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흐름대로
매거진이나 연재를 하다 보니, 그 안에서만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좀 생긴 듯하다. 아무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글을 좀 올려야 브런치랑 한층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낯가림은 어지간해서는 풀리지 않으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그래서 그냥 하얀 도화지를 열었다. 할 말이 없는데도. 아니 그보다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침 시간이 나서! (요즘 부모님이 계셔서 시간이 잘 나질 않는다;;)
그래서 일단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쓴다. 생각이 먼저인지, 손가락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인데 이렇게 비슷한 속도로 흘러갈 때면 약간 해방감을 느낀다. 이 맛에 글을 쓰나 싶고.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연재를 하나 더 시작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시간에 쫓기듯 쓰고 싶지는 않았다. 진담 작가가 브런치 4회 연재만에 3곳의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좀 더 정성 들여 써야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내 마음이 그렇다. 어떤 날은 여러 개 쓰고 싶고, 어떤 날은 쓰기 싫다. 연재를 하면 내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정해진 요일에 글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다. 그렇다면 매거진을 하나 더 열까? 그것도 방법인데 나는 지금 시간이 더 필요하다.
좀 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니까. 제대로 정하고 쓰고 싶어서.
아니, 그보다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예전에도 올린 적이 있지만 '소설'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있어서 좋다. 에세이도 그런 글이 좋다. 치유나 아픔이 들어간 글 말고 유쾌한 쪽이 내 취향이다. 굳이 슬픈 이야기를 눈물 짜가며 보고 싶지는 않다. 좋은 말씀 많은 책, 물론 좋지만 내 취향과는 멀다. 아마도 대중은 그런 글을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물론 나도 운다.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글을 쓰며 퐁퐁 솟아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10초짜리 짧은 영상을 보면서도 물이 차오른다. 그리고 소설을 보면서도. 아팠어요- 말고 스토리로 담담하게 그려낼 때 특히 그렇다. 긴 호흡이 좋다. 짧은 글마다 이것은 '메시지로구나~' 싶은 부분이 있으면 나는 그 호흡이 끊기는 느낌을 받는다. 길게 나를 끌고 가야만 나는 비로소 동화가 되고, 내 마음을 쑤시고 든다.
하지만 그간 내가 쓴 글은 그랬다. '네, 메시지 시작합니다!'였다. 그러라니 그랬다. 납득하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쓰기 싫어도 그렇게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납득. 커서 알게 된 건데, 이게 나를 움직이는 Key였다. 나는 납득을 해야만 움직인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꿈쩍도 안 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따지고 들지 좀 마"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나는 내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 엄마한테 따지고 드는 나쁜 딸이라서. 사근사근하지 못한 참 재미없는 성격이라서.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이 설명을 해도 나만 남았다. 다시 물어보려고. 이해가 참 딸리는 머리구나 생각도 했다. 사는 내내 '나는 이해가 좀 느리지'라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완전히 납득되지 않아서-가 문제였다.
지금 엄마가 와계시고, 나는 똑같이 따지고 묻는다. 대신 이제는 화법을 조금 바꿨다. "엄마, 내가 납득이 안되면 몸이 잘 안 움직여서 그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건 왜 그런 거야? 설명만 해주면 돼!" 식으로. 엄마는 너 참 피곤하다고 손사래를 치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하시는 것 같다.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 나는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더' 따지고 들어서 엄마를 '더' 피곤하게 하거나, 비로소 이해하고 해방감을 느낀다.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라는 에세이를 읽고 있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말이 아주 맛깔나다. 읽는 재미가 있다. 중간중간 생각할 거리도 조금 주지만 기본적으로 '메시지'가 꼭지마다 들어간 책이 아니다. 소설처럼 쭉 연결이다. 이 책은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했지!' 마음에 불을 지펴버렸다. 그간 눌러왔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간 내 마음이 얼마나 억눌려 있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이제는 진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야지. 흥!
아우 속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