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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xit Oct 09. 2022

오즈 야스지로와 밀레

동경의 황혼 / 이삭 줍기

<동경의 황혼>, 오즈 야스지로 (1951)

여름이 지나도 오즈의 쇼트들을 계속 곱씹게 된다.

쇼트들이 사진 같달까, 사람을 사물로 대상화시킨 정물화 같다는 생각까지 한다. 이제 와서는 영화의 쇼트들을 그림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오즈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그림의 침묵은 완벽하다.


진실은 서둘러 웅변하지 않는 법이다. 분명 진실은 이념과 종교, 체제에 관심이 없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아도, 진실은 우리의 필요와 바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즈 Shot 1
오즈 Shot 2



<이삭 줍기>, 장 프랑수아 밀레 (1857)

오즈를 생각할 때쯤 밀레의 <이삭 줍기>가 찾아봤다. 그림에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다. 서사랄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원적 목가를 떠올릴 테지만 이는 목가적 여유와도 관계가 없다. 밀레는 오직 이삭을 줍는 이들의 체격과 신중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농부들의 무겁고 천천히 움직이는 몸은 선배 들라크루와가 혁명적 영웅에게만 부여했던 품위를 자연스럽게 지닌다. 품위는 영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즈의 영화를 보면 밀레를 떠올리고, 세잔의 그림을 보면 오즈가 연상된다.


어쩌면 두 화가와 한 영화감독은 일상과 현실이 무엇인지 서로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돌아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 그림과 영화에는 우아한 포즈도 없고, 미끈한 선도 없으며, 인상적인 색채와 역동적인 서사도 없다. 오히려 이들은 개인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들에게 특권적인 시각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서 '특권적 순간', '카메라 권력'을 해체시킨다.

그렇기에 이들의 영화와 그림은 그 누구도 함부로 단정 짓거나 판단 내리지 않는다.

 

오즈 Shot 3


함부로 단정 짓거나 판단 내리지 않음. 웅변하지 않음. 침묵과 관조.

인간에 대해 이 그림과 영화가 보내는 대가 없는 신뢰가 아름다운 것일까. 그리고 무조건적인 신뢰가 가능하다고 피력하는 예술의 순기능을 믿는 그들의 겸손한 태도가 부럽다. 이 순수한 정공법이 아직까지 유효한 이유는 영화가 꿈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


비가 오면 언젠가 비는 그치기 마련이다. 창문을 닫아도 계절은 오고, 사람은 태어나면 죽으며, 만나면 이별한다. 딸은 제 품에 있다가 자신의 세계로 날아가고 남은 아비는 홀로 늙는다. 이 모두를 같은 무게로 다루기 위해 오즈는 평형의 ‘다다미 쇼트’를 사용했고 이 신뢰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카메라는 이들의 무게를 반듯하게 받쳐 올린다.


오즈는 상투적이라는 이유로 겹겹이 가려진 진실이 있는 점, 우연의 빛점이 가닿은 ‘점’ 찍기 위해 다다미 위에 카메라를 위치시킨다.

밀레는 제철보다 늦게 여무는 벼가 상에 맺힐 때, 붓을 들었으며,

그리고 한 과학자는 거대한 망원경으로 이를 비춰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기가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 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도덕적 스승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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