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ence + The Machine, ‘Hunger’
Hunger by Florence + The Machine
열일곱 살부터 끼니를 거르기 시작했지
사랑이 일종의 공허함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도 그땐 내가 느끼는 허기가 뭔지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걸 가리켜 외로움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었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High As Hope」의 첫 싱글로 나온 ‘Hunger’ 1절은 최근에 본 버스 중 가장 강력한 버스 파트이다. 어린 시절 거식증을 앓았던 웰츠는 배가 고프지만 먹지 못하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만성적인 굴레에 갇혀 있었을 터이다. 그는 사랑 역시 비슷하다고 느꼈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기분. 하지만 채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사랑은 쉽게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집착하고 중독되어 봐도 여전히 허전한,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그래서 차라리 거식증 덕분에 얻었던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배고픔’이 견디기 쉬웠다고 얘기한다. 그땐 자신이 느끼던 공허함을 “배가 고플 뿐”이라 하면 되었으니까. “외로움”이라 부를 필요는 없었으니까. 2절에서는 그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사랑했던 것 두 가지가 나온다. 그는 “사랑이 내가 먹는 약에 있는 줄 알았다”고, “사랑이 무대 위에 있는 줄 알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아무리 약에 중독되고 무대 위에서 혼을 태워도 오히려 공허함은 커져만 갔다. 약은 더 많은 약을 부르고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자기 휴대폰이나 뚫어져라 볼”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해답은 없는 걸까. 포스트-코러스 파트 말미에서 웰츠는 이렇게 시인한다.
우리가 절대 답을 찾은 건 아니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우리 모두는 배고픔을 느끼지
무엇이 확실하단 걸까? 코러스에서 반복해 강조하듯 “우리 모두”가 “배고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이 사실을 확신하는 주체가 “우리(we)”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사랑이 고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웰츠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랑을 엄한 곳에서 채우려고 했을 뿐이다. 웰츠는 겸손하게도 각자의 답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분명히 안다. 배를 채우는 것이, 술과 약에 취하는 것이, 일을 즐기는 것이,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는 것이 우리 배고픔을 온전히 채워 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어쩌면 웰츠처럼 우리가 ‘진짜 사랑’이 고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한 발을 내딛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웰츠는 본인만의 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 그는 청자인 “너”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오, 너란 존재 그 자체 그리고 네 생생한 젊음까지
어떤 역경도 널 건드리지 못할 것만 같아
네 아름다움은 죽음마저 하찮아 보이게 만들지
그리고 잠시나마 난 걱정을 잊었어
“잠시나마 걱정을 잊었어.” 그렇다. 잠시나마 배를 채운 것이다. 다른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웰츠가 직접 언급한 대로, 사랑은 절대 결핍이나 상처를 동반하는 집착이 아니다. 사랑은 온전한 느낌,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사랑은 다른 존재와 이어지는 느낌이다.
난 늘 내가 문제일까 싶었다. 나만 이토록 배가 고픈 것일까?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뿐 다들 굶주리고 있으리라고. 그러니 내가 그 허기를 채워 주겠노라고. 내심 웰츠에게 고맙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것 같아서. 물론 아직 그만큼 확신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난 배고프지 않다며 부정하는 사람에게 넌 배고프다고 강요한 것만 같아 스스로의 가슴에 커다란 못이 박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사랑이 아닌 것 같은 것으로부터 외로움을 채우려는 것만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고는 이 무슨 오지랖인가 스스로가 한층 더 역겨워지기도 한다. 내가 틀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미안하게도 이건 그들에 대한 저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