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계단 무더기를 만났다.
'대체 이 계단은 몇 개나 될까?'
이대부중과 이대부고를 다녔다. 아침마다 이대 정문을 통과해 (지금은 사라진) 다리를 건너면, 저 높은 곳에 고풍스러운 옛날 건물 하나가 보였다. 1935년에 세워진 이대교회. 오르막을 조금 오르다 계단을 만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큰 숨을 한번 쉬고 난 후, 발을 내려다보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열다섯 계단씩 세 묶음.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45개의 계단이 그때는 참 지겹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그제야 위를 바라봤다. 큰 고비는 넘겼다. (등굣길에 만나는 계단은 매일 고비다.) 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봄마다 분홍빛을 꽃을 피우는 목련 나무가 아름드리 심어져 있었다. 목련을 지나 후문 근처까지 가면 바로 학교가 나왔다.
사실 계단 옆에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샛길도 있다. 경사가 심한 그 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나는 종종 그 샛길로 향하곤 했다. 마음이 많이 힘든 날에, 집에 있고 싶지 않은 날에, 그런 게 갈 데가 없던 날에,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던 날이면 그곳에 놓여있던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곳에 앉아 꾸역꾸역 울기도 했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기도 했다. 난 그곳에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조금씩 걷어냈던 것 같다. 반항 한번 해본 적 없던 내 조용한 사춘기는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다.
긴 계단만 보면 나는 이대의 그 계단이 생각난다.
이날도 그랬다.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몽마르트 성당이 있는 쪽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오르막길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계단이 등장했다. 남편과 아들 둘은 저 멀리 가버리고, 딸도 나를 앞서고 나자 문득 그때의 계단이 떠올랐다. 마치 과거로 이어지는 길처럼, 예전 생각들이
'여기는 몇 개의 계단이 있을까? 이 계단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왜 저 위에 건물을 세웠을까? 이대 안에 있던 그 계단은 잘 있을까?' 궁금해졌다.
가장 마지막 계단까지 밟고 나서야 우리가 올라간 곳이 메인 계단은 아니란 걸 알았다. 어쩐지 같이 올라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니. 위에는 자물쇠와 기차를 파는 아저씨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좌판을 벌여놓았고, 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로 꽤 붐비고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언덕 하나 없는 휴스턴에 살다 보니 이런 풍경을 볼 기회가 드물다. 뭔가를 내려다볼 기회가.
저 작은 네모 안에는 불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겠지.
이렇게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랜드마크를 매일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냥 동네 공원 같을까, 아니면 늘 보는 건물이라 배경같이 무감각할까. 내가 저 안에 살았다면, 즉 여행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언덕을 올라오진 않았을 것 같다.
후에 찾아보니 몽마르트 언덕(Montmartre)은 해발 약 130m(426피트)이고, 위에 세워진 건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이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것도, 내가 오른 계단은 아니지만 메인 계단이 222개에 달한다는 것도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알았다.
굳이 이 위에다가 성당을 세운 이유는 종교적, 역사적, 정치적 이유가 결합된 결정이었다고 한다.
1) 종교적인 이유는 '하늘과 가까울수록 신과 가깝다'는 상징적인 이유 때문인데, 몽마르트가 도시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신이 파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도 생긴다.
2) 정치적인 이유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970-71)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민중 봉기가 발생하자 신에게 용서를 구하자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3) 몽마르트 언덕에는 로마시대부터 이교도(로마 신화) 신전이 있었는데,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의 지배적인 종교'라는 걸 상징하기 위해 이교도 신전이 있던 곳에 성당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자물쇠가 참 많다. 이곳도 소원을 빌어주는 데에 자물쇠를 쓰나 보다.
남산도 그랬고, 오스틴의 높은 언덕 위에 있던 레스토랑의 난간에도 자물쇠가 참 많이 달려 있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많은 어느 높은 곳에도 자물쇠들이 달려있겠지. 이런 종교적이니 정치적이니 하는 이유가 아니어도 본능적으로 높은 곳에서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싶은가 보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담아.
스무 살의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빌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린 나이임에도 내가 기억하는 소원은 늘 똑같았던 것 같다.
'올 한 해 우리 집에 아픈 사람이 없게,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릴 때부터 물욕은 없었으니 갖고 싶은 걸 빈 적은 없다. 공부에 흥미도 없었으니, 그쪽 소원도 관심 밖이었을 거고. 스무 살에 유럽여행을 할 때도 남자친구는 있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나는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러다 헤어지겠지.'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하지만 같이 갔던 친구는 그때 좋아하던 오빠와 결혼을 했다;;)
아마도 나는 잠깐 고민했을 거다. 하나만 빌어야 한다면 뭐가 가장 적당한지, 가장 합리적인 소원은 뭐가 좋을지, 아웃풋이 좋은 소원은 뭐가 있을지. 성격 어디 안 간다. 지니의 램프도 아니고 터무니없는 소원은 빌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사십 대 중반이 된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행복한 시간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 손을 가만 잡고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한걸음, 한걸음... 꿈속에서 현실로,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