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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Sep 03. 2024

지금 내 손이 개고생하는 이유

처음부터 했으면 좋았을 것을 


대학원에서 UX(사용자 경험)을 공부했다. 

당시 서비스를 기획할 때면 '사용자'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는 했다. 


30대 여자가 아니라, 직장에 다니며 5살 아들과 2살 딸을 키우는 직장인 여자로. 

중산층이 아니라, 서울 00동 32평 전세를 살고 있다고. 

성격이나 사소한 습관, 외모, 그녀의 현재 고민까지.
스토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이름까지 지어주고 난 뒤에는, 비슷한 느낌의 여자를 프린트해서 붙였다. 


그러면 내가 설정한 '그 여자'는 사진 속 '이 여자'가 되어있었다.
이제 '그 여자'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책 쓰기라고 뭐가 다를까? 


글쓰기는 책 쓰기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브런치에 끄적이는 이 글은 글쓰기다. 나의 책 쓰기 여정과 내 생각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연하게 누군가 나의 경험을 보고 도움이 되길 바라는 그 정도다. 이건 글쓰기다. 


하지만 책 쓰기는 책을 판매하는데 목적이 있다. 누가 지갑을 열어 기꺼이 돈을 내고 살 것인가, 그 독자 설정이 아주 중요해진다. 그러려면 독자를 날카롭고 구체적으로 잡아야 한다.
10마리 토끼를 동시에 풀어놓고 다 잡겠다고 설치다가는 한 마리도 잡기가 어렵다. 처음부터 한 놈만 골라 머리 쓰고 전력질주해도 잡힐까 말 까다. 잡고 싶은 토끼 한 마리만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 이것이 책을 쓸 때 필요하다 생각한다. 


생각을 했다, 분명.
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나는 평생을 소심쟁이로 살아왔다. 타고나길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고, 대하기 쉽지 않은 남편을 만난 데다가, 미국에 와서 하고 싶은 말을 정말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소심쟁이 캐릭터가 강화됐다. 예전에는 늘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이제는 뭘 해도 움츠려졌다. 

나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민감했고, 나의 못난 모습을 꽁꽁 감추고자 했으며, 그들을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은 살피지 못했다. 마음에 멍이 들어도 그럴 수 있지 생각했고, 긁히고 피가 나면 멈추길 기다렸다. 괜찮은 척했다. 쿨하게라도 보이고 싶어서. 


생각을 적어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나를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나의 상황들을,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이제야 나를 이해했고, 인정했으며,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갑자기 성격이 변한 건 아니다. 여전히 소심하다. 다만 같은 상황에서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거야. 나는 대체 왜 이럴까. 이 빌어먹을 성격'이라며 내 탓하기를 멈추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괜찮아졌다. 편안해졌다.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에 말랑한 틈이 생겼다. 틈이 점점 벌어지자 내 캐릭터가 가진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라, 내 성격 좀 마음에 드는데?'라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나 참 평생 쓸데없이 다른 사람 눈치 보고 살았네'

어느 날 마트 주차장을 걷다 든 생각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 내가 찾은 이 마음의 평안을, 누군가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서 차에 앉은 채로 핸드폰에 메모했다.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적어나갔다. 그날 저녁, 책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전 글에도 말했지만 나는 초고 채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이 나서 타이핑을 한 덕에 하루에 5개의 초고도 썼다. 내 글에,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취했다. 
1차 퇴고에는 한 꼭지, 한 꼭지에 집중했다. 맥락이 맞는지, 그 꼭지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녹아냈는지, 이상한 문장은 없는지 등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Q : 그래서... 너 지금 누구를 위해 쓰는 건데? 내가 나에게 물었다. 

A : 어... 나같이 대문자 I인 사람이지. 긴장한 채 대답했다. 

Q : 대문자 I인 사람 전부? 다시 물었다. 조금 화가 난 모습이다. 

A : 아니, 그건 아니고~ 일단 엄마여야 해. 나보다 조금 어린.... (어... 어...) 30대 초반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 

Q : 30대 초반?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지) 

A : 34세! (됐니?) 

Q : 그리고? (나이가 전부는 아닐 거지 너?) 

A : 어... 타고나길 I인 사람들이 엄마가 되고 자존감이 깎이는 상황이 많잖아~ 이게 다 성격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하지만 자존감 끌어올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그런 엄마들 말이야. 


충분한가?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독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치열하게 생각했어야 했다는 거다. 

처. 음. 부. 터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써 내려갔어야 했다. 늦으면 늦을수록 손이 고생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고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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