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xit Jun 04. 2022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론 (1)

1부 : 기억의 폐허 그리고 작은 꿈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최초 부녀 이상문학상, 맨부커상으로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진 작가 한강.
과몰입을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을 뜯어본다.
한강은 지금 어디 있는지, 우리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기억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서는 문득 어느 오후 마신 차와 마들렌이 화자를 지난날의 삶으로 이끈다. 그리고 화자는 여기서 삶의 실상을 발견하게 된다.



 우중충한 오늘 하루와 음산한 내일의 예측에 풀 죽은 나는 (…)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 나를 휩쓸었다.



한강의 독특한 소재들 (눈, 새, 흰)


조금만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기억을 소환하거나 환기시키는 일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현상을 느끼고 비슷한 것을 찾아 서로 마주 보게 하는 데는 과거를 빠르게 뒤져야 하며, 지성의 힘을 빌려 찾아낸 기억은 어떤 목적과 특성에 맞게 찾아내 졌다는 점에서 단편적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차와 마들렌과 같이 어떤 사물을 느낄 때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플래시백’, 지금 내가 찾아 나서는 기억이 아닌 죽은 기억들의 무덤에서 ‘작은 계기’가 나를 찾아 부를 때 일어나는 플래시백은 과거가 나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 속성이 다른 위상을 지닌다.



이러한 과거는 촌각 속에서 나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흘러간 것과 현재의 내가 관계할 때, 형용할 수 없는 짧은 시간 동안 현현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과거의 흔적은 언제라도 우리 곁을 달아나버린다.



한강의 꿈도 이렇게 문득 닥친다. 그리고 진실도 문득 우리에게 닥친다. 한강은 기억들의 폐허에서 비루하고 잊힐 것들 (눈 등)을 찾고 진실을 마주한다. 그러나 기억의 흔적들은,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언제든지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작가는 영락없고 잊힐 것들을 하나씩 주워 모으며 (증언, 소설 속 인하의 자료, 경하의 관찰) 결코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부서진 것들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만을 시도한다.

신경을 절삭해버리는 것이 나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내는 일,
죽은 기억의 강 속에서 부서져버린 잔해를 길어 모으는 일,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일.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는 일”
(⌜소년이 온다⌟ 中)



한강의 역사는 그렇게 구성된다.
한강에게 문득 닥친 꿈 한 조각만큼 경하의 웅크림만큼,
인선의 손가락의 신경 하나만큼,

작은 계별들의 계기에서 전체의 결정을 발견할 것.


한강의 역사는 각성을 위한 몸부림 아니,

몸서리 침이다.



#폭풍벤야민 #texit #서평 #책리뷰

작가의 이전글 [독서모임 모집] texit 독서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