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할아버지들이 들려준 그들의 이야기
쟝, 잘 지내요? 제가 요즘 한국에서 까미노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어요. 혹시 괜찮다면 쟝과 피에르에 대해 써도 될까요? 피에르에게도 대신 물어봐주세요. 고마워요.
물론이지! 피에르는 까미노에서 돌아온 뒤 지역신문에도 났던걸. 나도 우리 시청 신문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 조만간 우리 지역 내에 까미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줄까 해. 글을 쓰다니 좋은 시작이야! 내가 '좋아요'를 눌러줄 순 없지만 항상 응원할게.
이번 글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위주이기 때문에 이렇게 온라인에 올려도 되는지부터 생각해보았다. 지금도 간간이 연락을 하고 있는 쟝과 피에르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답을 받느라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둘 다 아주 잘 지내고 있고, 피에르는 새해 축하 선물로 직접 만든 와인을 보내줬다! 둘 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글로 써주는 것에 흔쾌히 승낙하여주었다.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까미노에서 만난 유럽의 할아버지들.
까미노는, 특히 아라곤 길은
마을이 몇 개 되지 않고 알베르게는 마을에 단 하나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마치 모이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곳에서 출발해서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게 된다.
루에스타(Ruesta) 숙소에서 다른 사람보다 약간 느지막이 나왔다.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으니까. 나를 가혹하게 채찍질하려고 온건 아니지 말이야 - 하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길을 나섰다. 전날은 폐허 같아 돌아다니기 겁나던 루에스타의 돌담 아래로 오늘의 새로운 길이 시작했다. 상쾌한 유월의 공기로 가득 찬 숲길이다.
영화 '호빗'에서 처음 여행을 떠날 때, 간달프가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손수건 따윈 잊어라. 다른 많은 것들도. 이 여정이 끝나기 전까진.
샤이어의 언덕과 작은 강에 익숙하겠지만
이젠 고향을 뒤로하고
앞에 놓인 세상을 만나라.
The home is behind you
and the world is here.
겁이 많아 밖에 나가고 싶어 했지만 선뜻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워했던 나는 호빗과 같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집 밖에 발을 내딛어야 비로소 모험이 시작되듯, 까미노로 오기까지 나를 가장 만류했던 내적 갈등은 어느새 마음속에서 꼬리도 못 내밀고, 마음 한가득 설렘과 감탄이 차올랐다.
지도를 보니 오늘은 아주 커다란 언덕을 하나 넘기만 하면 끝이었다. 물론 그 말은 곧 그 언덕길이 하루가 꼬박 걸릴 만큼 크고 높다는 뜻도 되었다.
아침 숲 산책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등산할 때 오르막에 강한 편이기 때문에 나는 즐겁게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조금 늦게 출발하긴 했지만 어제 만났던 쟝(Jean)이 땀을 뻘뻘 흘리며 통통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금세 따라잡았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서로의 좋은 여정을 바라는 반가운 인사! 까미노의 순례자들은 생김새도 체력도 나이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페이스가 있음을 안다. 남이 빠르다고 해서 따라잡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내가 먼저 앞지른다고 해서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저씨를 뒤에 두고, 한국의 산에서 갈고닦은 오르막길 주파 신공으로 사진도 거의 찍지 않고 집중하여 언덕길을 올랐다.
정오 즈음에 바닥에 앉아 뭐라도 먹으려고 꺼내는데, 프랑스 할아버지 둘이 나를 따라잡았다.
못내 반가운 지 인사를 하더니 내 옆에 두 분 다 털썩 앉으셨다.
피에르와 쟝은 어제 처음 만났는데 벌써 단짝이 된 듯하다. 쉴 만큼 쉰 뒤 다시 오르막을 걷는데 피에르는 영어를 못하기에 쟝과 주로 대화를 나누었다.
쟝과 피에르는 딱 봐도 정말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쟝은 60대 초반,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해외영업을 하여 영어를 무척 잘했다. 여전히 업계 내 컨설턴트로 일하는 혈기왕성한 '할아저씨'였다. 맛있는 음식과 여행을 좋아하며, 부인과 정원 딸린 집에서 은퇴자의 삶을 즐기는 중이었다. 여전히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가득하고 새로운 일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불룩 나온 배를 제외하곤 큰 걱정은 없는 듯했다. 활기찬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피에르는 60대 후반, 딱 봐도 뭔가 도와주고 싶게 생긴 마른 체구에, 머리카락도 너무 희고 짧아서 아저씨보단 이제 할아버지에 가깝게 보였다. 게다가 영어도 하지 못해 대화가 어렵고, 그래선지 정적이고 조용한 이미지를 주었다. 헐렁한 스웨터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얼굴에 살이 없어 주름골이 더 깊어 보였다. 흰 반바지와 탐험가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쓰고 얼굴이 통통한 쟝과 더 비교되어 보였다.
쟝과 내가 앞장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피에르는 뒤에서 스틱 두개를 양 손에 쥐고 따라 올랐다. 쟝이 계속할 말이 있는 듯 굴었는데 약간 오지랖이 넓은 그의 성격이 한몫했으리라.
"나중에 피에르가 직접 얘기해주긴 할 텐데,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로 시작한 피에르의 이야기는 나에겐 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이 들렸다.
"피에르는 부인과 사별했다더군."
"오, 저런..."
"20대 때 만나 결혼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너무나 사랑하는 게 보여. 어제 나에게 얘길 해줄 때 여전히 아내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렇다니까! 어제도 얼마나 울었는지....!" 쟝이 손으로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말이야, 뚝뚝 눈물을 흘렸어."
20대의 청년이던 피에르는 천생연분을 만나게 되었다. 성격도 심지어 생일까지도 같은 달일 정도로 모든 것이 잘 맞는 그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면서 서로 약속하기를, 프랑스에선 60살이 되는 생일에 은퇴장이 날아오니, 같이 은퇴하는 바로 그 달에 남프랑스의 집으로부터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자 했다.
믿을 수 없는 드라마처럼 59살의 피에르의 아내는 암에 걸렸고 결국 얼마 안가 숨을 거뒀다. 간병과 스트레스로 무릎 종양을 얻은 피에르는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를 타고 아내의 유해를 뿌리러 까미노의 종착지인 산띠아고 성당으로 간 피에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서 유해를 뿌리며 반드시 다시 이 길을 걸어서 당신을 만나러 오겠노라고 맹세했다.
그 뒤 4년여간 수술과 재활훈련을 거듭해, 드디어 아를부터 시작하는 그의 아내를 향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이런 사랑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긴 거리를 걷기 위해서 손수레에 살림살이를 실어서 피레네 산맥까지 끌고 왔고, 산맥을 넘으면서 손수레를 더 이상 끌 수 없어 그 뒤, 혈혈단신으로 걷는 중이라고 했다. 스페인에 온 뒤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계속 외로워했다고 한다.
쟝은 이런 피에르에게 안타까움과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특히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 나에게 이 이야기들을 해준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생각인지 보인다는 듯이 쟝이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아내 얘기만 하면 정말 바로 눈물을 쏟더라고......"
이런 무거운 얘길 내가 들어도 되나 싶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불신한 게 '영원한 사랑'인데 여기 이 내 뒤에 걷는 할아버지는 그것의 산 증인이라고 하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피에르의 얼굴이 이 전과는 달리 슬픔이 깃들어 보이는 듯했다.
쟝은 오르막을 좀 힘들어하는 피에르의 말동무가 되기 위해 걸음을 늦췄고 나는 먼저 홀로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생각지도 못한 민둥산이었다. 그 많던 나무들은 온통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에 저 멀리 풍력발전기의 하얀 프로펠러들이 보였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날 머물렀던 아레스의 알베르게를 지키던 '루이스'는 요가에 심취한 남자였다. 알베르게 부엌에 인도 음악을 틀어놓고 인도스러운 옷차림새에 히피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동양인인 걸 보고 내게 요가와 '기'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유감스럽게도 나는 동양사상에 관심이 없는 동양인이올시다.
40대 언저리로 보이는 루이스는 알베르게 봉사를 하는 '까미노의 친구들'에서 일하거나 요가를 가르치거나 여행을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결혼도 안 한 거 같고, 인도로 여행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피에르의 이야기를 듣고 루이스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루이스 같은 삶이 한국에서 들었을 때는 행복할 것 같았는데, 아레스의 절벽 위 성곽 안에 갇힌 듯한 루이스는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 만큼 마냥 행복한 거 같진 않았다.
정말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과 다른,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 둘은 또 다르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동시대를 살면서도 이렇게 다른 가치관과 인생의 궤적을 그리는구나. 내가 그들의 상황이었다면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나 일편단심의 사랑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데, 저 앞에 시커멓고 커다란 사람이 배낭을 메고 걷고 있었다.
"부엔 까미노!"
"역시 젊음이 좋긴 좋네! 금방 따라잡다니 대단한걸!" 하고 말을 건 사람은 자신을 이탈리아에서 온 레오나르도라고 소개했다.
"레오라고 부르렴"
레오는 쟝이나 피에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름대로 사자 같았다.
"저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보이니? 저기가 아마 프랑스 길일 거야, 내가 걸었을 때 저런 곳을 지난 적이 있지."
레오는 엄청나게 유쾌하고 통이 큰 아저씨였다. 대머리에 키는 190이 넘는 것 같고 은퇴 자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 허허허허 하는 웃음소리마저 우렁찼는데, 영어를 무척이나 잘해서 놀랍다고 얘기하니 이 분도 해외영업으로 평생을 보냈단다.
레오도 한국은 안 가봤지만 아시아 국가들에서 기묘한 경험을 많이 했다면서 자기 팔에 난 털이 신기해서 계속 만지려 들었던 클라이언트 부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십 년 전에 처음 백인을 본 중국 아주머니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외국엘 많이 다녀서 이젠 전혀 갈 생각이 없다고, 유럽에서 편안히 이렇게 등산하며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전에 유럽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얘네는 정말 현재에 즐기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구나' 였는데 그건 10대 애들이었기 때문이거나 요즘 세태가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원래 놀 거 다 놀면서 열심히 사는 것일 수도.
내가 까미노에서 만난 은퇴자 할아버지들은 크게 본다면 우리나라 아저씨들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삶들을 살은 듯했다. 레오는 경영대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하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한, 본인 말대로 나름 계획성 있게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제 쟝이 본인의 이야기를 해준 것과 겹치면서 역시 사람은 회사를 다니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일을 하며 돈을 모으는 게 어느 나라나 똑같은 걸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 이탈리아 사람은 계획이 없어! 이 말대로 할 거다."
No plan for Italian. 원래 있는 말 인 것 같았다. 국가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약간 게으르고 충동적인 이미지인데 아마 거기서 유래한 듯. 레오는 이제 자기도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서 살 거라며 계획 따윈 더는 없다고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 유쾌한 은퇴자들의 즐거운 2막 인생들은 국가연금이 잘 나오기 때문인 걸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당장 은퇴 후 삶을 상상하면 죽을 것처럼 우울해지는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여기 빛나는 스페인 햇살 아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웃으며 당당하게 걷는 할아버지 무리들은 너무도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평지에 아름다워지는 풍경이 눈에 밟혀서 사진을 찍는 횟수가 늘어나자 레오는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산구에사에서 보자고!"
목적지인 산구에사(Sanguesa)까지는 이제 밀밭을 따라 걷는 평지만이 남았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모래가 휘날리는 그런 오후였다.
할아버지들과의 대화도 좋았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도 좋았다.
계속 밀밭이 펼쳐져 있다가 쉬어가란 듯 불쑥 솟아있는 나무가 보였다. 우리나라 마을마다 있는 큰 느티나무가 생각나 반가웠다. 잠시 쉬다 보니 어느새 프랑스 콤비가 나를 따라잡았다.
쟝은 이번 까미노가 처음이 아니란다.
이미 프랑스 길을 아내와 일주했었고, 이번엔 혼자지만 그 해 가을쯤에 까미노에 가본 적 없는 영국인 친구와 프랑스길을 또 걸을 예정이라 했다.
쟝에게서 까미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도로에 차가 갑자기 올 수 있으니 왼쪽에서 차가 보이도록 걸어라, 라던가.
까미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는 길이기 때문에 까미노를 마친 순례자들은 왼쪽만 시꺼멓게 탄다던가, 하는 순례자만 공감되는 우스갯소리.
종종 보이는 GR 65-3이 바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지칭하는 '도로명' 이란 것. Grand Rue라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대로', 의 줄임말이 GR이고 그중에 65-3이 산띠아고 가는 길이란다. 만약 길을 잃었다면 65-3을 찾으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곤 GR은 프랑스에서 쓰는 말이라고, 프랑스에서 시작되는 길이라서 그렇게 불린다고 엄청 자랑스레 알려줬다.
이제 마을이 보일 즈음에 쟝이 먼저 운을 떼었다.
"프랑스 길을 걸으면 말이야, 이런 것들을 꽤 볼 수 있지."
길에는 이상한 지팡이 같은 것이 꽂혀있었다.
"순례자의 무덤이야. 길을 걷다 이 부근에서 죽었나 보군."
나는 경악했다. 힘들긴 했지만 긴 산책로라고 느껴졌던 길에서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니! 여긴 문명세계의 마을 코 앞이지 않은가.
쟝과 피에르는 무덤에 인사를 올렸다.
쟝이 까미노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까미노에 대한 책을 쓰기 전까진 이렇게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고. 다만 유럽 사람들에게 그들의 집부터 산티아고 성당까지 순례를 가는 것은 인생에서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정작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순례자란 책의 존재도 몰랐다. 쟝은 몇 해 전부터 한국인이 많이 늘었는데 왜 그런 거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친구가 추천해서 왔을 뿐 한국에서의 까미노의 인기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답했다.
(한국에 오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거나 가고 싶어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쟝은 까미노에 오게 된 사람은 이 길의 매력에 중독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자기처럼 여러 번 오는 사람도 많고, 까미노의 친구가 되어 길을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알베르게 호스트가 되기도 한단다.
동감했다. 나는 이 길을 겨우 며칠 걸었지만 까미노와 사랑에 빠졌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태어난 아기 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같이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서로 돕고, 이야기하고,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하루하루가 단순한 것으로도 즐겁고 소박한 것들로 행복해진다.
어릴 때처럼, 할아버지들도 중년부부들도 청년들도, 주위 자연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감탄한다. 허물없이 인사하고 행운을 빈다. 다들 타지에서 이 길을 걷기 위해 모였으니 말이 잘 안 통해도 상관없다.
옹알이를 하듯 대화하고 다시 인사를 나누고 걷는다.
그게 까미노가 주는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느꼈다.
그래서 죽음이 올 때까지 이곳을 찾고 또 찾는 사람이 있던가 싶다.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쟝은 알베르게는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호텔로 갔다. 나와 피에르는 알베르게에 가서 체크인을 했다. 통역을 해주던 쟝이 없으니 피에르도 나도 각자의 오후를 보냈다. 알베르게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하시고 엄청 무서운 아낙네처럼 생기셔서 빨래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거기 있던 이탈리아 아저씨인 '파울로'가 도와주었다. 파울로는 엄청 키가 크고 마른 미남 아저씨였는데 수도사같이 조용해서 친해지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혼자 부엌에서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저녁을 먹고 있기에 방해하기 그랬다.
핸드폰 로밍도 하지 않아 누구와 연락할 것 없이 그냥 혼자 산구에사 시내를 구경했다.
그동안 지나온 마을들에 비하면 나름 크고 번화한 곳이었지만, 그래 봤자 작아서 한 바퀴 빙 돌다 보니 쟝을 마주쳤다.
피에르를 찾아서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자 해서 그 전까지 산구에사를 둘러보았다.
루에스타 팀이 된 나와 쟝과 피에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다음 까미노 일정에 대해 얘기했다. 역시 제일 재밌고 공통된 주제는 까미노다.
나는 다음날 스페인에 사는 친구를 만날 예정이라 새벽에 출발할 거라고 하니 쟝이 엄청 걱정하며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계속 사양했는데 시간까지 딱 정해서 그때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계속 이어졌지만 이 두 할아버지는 마치 아기새를 돌보는 어미새처럼 나를 엄청 아기같이 대하고 잘 대해줘서 나중엔 "나 애기 아니라고요. 나 20살 넘은 성인이에요!"라고 한 적도..... 물론 고맙다.
그래도 쟝 덕에 까미노를 시작한 뒤 처음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피에르는 가격이 부담이었는지 거의 먹질 않았는데 쟝이 와인을 사주었다. 쟝을 보면 볼수록 개인주의적인 서양인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리나라 시골 아저씨 같다. 오지랖 넓고 남을 잘 도와주는. 정 많은 할아버지들.
사람들을 만나면 편견을 갖는 나이지만, 역시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 사람이 가지는 명찰보단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감으로써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정말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어느 새 순례자로서의 삶에 익숙해졌다.
이제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사람들도 생겼다.
여기가 내 집인 듯 느껴졌다.
행복했다.
까미노 아라고녜스 5일
: Ruesta(루에스타) -> Sanguesa(산구에사)
Lerda 마을까지는 큰 언덕이다. 동산 같은 건데 거의 차 도로로 쓰이는 흰 흙길을 따라가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산인데 나무를 다 벤 큰길을 따라 가느라 그늘이 없다. 아침에 가는 걸 추천.
언덕 위에서 경치가 매우 좋음. Lerda 이후로 마을이 없고 끝없는 밀밭 평지가 이어지니 물을 꼭 아껴둘 것. 자칫하다가는 과로사(..)한다.
22km 정도기 때문에 이전보다 쉽다. 일찍 마무리하면 산구에사 마을 구경을 하길 추천.
이제 아라곤 지방이 끝이 나고 평지 위주 네바라 지역이다. 마을도 점점 커지고 밀밭이 많다. 사람도 더 많아짐!
4년 만에 만날 친구를 위해 일찍 출발한 까미노 6일 차. 최단시간 27km 주파.
까미노에 적응 완료!
추가>>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피에르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한번 더 해주었는데 (물론 쟝이 통역), 그러면서 자신이 어떻게 걸어왔는지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에 보이는 손수레에 세간을 싣고 텐트에서 자면서 왔다고 한다. 무릎도 성하지 않은데...
삶에 의미라는 것은 아내와의 약속이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사람의 목숨만큼이나 강한 행동원인이 되는 것 같다. 피에르의 여정은 그래서 더 나에게 와닿았던 것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