려질 때야 그 아름다움이 빛나게 되는 그림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삶이란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다음 날은 까미노 아라고녜스의 마지막 날이었다.



까미노 아라고녜스 6일

: Sanguesa(산구에사) -> Monreal(몬레알)


: 산길이 있지만 험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늘이 있어서 걷기 좋다. 오르막 뒤부터는 마을들을 지나가므로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중간에 Izco 에도 알베르게가 있으니 참고. 몬레알에는 알베르게 말고 호텔(?) 같은 숙소도 있으니 알베르게가 싫고 좀 개인 방을 쓰고 싶으신 분들은 거기로 가보자. 스위스 분들 말로는 아주 깔끔하고 예쁘댔음. 저녁을 먹은 곳은 알베르게와 같이 운영되는 식당인데 바로 붙어있지는 않고 알베르게에서 올라와서 보이는 성당 옆에 있다. 알베르게에 스페인어로 설명이 되어있는데 잘 모르겠으면 다른 순례자들에게 물어보자.




아라고녜스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데도 끝이 다가옴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날의 친구와의 시간, 그날의 즐거웠던 저녁,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도 할아버지들과 장난치고 놀았던 기억에 마냥 즐거웠다.


그건 마지막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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