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 길 그 위에서 느낀 감정들
까미노에 가기로 한 것은 내가 더 이상 버티다간 돌아버릴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 있는 삶을 살까? 어떻게 하면 잘 살까? 한 번뿐인 삶인데 진짜 빛나게 살 수 없을까?를 생각하면서 답은 찾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났는데, 정작 학교 밖에서 처음 맞닥뜨린 가장 큰 질문은
"그건 돈이 얼마나 되나?"였다.
나 스스로도 돈이 점점 필요해졌다. 바로 취업한 친구들과 만나면 씀씀이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니 어딘가에 앉아만 있어도 돈이 들어갔다. 책을 봐도 돈이 들어갔다.
연구실은 돈이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그래야 학생들은 학비를 덜 낼 수 있었다.
학부 때 재밌다고 생각한 연구를 하려면 배를 곯아야 했다. 돈이 안 들어오는 연구였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환율 문제를 틀린 뒤로 닫혔던 녹슨 문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돈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첫 회사에서
매일 엑셀과 그 안의 숫자들을 보고 시커먼 지하철을 타고, 와꾸보는 법을 배우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문득 나를 돌아본 순간, 나는 너무 달라져있었다.
대학생 때 자신감 넘치고 숫자 외의 세상을 볼 줄 알던 나는 쪼그라들었다.
자연을 좋아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던 나도 쪼그라들었다.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첫 인턴 기간은 끝나 왔고 그동안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주던 동기가 나를 부추겼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떠나겠어? 모은 돈도 있겠다. 지금 가보는 거야. 나는 떠날 거야"
빌딩 숲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삶과, 누군가를 위하는지도 모를 숫자 정리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나 다운 삶이 아니었다고 느껴졌다. 정리를 하고 싶었고 내 안에 잠기고 싶었다. 폰 따위는 꺼버리고!
나는 까미노를 걷게 되었다.
까미노 세 번째 날,
지독히도 외로웠던 하루였다.
나는 하루 종일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왜냐면 온종일 나는 길 위, 단 한명의 행인이었기 때문에.
산 속과 숲 길을 따라 걷는 상쾌한 길은 이제 끝나고 스페인의 광활한 밀밭을 따라 걷는 땡볕 아래 행군 길이 시작했다.
내심 지난 이틀 동안 뭔가를 가르치려는 할아버지가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막상 완전 혼자가 되니까 너무 아쉽고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까미노가 프랑스길과 이어지는 곳에서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 길은 정말 사람들이 많다. 거의 백 미터당 한 명 이상은 있던 것 같다.
반면 아라곤 길은, 이 북부 아라곤 지방은 정말 조용하다. 원한다면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하까(Jaca)에서 아레스(Arres)로 가는 길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내겐 그 어느 때보다도 지치고 힘든 길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 날 두 가지 실수를 했는데
하나는 시간 계산이고 다른 하나는 식량 계산이었다.
오전에는 할아버지랑 같이 아레스와 산타 씰리아라는 작은 마을까지 같이 걸었다.
산타씰리아에는 유일하게 하까와 아레스 사이의 알베르게가 있었고, 할아버지는 오늘 거기서 1박 하면서 다음날 그 아래쪽 마을에 있는 성지에 들리기로 한다고 했다. 나는 같이 점심을 먹고 출발하게 되었다.
문제는 보통 끔찍하게 더워지는 낮 시간 전에 숙소에 도착하던 페이스를 깨고 오후에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 이틀은 하루에 10여 킬로미터만 걸었다면 오늘 목적지는 무려 25km 뒤에 있는 곳이었다.....
그 전 산길에선 금세 주파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지도 위에 적힌 숫자'만을 보고 판단했다.
웬걸, 아레스까지 가는 길은 그늘 하나 없는 돌길에 마지막에는 황무지 산을 가로질러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늘이 없는 낮은 관목뿐인 산이었다. 고도가 낮지도 않았다. 그 지역 명물인 산악 독수리들이 내 머리 위를 유유히 돌며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도도 할아버지 것만 보다가 혼자 걷게 되니 지금 얼마나 온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많이 걸었다 싶어도 표지판에 남은 km는 여전히 많았다.
설상가상 물이 부족해졌다. 사실 알 할아버지와 다닐 때는 정확한 시간에 멈춰서 다 같이 견과류와 말린 무화과를 먹고 물도 둘이 나눠먹다 보니 모자란 적도 없고 힘도 크게 들지 않았다.
첫날 혼자 걸을 때처럼 마을이 짧은 간격으로 있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묵기로 한 마을로부터 아레스 까지는 단 하나의 마을도 없었다.
결국 산 중턱에서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오후 4시가 되자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산은 온통 허리까지 오는 관목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하늘에는 검은 독수리가 날아다녔다.
나는 미친 듯이 목이 마르고 허기졌고 내 생필품을 담은 배낭은 나를 짓눌렀다.
산을 덮는 나무 숲이 없어선지 갈수록 바람이 거칠어졌다. 앞으로 걷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여기가 바로 골고다 언덕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갑자기 나는 오늘 해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너무나 슬퍼졌다. 나는 바싹 말라버릴 것 같았다......
혼자 걸으면 좀 더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이 길 위에서 나의 사고는 무척이나 단순해졌다.
걷는다는 것 하나만을 느끼고 - 걸었다.
목마르고 힘들고 지쳤다. 진로나 미래, 한국에서의 나의 삶 따위는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편안한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끝없는 오르막, 돌 비탈길,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산 속에서 나는 완전히 외톨이었다.
여기서 주저앉아 쉰다면 까딱하다간 야외 노숙까지 할 것만 같았다.
누군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이렇게 해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빠였을까.
힘든 가운데에도 바로 열 걸음 앞, 스무 걸음 앞 까지만 가자고 다짐하고 거기까지 걸은 뒤에 한숨 돌리고 다음 목표를 잡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다 버려두고 다리가 풀려 버렸을 것이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어쩜 이렇게 오래 걷고 또 걸었는데 왜 산은 더 높아지기만 하는 걸까
울 것 같았다.
이 정도 걸었으면 산을 넘고 마을이 나올 법도 한데.... 아레스는 그리 멀지 않았다고 했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날처럼 길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
길은 마치 둘레길처럼 산의 허리를 빙빙 둘러서 마치 끝이 없는 듯 이어졌다.
일부러 시계도 보지 않았다. 시간이 가는 걸 보면 더 마음이 가빠질 것 같았다.
바로 저 앞 산허리 한번 돌 때까지 걷고, 그다음 산허리까지 걷고, 걷고, 또 걷기만을 반복했다.
평소에 지치고 힘들면 길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지금은 입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그날은 내게 가장 힘들었던 까미노였다.
나는 몰랐다.
아레스는 산 위에 지어진 성곽에 위치한다는 것을..........!
여전히 높은 산 중턱의 구불구불한 코너를 꺾는 순간 너무나 갑작스럽게 아레스가 나타났다.
긴장이 확 풀려버렸다. 마을이다!!!!!!!!!!
그 전까지 보이지도 않던 길가의 꽃이 보이고
마음이 확 트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에 다행이다-다행이야-하고 되뇌었다. 내가 걸은 길이 잘못 든 게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도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왜 나는 절벽 위에 아레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눈 앞에 목적지가 보이자 다리가 날아갈 것 같이 가볍게 느껴졌고
도착하자마자 아레스 입구에 놓인 단 한 개의 알베르게에 어서 배낭을 던져놓았다.
당장 씻지도 않고 아레스에 또 단 한 개뿐인 레스토랑에 가서 진짜 돈 생각하지 않고 스테이크와 와인을 시켰다.
다리를 쭉 뻗었다.
식당엔 나 뿐이었고 창가에는 고양이가 털을 고르고 있었다
티비에는 알아먹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영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휴 그랜트가 나오는 영화에 스페인어 더빙을 한 것이었다.
이 여유로움! 이 안락함......!
여전히 조용하고 혼자였지만 산 속을 헤맬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안도감과 뿌듯함, 만족스러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서 레스토랑을 가득 채웠다.
..... 너무 행복했다.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돌아가 보니 사람들이 나더러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한다. 따라가 보니 알베르게 지킴이인 루이스가 모두를 위한 저녁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날 알베르게에 묵는 사람들 모두가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나를 환영해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너무도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밥을 먹고 왔는데도 웃으면서 내 몫이라고 따로 만들어두었다는 접시를 받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유난히도 창 밖에 바람이 윙윙 울부짖었다.
말이 안 통하는데도 계속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다른 날 같았으면 물리치고 일찍 잤을 텐데 그 날따라 아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 져 다 받아주게 되었다.
몸짓 손짓 다 동원하고 또 더러는 음성 번역기도 써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힘들게 시도해서 전한 말이
'오늘 바람이 참 세네요' 일 때, 아이쿠 ㅋㅋ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좋은 밤이었다.
말도 안 통하고, 결국 다음날이면 뿔뿔이 각자의 까미노를 갈 테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돌길 위에서 힘겹게 혼자 걷던 끝에 만난 사람들의 온기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삐걱거리는 낡은 싸구려 매트리스인데도 얼마나 좋은지.
두 다리 쭉 뻗고 누웠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듯한 하루였다.
예상하지 못한 기쁨과
고통스러웠던 돌길
누군가 그랬다. 까미노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인생이 길이 듯, 까미노를 걷는 것도 하나의 인생 같다고.
결국 조금 씩이라도 걷다 보면 도착한다는 걸
길 하나만 더 꺾어 들어가면 도착인 것을, 그 직전까지 걷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걸
누가 보기엔 돈 주고 사서 고생이다 싶겠지만 아마 걷기 전에는 이토록 격하고 가슴에 크게 와 닿는 감정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작 몇 시간 동안 고작 몇 키로 걸은 걸 가지고?! - 그럴 수 있다! 살아 있음을,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좌절에서 환희로의 순간과
작은 식탁에서 다 같이 함께하는 식사의 기쁨!
돌 산 위의 아레스에서 나의 까미노 셋째 밤이 저물었다.
까미노 아라고녜스 3일
: Jaca(하까) -> Santa de Cilia(산타 데 씰리아) -> Arres(아레스)
ps. 하까는 매우 큰 도시라 알베르게도 크고 시설이 좋다. 숙박 강추! 지도를 보면 여기서부터 아라곤 강을 따라서 쭉 길이 이어진다. Puente La Reina de Jaca 까지는 쭉 내리막길이고 그늘도 많고 강에도 내려갈 수 있어서 매우 걷기 편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Arres 까지 오르막이며 긴 주파 끝에 걷는 마지막 고비가 매우 힘들 수 있다는 걸 고려하고 가길 바란다..... 꼭 기억해둘 것은 Arres는 산 중턱에 위치해있다는 것! 알베르게는 딱 한개이고 침대는 매우 구리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호텔 같은 것도 좀 비싼 값에 있긴 하다고 한다.
네번째 날부터 나의 까미노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