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술탄까지

1부 - 이슬람의 '엘리트 노예들', 주인을 몰아내고 왕국을 세우다

by 서창현
Slavery17.jpg 아프리카인 노예에게 낙인을 찍는 모습을 묘사한 미국 일러스트


인류 역사에서 '악습'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많은 악습들 중에서도 특히 비도덕적인 것으로 '노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깔려 있는 현대 사회 대부분의 시각으로는 말이죠.


'효율'을 위해 사람을 차곡차곡 '포개어' 운송하던 노예 운반선, 노동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잃는 '징벌'을 당했던 벨기에 지배 하의 콩고인들의 비극 등, 인간이 같은 인간을 노예로 대하며 만행을 저지른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로, 대다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억눌려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바로 노예들이었죠.


하지만 전근대 이슬람 사회에는 다소 특이한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의 주류였던 무슬림 지배자들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계급이라는 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노예와 똑같았죠. 그렇지만 그들은 웬만한 일반인보다도 더한 부귀영화를 누렸고, 이슬람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되었으며 끝내는 제 주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노예 '집단'의 사례라는 점이 이들을 더 특이하게 만들었죠. 오늘 글의 주제는 바로 이 '엘리트 노예들'입니다.


Miniatura_Maometto.jpg 예언자 무함마드와 천사 가브리엘을 그린 그림. 이스탄불 톱카프 궁 박물관 소장


예언자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동로마 제국도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주변 세력들이 너무나 강력했으니까요.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은 무슬림들의 거센 공세에도 끄떡하지 않으며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무슬림들은 세력을 뻗어나가며 더 많은 적들을 마주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나 서유럽의 십자군, 인도의 왕국들,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등이 있었죠. 그리고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권력을 두고 내전이 밥 먹듯 일어났습니다.


9세기, 이슬람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아바스 왕조의 8대 칼리프 알 무타심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그는 세계 어디의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지녔으면서도, 종교나 혈연, 지연 등에 휘둘리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성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고 싶어했죠. 아랍인들 역시 험난한 사막 출신의 전사들로서 이미 충분히 저력을 입증했지만 이해 관계에 따라 여러 파벌로 나뉘어 내분과 배신을 일삼았죠. 아바스 왕조 역시 이전 왕조를 꺾고 일어선 왕조였기 때문에 제2의 아바스가 나올 여지를 없앨 필요가 있었습니다.


GokturkWarrior.jpg 돌궐 전사 조각상. 튀르크족은 돌궐 제국 등을 세워 인근 정주민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강인한 유목민들이었다.


알 무타심은 '획기적'인 방안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튀르크족에게 주목했죠. 튀르크족은 오래 전부터 뛰어난 전사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국사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되는 돌궐 제국을 건국하여 중국의 당나라와도 오랫동안 혈전을 벌였을 정도였으니까요. 돌궐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이들 튀르크족은 여전히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사막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유목민족이었으니만큼, 튀르크족은 말을 타며 활이나 창을 다루는 것에 뛰어났습니다. 한 이슬람 작가는 "튀르크인은 땅 위에 서 있는 날보다 말 안장 위에 있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까지 말했죠. 또한 알 무타심은 노예 군인들이 고향과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머나먼 이국에서 군대 생활을 하면 아랍인들처럼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칼리프의 권위에 도전할 위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아바스 왕조의 '군사력 강화 프로젝트'에 따라, 수많은 튀르크족 노예들이 이슬람 세계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무슬림들은 이전부터 튀르크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을 상대로 수차례 전쟁을 벌여 노예를 확보하곤 했는데, 이는 흔히 잘 알려진 유럽인들의 '노예 사냥'보다도 더 앞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주로 소년들이 희생양이 되었죠. 그들은 '소년들'이라는 뜻의 '굴람'으로 불렸습니다. 칼리프들은 구입한 굴람들을 훈련시켜 기존의 이슬람 전사들을 대체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당시 작성된 문서 중에는 굴람의 열병 및 검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병사들의 무기와 말, 방어구 점검은 물론 피부색이나 흉터 유무 등까지 일일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노예 병사들은 아바스의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는 주력이 되었죠.


아랍 군인들은 반발했습니다. 칼리프들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요즘에야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국민의 의무'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만 해도 전쟁에 나가는 것은 상류층의 '특권'에 가까웠습니다. 전사 계층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귀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그런데 하루 아침에 튀르크족 노예들에게 그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아랍인들과 튀르크 굴람들이 바그다드 시내에서 서로 싸움을 벌이고, 보다 못한 칼리프가 아예 수도를 옮길 정도였다고 하니 그 갈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됩니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굴람 제도는 성공적으로 이슬람 세계에 정착했습니다. 아바스 왕조가 실권을 잃은 뒤에도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 즉 술탄들은 노예 병사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Mameluke-in-Full-Armour.jpg 완전히 무장한 이집트 맘루크를 묘사한 그림. 창과 검, 권총에 갑주까지 충실히 갖춘 맘루크는 이슬람 세계의 최고 정예군이었다.


굴람들은 '맘루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맘루크'는 '누군가의 소유인 사람', 즉 '노예'라는 더 노골적인 명칭이었죠. 그들은 앞서 적은 것처럼 어린 나이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팔려서 이슬람 지배자들의 '소유물'이 되고 혹독한 훈련을 받았죠. 아바스 시절부터 모의 훈련을 통해 병사들의 기량을 상/중/하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엄격하게 관리하였으며, 카이로에는 굴람/맘루크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와 훈련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맘루크들은 이슬람식 교육을 받았고, 검이나 창, 활을 다루는 훈련을 받았으며, 체력을 단련하고 말을 타는 기술을 연마하였습니다.


비록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었지만, 이 굴람/맘루크들은 사실 이슬람 사회의 최상류층에 가까웠습니다. 이슬람 세계 내외의 수많은 강적들로부터 권력자들을 지키기 위한 정예병이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결과였죠. 비록 그 과정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긴 했어도 그들은 오히려 아랍 자유민들보다도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부유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가즈나 왕조 궁전의 벽화에 묘사된 굴람들은 비단 제복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장식한 창, 도끼 등을 든 화려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굴람/맘루크 제도가 확산되면서 튀르크족 외의 다른 민족 출신 노예들도 늘어났습니다. 캅카스 지역의 조지아인이나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러시아인이나 헝가리인과 같은 유럽 출신들이 많이 있었죠.


Shah_Ghiyath_al-Din_Tughluq_arrives_in_Tirhut._Depicted_by_eyewitness_Muhammad_Sadr_Ala-i_in_his_BasaUn_al-uns,_ca.1410._Istanbul,_Topkapi_Palace_Museum_Library,_Ms._R.1032_(troops_led_by_the_Shah).jpg 델리 술탄국의 기야스 웃딘 투글루크와 그의 중무장 기병대. 이슬람의 노예 군대는 무슬림들의 인도 정복, 그리고 몽골 제국의 인도 침공 방어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 노예들은 이슬람 권력자들의 목표를 달성해 주었을까요? 정답은 '그렇다'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최정예 군대로서, 이 굴람 혹은 맘루크들은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굴람 기병들은 이슬람 세력들이 인도의 토착 왕조들을 물리칠 때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전투 코끼리를 동원하였지만 결국 굴람을 앞세운 무슬림들에게 패배했습니다. 코끼리는 덩치도 힘도 기병을 압도했지만, 북인도의 평지에서 사방으로 달리면서 공격을 퍼붓는 튀르크족의 기동성을 당해내지 못했죠. 이후 이슬람 계열의 여러 왕조들이 인도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활약했던 일부 노예들은 왕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델리 술탄국의 시조 쿠투브 웃딘 아이바크였죠. 그 역시 튀르크족 노예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몸 담고 있던 고르 왕조의 경쟁자들을 꺾고 술탄에 오른 뒤, 델리를 점령하여 델리 술탄국을 건국하였습니다. 쿠투브와 그의 후손들은 노예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노예 왕조'라고 불리게 되었죠. 인도의 이 노예 왕조는 후일 살펴볼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의 선배격(?)이었습니다.


Saladin_and_Guy.jpg 하틴 전투 이후 예루살렘 국왕의 항복을 받는 살라딘. 아이유브 왕조의 맘루크들은 오랜 전쟁을 겪으며 막강한 권세를 얻었고, 끝내 아이유브 왕조를 멸망시키고 맘루크 왕조를 세운다.


굴람/맘루크는 중동에서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비록 주인공의 적이었지만 웬만한 유럽인들보다도 더 뛰어난 '기사도'를 갖춘 인물로 묘사되었던 이집트의 술탄 살라딘은 맘루크들을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이집트를 장악하고 무슬림 경쟁자들이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중동 각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기독교 왕국들과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성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싸움을 벌였습니다. 통칭 '사자심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를 위시한 3차 십자군의 맹공 역시 살라딘에게 위기를 가져다 주었지만, 끝내 중동과 성지에서의 주도권을 지켜낼 수 있었죠.


살라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가 이토록 많은 전쟁을 벌이면서, 아이유브 군대의 중추였던 맘루크의 지위와 영향력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권력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작용도 일어났죠. 그 전까지는 권력자의 창칼이었던 맘루크들이 이제 스스로 창과 칼을 쥐고 권력자에게 도전한 것입니다. 그들은 끝끝내 자신의 주인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맘루크 왕조'의 성립이었죠. 그렇다면 이 노예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잘 이끌어 나갔을까요? 아니면 비슷한 방식으로 왕과 관료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던 고려 무신정권처럼 전횡을 일삼다 자멸했을까요? 다음 글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미지 출처

1. 아프리카인 노예에게 낙인을 찍는 모습을 묘사한 미국 일러스트

(https://en.wikipedia.org/wiki/Slavery#/media/File:Slavery17.jpg)

2. 예언자 무함마드와 천사 가브리엘을 그린 그림

(https://en.wikipedia.org/wiki/Islam#/media/File:Miniatura_Maometto.jpg)

3. 돌궐 전사 조각상

(https://en.wikipedia.org/wiki/Turkic_peoples#/media/File:GokturkWarrior.jpg)

4. 완전무장한 이집트의 맘루크

(https://en.wikipedia.org/wiki/Mamluk#/media/File:Mameluke-in-Full-Armour.jpg)

5. 델리 술탄국의 기야스 웃딘 투글루크와 그의 중무장 기병대

(https://en.wikipedia.org/wiki/Delhi_Sultanate#/media/File:Shah_Ghiyath_al-Din_Tughluq_arrives_in_Tirhut._Depicted_by_eyewitness_Muhammad_Sadr_Ala-i_in_his_BasaUn_al-uns,_ca.1410._Istanbul,_Topkapi_Palace_Museum_Library,_Ms._R.1032_(troops_led_by_the_Shah).jpg)

6. 하틴 전투 이후 예루살렘 국왕의 항복을 받는 살라딘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Hattin#/media/File:Saladin_and_Gu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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