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아니길 마음으로 빌면서
일요일 새벽 3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남편은 아직 곤하게 자고 있다. 그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다.
방 문틈 사이로 불빛이 보인다. 부모님은 이미 일어나셨나 보다. 살며시 문을 닫고 거실로 향한다. 아빠의 몸에는 이미 잠바와 작은 크로스백이, 머리에는 챙이 있는 모자가 씌워져 있다. 엄마는 보라색 얇은 잠바를 입고 소파에 걸쳐 앉은 모양이 당장이라도 집을 나설 기세다. 그리고 네 개의 눈이 나를 향한다. 4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부모님의 눈빛을 보니 바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떠나실 때 깨우라던 남편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기 전에 인사한 걸로 됐다. 대신 공항에 같이 나가겠다며 여러 번 당부한 둘째는 깨워보기로 했다.
1층에서 자고 있는 첫째가 깨지 않도록 살살 흔들어본다. 곤히 잠들었는지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깨우고 싶지는 않아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공기는 차가웠다. 바퀴를 끄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집 앞을 밝히는 가로등이 이렇게 주황색이었던가? 떠나기에 좋은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큰 트렁크 두 개가 차에 실린다. 2달 동안 살았던 짐 치고 단출하다. 셋 다 말없이 차에 오른다. 역시 떠나실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 이런 기분은 꽤 전부터 시작된다. 아빠가 “아이고, 이제 삼 주 밖에 안 남았네” 하시며 남은 시간을 잴 때마다, 엄마가 “가면 애들 보고 싶어서 어쩌니”말씀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실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요동친다. 그러다 기어이 한 주가 남고, 삼일이 남고, 하루가 남는다. 결국은 그렇게 된다.
공항까지는 한 시간 거리. 이른 시간이다 보니 가는 내내 한산했고, 주차도 가까이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문쪽 벽에 ‘WELCOME TO HOUSTON’이라는 모양으로 화초가 심어져 있다. 그 앞에 벤치까지 있는 걸 보니 인증 장소인가 보다. 두 분을 억지로 앉혔다. 딸이 공항에 따라왔는데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싶어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두 분을 함께 뵈는 마지막 모습일까 봐.
작은 공항이라 수속은 일찍 끝났다. 휠체어 서비스를 예약했다고 하자 한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난다. 휠체어는 급히 아빠와 배낭, 트럼펫 가방까지 싣고 떠나간다. 마음 약한 엄마는 눈물 흘릴 시간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남자를 따라간다. '어, 어' 하는 사이 우리는 멀어진다.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엄마는 계속 뒤돌아보고, 나는 두 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휴스턴에 오면서 한국이 더 멀어졌다. 거리도 멀어졌지만 직항이 없기에 시간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텍사스에 온 뒤로 부모님과의 만남이 더 애틋하다. 이젠 위독하다 전화를 받아도 마지막을 뵐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의 잔상이 보인다.
아빠가 늘 앉아서 책을 보던 책상의 한켠도, 엄마가 서 있던 주방도, 아빠가 좋아하던 마당의 흔들의자도, 엄마가 계속 사진을 찍어대던 하늘의 구름마저도. 행복한 기억이 많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 두렵다.
내 모든 생활에 남아있는 그 잔상 속에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계실 테지만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을 테니까. 그 순간 우리가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나는 울 것 같다. 그러다 서서히 잔상마저 사라져 버리면 그 이유로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눈물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