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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경 Oct 20. 2020

이소라 「7」 그리고 나 (4)

 더 고독하게, 더 부족하게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이소라, ‘Track 9’


‘Track 9’는 소라 누나가 전면에 나서서 리스너들에게 할 말을 전한다는 점에서 앨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가사는 사실 앨범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생각보다 알아듣기 힘든 편이다. 화자는 갑자기 왜 세상에 화를 내는 걸까? 지금까지 다른 트랙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상에 사랑이 부족해 그렇다. 처음에는 연인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Track 3’에서 살펴볼 것처럼 “사랑이 … 마음에 차지 않”아서 “속상”했다. 하지만 이내 실망과 속상함은 분노와 분개로 차올랐다. 세상은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에게 냉랭했기 때문이다. 결국 쓸쓸하게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있었다. 더 열받는 점은 그런 것들이 “당연한 고독”이자 “평범한 불행”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다들 사랑이 부족한 세상을 그런 대로 잘 적응해 살아간다. 그러면서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 왜 그렇게 유난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자 같이 예민한 사람 입장에서 고독과 불행을 당연하고 평범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더 강해진다.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더 강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택하지 않는 이상 화자는 끝없이 더 많은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원하기도 하겠지만 자기처럼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염원할 것이다. 화자에게는 그런 의지와 소망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화자는 오히려 더 “고독하게 만들”라고, 더 “부족하게 만들”라고 만든다. 고독하고 부족한 것을 인식할 때에만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불만족스러워서 버텨보기로 했다. 어쨌든 내 우울의 원인은 분명해 보였다. 내가 외로워서였다. 단편적으로는 사랑을 갈구해야 했다. 물론 결코 그러기를 포기하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세상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끝을 준비했다.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의 의욕은 묘한 곳에서 피어올랐다. 시작은 내 외로움을 느끼다 못해 다른 이들의 외로움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공감은 연민으로 확장되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고독과 불행을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겪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세상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망측한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판은 결코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 제도가 존속하는 한 부조리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류애 같은 걸 품지는 않는다. 그저 특정 개인들이 사랑스럽고, 또 그만큼 안타까울 뿐이다. 그 몇몇 개인들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어도 나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사명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경험적으로도 그랬다. 이상하게도 나는 주변 사람들이 힘들수록, 아직 내게 (사랑받을 힘이 아니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수록 우울할 틈이 없었다. 예컨대 작년과 재작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누가 힘든 얘기를 하면 같이 울어주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도리어 밝아져야 했다. 우울감으로 너무나 멍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아무 말이 나오지 않더라도 누가 상을 당했다 하면 달려가야 했다. 누가 전세금을 깎아 먹고 있을 정도로 힘들다고 하면 생필품이라도 싸 들고 찾아가야 했다. 그 무엇보다 도전적이었던 일은 신앙을 잃고 헤매는 친구들을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설령 무너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그렇다면 너는 네 갈 길을 가야지”라는 답을 제시해야 하더라도 위로해주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이 표현에 인색했던 만큼 내 노력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아니, 의미가 있기는 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투하는 동안 어쨌든 나는 우울감이라는 ‘검은 개’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최근의 우울감에는 번역 작업 중인 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소년병으로 차출되어 유년시절을 잃어버린 남자의 에세이였다. 그가 아직도 소년, 소녀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런 아이들에게 무지한 어른들을 위해, 아픈 과거 경험을 되새기며 꾹꾹 눌러 담은 텍스트를 보며 나 역시 감화되었다.


혹자는 이를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먼저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끊임없이 나를 화나게, 강하게 만드는 세상이라는 곳에서 내가 나름대로 역할을 맡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여전히 더 고독해야 할, 더 부족해야 할 까닭이 있는 셈이다. 고독한 이상 나는 계속 사람들을 바라볼 것이다. 오히려 고독한 만큼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고독한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이다. 부족한 이상 나에게는 이전보다 사랑을 더 나타내야 할 이유가 있다. 오히려 내가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충분히 사랑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내 인생도 끝날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면서도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상태를 더 즐기는 법이다. 물론 이런 독한 삶의 자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금방 또 무너질 것이다. 네 번째 위기가 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내가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는 내 고독과 부족을 다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에는 예기치 못한 부수적인 이익이 있을 수 있다.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속상해 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내지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이소라, ‘Track 3’


앨범을 수미상관 식으로 덮고 있는(‘Track 3’은 ‘Track 12’에서 다시 리프라이즈 된다) ‘Track 3’은 앨범의 주제곡이라고 할 만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소라 누나가 자신의 고독을 솔직하게 까발리면서까지,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 절절히 공감하면서까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 우리가 가야하는 곳”이라는 메시지이다. 설령 내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설령 세상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어 화가 나더라도, 그러면 어떡할 건데? 받는 사랑이든 주는 사랑이든 어차피 가야할 곳은 또다시 사랑이다.




물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할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내가 사랑받을 기대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사랑을 줌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나름의 자리매김을 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돌고 돌아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받을 만한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이별을 거쳐 어쨌든 나에게는 여러 소중한 친구들이 남았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감사하지만 부디 내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닿은 것이기를 바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걸작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 박사가 다시 생의지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즉 물리적으로 생존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눈앞에 닥친 죽음 그 자체)이지만 다른 하나는 소리가 부족한 환경(즉 소통과 관계의 부재)이다. 수다쟁이 맷 코왈스키가 존재와 부재를 통해 그 점을 명확히 직시하도록 도와줬으며 스톤 박사는 결국 어느 이누이트 남성과 우연히 교신에 성공한 가운데 개 짖는 소리를 울부짖기까지 한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도 관계는 본능이다. 또다시 반드시 삶의 의욕이 바닥을 칠 때면 난 다시 사랑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다.




나의 고독과 결핍 덕분에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 가운데에는 이소라라는 인간 역시 포함되어 있다. 내 인생 최고의 앨범을 고르는 데 있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도록 만들어주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같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어서, 사랑이 이상적인 대안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도록 나 대신 우뚝 서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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