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경 Oct 15. 2020

이소라 「7」 그리고 나 (3)

꼭 그래야 할 일은 아니었기에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술에 취해 말하는 노래
간절히 원해 wanna stay with you oh tonight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지난 이별이 슬프게 생각나
간절히 원해 wanna stay with you oh tonight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
혼자서 남겨진 방 그 마지막 끝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떠나야 할 일이었을까
먼저 사라진 그대 또 올 수가 없네

—이소라, ‘Track 8’


소라 누나 7집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죽은 자’이다. 죽은 자를 보내는 장송곡인 4번 트랙, 죽은 자들이 출몰하는 핼러윈 철이 한 해의 시작이라는 10번 트랙, 그리고 여기,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8번 트랙. 그런데 4번 트랙도, 8번 트랙도, 그 죽음의 원인은 자살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8번 트랙의 “죽은 그”가 엘리엇 스미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라는 말은 죽은 자를 다그치는 말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4번 트랙만 생각하더라도 소라 누나가 죽은 자를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여기서도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라는 말이 죽음을 (설령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수동적인 경험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은 그”는 원해서 죽음을 택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썩 원치는 않았지만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일이었냐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꼭 그렇게 ‘되어야 할’ 일이었을까 안타까워하는 표현에 가깝다. 왜? 힌트는 7집의 3번 트랙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몸 아픈 날 혼자일 때면 / 눈물 없이 그냥 넘기기 힘들죠 / 모르는 그 누구라도 / 꼭 손 잡아 준다면 / 외로움은 분홍 색깔 물들겠죠”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누군가 “혼자서 남겨진 방 그 마지막 끝”에 그의 손을 꼭 잡아줄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소라 누나는 자신이 그와 함께 있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지난 이별”은 2번 트랙을 지적하는 것일까? 표현이 부족해 상심한 경험이 많은 소라 누나는 어쨌든 죽은 그의 마음에 공감을 표한다.




대문 앞에 도착했다. 우리 집 대문은 한쪽이 고정문이다. 문은 여닫으라고 있는 것인데 평생 닫힌 채로 살아가야 한다니 불쌍도 하다. 마치 어디 뉘일 곳 없는 내 마음 같다. 맥없이 끼익 문을 열고 터벅터벅 계단을 오른다. 고작 3층 오르기가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힘들다. 열쇠로 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다. 방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음만 위잉 들린다. 곳곳에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다. 세탁기 뚜껑에는 수건이 걸려 있고, 미처 빨랫감을 거두지도 않은 건조대 위에는 가방이니 종이니 잡동사니가 쌓여 있다. 꼴 보기 싫어 침대에 털썩 앉고 고개를 숙인다. 침대 밑 서랍이 눈에 들어온다. 드르륵 열어 넥타이를 하나 꺼낸다. 내가 제일 아끼는, 패턴이 들어간 갈색 넥타이. 목에 칭칭 감아본다. 이 순간만큼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옷장에 가서 벨트를 꺼내 온다. 목에 감고 힘껏 힘을 준다. 호흡이 딸리고 눈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내가 이 고통을 참을 수 있을까?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벨트를 풀고 한숨을 내쉰다. 만약 저지른다면 장소는? 조금이라도 민폐를 덜 저지르려면 어디가 좋을까? 그러다 떠오르는 우리 엄마 얼굴. 너, 정말 대못을 박을 자신이 있어? 물론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할 자신은 더더욱 없는 걸.


꼭 이래야 할 일일까? 다섯 평 남짓 자취방 침대에 가만히 앉아 목에 넥타이를, 벨트를 감아봐야 할 일일까? 누군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면, 손으로 온기를 전해준다면 이러지 않아도 될 일은 아닐까? 머리도 가슴도 늘 내 생각이 맞다고 말한다. 꼭 그래야 할 일은 아니라고. 누군가 말 한마디 건네주고 손 한 번 잡아주면 된다고. 사고가 여기에 이르면 일단 억울함이 치민다. 왜 나는 늘 혼자여야 할까? 왜 나에게는 늘 믿음이 요구될까? 뒤로 쓰러져 천장을 바라보며 답을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원망하게 된다. 어릴 적 나는 왜 사랑 대신 눈칫밥을 먹고 자라야 했나요? 왜 늘 먼저 연락하는 건 내 쪽이어야 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티를 내는데도 왜 이렇게 관심들이 없는 거야? 힘들면 말하라며? 말해도 왜 위로 대신 상처를 주는 거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이렇듯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울면서 잠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겪은 패턴이라 그랬을까 약 때문에 그랬을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는 없다는 생각을 조금 더 물고 늘어질 힘이 남아 있었다. 그래, 정말로 나는 ‘늘’ 혼자였을까? 죽을 만큼 받아들이기 싫은 생각을 물리치기 위해 추억을 뒤져 증거들을 찾아본다.


열여섯 내지는 열일곱 무렵, 엄마가 쓰러지신 적이 있었다. 엉엉 울며 아빠를 비롯해 주변 어른들에게 전화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상황이 심각하게 번지지는 않았다. 얼마 뒤 기운을 차리신 엄마를 부축해 이웃집에 갔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엄마가 말했다. 앞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내 얼굴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다음은 스물한 살 즈음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로 내 치부를 고백했다. 친구는 곧장 내가 있던 곳으로 와주었다. 같이 울어주었다. “두 손에 담아 건네줄 게 내 존재밖에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스물일곱 살에는 실명할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한 달 사이에 총 네 번의 전신마취와 수술을 했다. 첫 번째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고 마취 후유증으로 끙끙대며 다음 수술을 기다릴 때였다. 밤늦게 형 하나가 찾아왔다. 다른 건 가물가물하지만 손을 꼭 잡아준 기억이 난다. 까끌까끌하지만 따뜻한 아저씨 손바닥. 스물여덟 살에는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굳이 하는 것도 없이 같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냐고 의문을 표했던 형이 먼저 전화를 걸어주기 시작했으니까. 역시 스물여덟 살일 때였다. 논리적인 조언밖에 할 줄 모르던 형이 “너 보라고” 하늘이 이쁘다고 노을을 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 드물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결국 주변 사람들 마음을 원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내 원망은 ‘사람’에서 ‘세상’으로 옮겨간다. 왜 세상에는 사랑이 충분하지 않을까? 서로에게 외로울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사랑을 표현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이 시점부터 더 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는 먹히지 않는다. 차가운 세상의 피해자가 나뿐일 리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나 역시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남겨진 방”에서 “마지막 끝”을 보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설령 끝을 내지는 않았더라도 혼자서 외로웠을 수많은 사람들,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갈구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얼마 뒤에 보기로 약속했으면서 결국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던 고등학교 친구. 내 가시 돋친 말에 서울 가더니 변했다고 말씀하시던 엄마. 서투른 솜씨로 이따금 카톡을 보내시던 아빠. 믿음의 체계가 무너져내려 홀로 이방인처럼 느껴졌을 친구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타향살이를 견뎌냈어야 할 어느 동생. 그리고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 꼭 그렇게 외롭고 힘겹고 괴롭고 슬플 일이었을까? 나는 과연 손을 내밀어주었는가?




난 새롭거나 모나지 않은 말 주워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
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음 차가운 말
음 살가운 말
음 따가운 말
음 반가운 말
다 외로운 말
다 외로운 말
다 외로운 말
다 외로운 말

—이소라, ‘Track 5’


소라 누나의 7집 5번 트랙과 11번 트랙에서는 가수로서의 사명감 내지는 창작관이 드러난다. 특히 ‘Track 5’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주로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소라 누나가 음에 말을 실어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외로움의 발로이다. 이런 통찰은 차가운 말이든 살가운 말이든 따가운 말이든 반가운 말이든 “다 외로운 말”이라는 대목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든 그건 다 외로워 그래요’인 셈이다. 외로워서 사랑을 갈구하느라 반가운 말이 나가고, 그러다 거부당하면 외로움이 사무쳐 따가운 말이 나가고, 누군가 나처럼 외로워 보이면 마음이 동해 살가운 말이 나가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 괜히 벽에 부딪혀 상처를 받을까 미리 차가운 말이 나가고 등등. 당연히 이는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가 어떤 언행을 보이든 그 기저에 깔린 외로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대사 하나는 “Isn’t everything we do in life a way to be loved a little more?”라는 셀린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그건 결국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부조리한 이유도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너무 외롭다 보니 이 사실이 너무나 생생하게 와닿았다. 물론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다 한들 아직도 선택지는 두 가지가 남는다. 하나는 삶을 외면하는 것이다. 왜? 어차피 당장 내가 외롭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처지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의 고통마저 내 고통처럼 느끼는 순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으니까. 쇼펜하우어 주장대로 그저 의지를 부정하고 싶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까뮈가 말하는 반항인처럼 바보처럼 돌을 굴려보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에게는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일이 하나는 더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손을 잡아줄 수 있다. 나는 좀 더 버텨보기로 선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소라 「7」 그리고 나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