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었을 뿐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죽고 싶다니, 설마.
그냥 어느 날, 베란다 문 너머의 커다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거기 있던 창문이다. 그날따라 약간의 틈새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 틈새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전기비 생각이 잠깐 스쳤던 것도 같다. 창문이 눈에 들어온 건 그래서였다.
집은 5층이었다. 언덕 위에 있던 아파트였다. 언덕의 아래쪽이었으니 실제로는 다른 동 5층보다 낮았을 거다. 창문으로 보이는 아파트 다른 동이 유난히 높아 보였던 걸 보면 말이다. 아파트만 가득 찬 풍경을 보니 문득 몹시 답답해졌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자꾸 창문이 신경 쓰였다. 몇 걸음. 작디작은 아파트라 몇 걸음 옮기지 않아도 베란다 문까지 닿았다. 먼 곳을 응시하며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두 걸음. 가까이 가서 보니 창문은 더 크게 느껴졌다. 밖의 풍경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더 답답했다. 시선을 떨구자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 빼곡한 차들이 보인다. 왼쪽은 아파트다. 오른쪽도, 정면을 봐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턱 쳤다.
아주 순간이었다. 정적이 느껴졌다. 머리 안에서 삐- 소리가 난 것도 같다. 갑자기 내가 서 있는 쪽과 창문 밖은 다른 세상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몸을 던지면 내 몸이 순간적으로 작고 납작해질 것 같았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어디론가 사뿐히 내려앉을 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웃음이 입에 번졌다.
그러다 탁. 현실로 돌아왔다. 창문에서 얼른 발을 뗐다.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득해졌다. 너무 진짜 같아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생생해서 무서웠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훨훨 날아가고 싶어서. 그러다 사라지고 싶어서. 당장 뛰어만 내리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절대 죽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귀여운 아들을 두고 그럴 리가 없다. 직장도 있고, 똑똑한 남편도 있었다. 그는 연애 때 반짝이던 눈처럼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고, 같은 아파트엔 늘 도와주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도 계시는데 내가 대체 왜.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눈물조차 흘린 적도 없는데...
근데 왜 자꾸 창문에 눈이 갈까. 왜 매일 창문이 나를 부르는 것 같을까. 입이라도 달린 듯 부르는 목소리가 들릴까. 뛰어내려 보라고, 날아갈 수 있다고 말을 걸까.
긴 터널을 지난 끝에야 알았다. 밝은 곳에 나와서야 그때 내가 터널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잡아먹을 듯한 시커먼 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터널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안에 얼마동안 있었는지, 거기서 나는 어땠는지, 그런 건 기억에 담기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돌아섰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인정했다. 내가 우울했다는 걸.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왜 그랬는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