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술탄까지

2부 - 냉혹한 맘루크 조직 속 '왕좌의 게임'

by 서창현
تمثال_للسلطان_الظاهر_بيبرس.jpg 바이바르스의 흉상. 바이바르스는 맘루크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이집트 국립군사박물관 소재.


지금의 흑해 북쪽 초원지대에 살던, 튀르크인의 일파인 킵차크족 출신의 어느 소년은 몽골인들에게 가족을 잃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지만 백내장으로 인해 한쪽 눈의 시력이 없었던 그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노예시장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수백km 떨어진 남쪽의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거쳐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까지 와서야 주인을 만나고 본격적인 '노예'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칭 '바이바르스'라고 불리는 인물이었습니다. 튀르크어로 '표범왕'이라는 뜻을 가진 바이바르스는 그곳에서 이집트 술탄의 노예 군인, 즉 맘루크가 되었습니다. 한쪽 눈의 시력이 없으면 현대 사회에서 생활하기에도 매우 불편할 텐데, 말을 달리고 활을 조준해야 하는 전장에서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맘루크로서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통과했다는 것을 보면 아마 바이바르스는 전사로서의 재능이 특출났던 모양입니다.


C_croisade7_prisonnier1.jpg 무슬림에게 패배하고 포로가 된 프랑스 국왕 루이 9세. 바이바르스는 7차 십자군을 격퇴하는 데 활약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이 말을 잘 타고 무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전황을 뒤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바이바르스가 여러 맘루크들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것 역시 그가 자신의 핸디캡마저 극복하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지휘관의 재능도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는 7차 십자군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프랑스의 왕 루이 9세가 지휘하는 십자군은 바이바르스가 제시한 전술에 넘어가 두 차례의 참패를 당했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는 대다수의 병사들이 죽고 유럽 군대의 핵심이었던 기사는 고작 5명만이 살아남았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두 번째 전투에서는 루이 9세마저 이슬람 군대에게 사로잡히는 굴욕을 당한 것입니다. 바이바르스는 두 차례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지만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바로 같은 무슬림 경쟁자들의 위협이었죠.


바이바르스는 '고결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살아남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죠. 맘루크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말입니다. 바이바르스는 십자군을 무찌르자마자 부하들과 함께 자신의 주인이었던 술탄 투란샤를 암살했습니다. 투란샤의 계모, 즉 왕국의 안주인이었던 샤자르 알 두르의 사주를 받아 벌인 일이었죠.


شجر_الدر_عصمة_الدين_خاتون.jpg 샤자르 알 두르를 묘사한 스케치. 바이바르스가 모시기도 했던 샤자르는 노예에서 시작해 술탄까지 올랐지만 끝내 정쟁에서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


노예 출신 궁녀로 시작해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던 샤자르 알 두르는 전대 술탄인 남편 살리흐가 죽자 자신이 직접 왕좌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의붓아들을 죽인 것도 그래서였죠. 하지만 여성이 술탄 자리에 오른 전례도 없었고, 정당한 술탄을 암살했기 때문에 즉위할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샤자르는 당시 맘루크 총사령관이었던 아이바크와 재혼하고 공동 술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샤자르는 아이바크와도 권력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맘루크들 역시 아이바크와 샤자르의 편으로 나뉘어 대립했죠. 몇 년 간의 권력 다툼 끝에, 샤자르는 아이바크의 하인들을 시켜 그가 목욕하던 틈에 암살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권력을 차지하긴커녕 아이바크의 아들과 부하들에게 붙잡혀 감금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시녀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죠.


샤자르가 죽으면서 바이바르스 역시 숙청당할 위기에 놓였지만, 그는 겨우 목숨을 건져 시리아 지역으로 달아난 뒤 이곳저곳을 전전했습니다. 오랜 대립 끝에 바이바르스와 동료들은 아이바크의 부하였던 쿠투즈를 술탄으로 인정하고 불안한 공존을 이어갔죠.


이처럼 피로 얼룩진 내분 끝에 건국된 맘루크 왕조는 바깥으로부터 닥쳐오는 커다란 위협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몽골이었죠. 몽골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를 잿더미로 만들고, 무슬림들의 종교적 구심점이었던 칼리프마저 붙잡아 처형했습니다. 몽골군은 시리아까지 점령한 뒤 이집트를 향해 내려오면서 맘루크들에게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쿠투즈는 고민한 끝에 몽골군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바이바르스 역시 정적과 힘을 합쳐 몽골군과 싸우기로 하고 연합하였습니다.


Horsemen_whose_lance-heads_are_between_each_other's_shoulder-blades._Dated_773_(1371)_Mamluk_Egypt_or_Syria.jpg 1371년 이집트에서 그려진 맘루크 기병. 맘루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튀르크족은 유목민족답게 말을 타고 싸우는 데 능숙했다.


맘루크들은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아인 잘루트라는 곳에서 몽골군과 격돌했습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들답게, 맘루크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몽골군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린 강적이었지만 맘루크들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아인 잘루트는 맘루크들의 '홈 그라운드'였기 때문에 그들은 몽골군보다 훨씬 지형지물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쿠투즈는 대군을 이끌고 매복했고, 바이바르스는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몽골군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바이바르스는 이번에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맘루크들은 말을 탄 채 달아나면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아식 사법'이라는 기마궁술로 몽골인들과 싸웠습니다. 이것은 유목민족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기술이었고, 몽골군의 주된 전법이기도 했습니다.


Horse_back_archery_AD_4C.jpg 무용총 수렵도의 파르티아식 사법. 맘루크, 몽골 등의 숙련된 기마 전사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돌려 원하는 방향으로 활을 쏠 수 있었다. 흔히 '파르티아식 사법'이라고 불린다.


몽골군은 이미 여러 전투에서 소규모 부대를 미끼로 적군을 끌어들인 뒤 사방에서 일제히 덮쳐서 섬멸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어 왔습니다. 하지만 아인 잘루트에서는 몽골군이 바로 그 방식으로 맘루크에게 속아 넘어갔죠. 쿠투즈의 본대는 몽골군이 포위망에 들어오자마자 일제히 적을 덮쳤습니다. 몽골군은 포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맘루크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격전이 벌어졌죠. 쿠투즈는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투구를 벗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뒤, 병사들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몽골 이교도들과 싸우자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두 지휘관의 활약이 성과를 거두어 마침내 전세는 맘루크들에게 기울었고, 결국 몽골군은 대다수의 사상자를 낸 채 후퇴했습니다. 맘루크들은 아인 잘루트의 승리를 통해, 전 세계를 정복할 것만 같았던 몽골군의 전진을 막아냈죠.


아인 잘루트 전투 직후, 바이바르스는 쿠투즈가 사냥을 나갔을 때 그를 살해하고 이집트의 술탄으로 즉위했습니다. 비록 몽골을 상대로 힘을 합치긴 했지만 쿠투즈는 여전히 바이바르스의 적이었고, 언제 다시 대립할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선수를 친 것이죠. 주인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노예시장을 전전하다 헐값에 팔려온 애꾸눈 소년이 마침내 왕좌에 오른 것입니다. 여전히 안팎에 적들이 많이 있었지만 바이바르스는 권모술수와 전략전술을 충실히 활용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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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르스의 적들. 왼쪽부터 전임 술탄 쿠투즈,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 일 칸국의 칸 훌라구이다. 바이바르스는 평생을 무슬림 정적들과 십자군, 몽골군과 싸우며 보냈다.


첫 번째 적은 같은 무슬림들이었습니다. 아이유브 왕조의 잔당들, 그리고 맘루크 반대파들의 저항이었죠. 바이바르스는 군대를 이끌어 그들을 힘으로 꺾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명분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모시던 주인 샤자르가 적을 암살했음에도 끝내 권력 쟁취에 실패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죠. 바이바르스는 몽골군에게 살해당한 아바스 제국 칼리프의 후손을 찾아내어 옹립하고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했습니다. 『삼국지』의 조조가 황제를 옆에 끼고 실권을 장악한 뒤 자신을 한나라의 수호자로 내세웠던 것과 비슷했죠.


두 번째 적은 그때까지도 중동 곳곳에 남아 있었던 십자군이었습니다. 십자군은 성지를 차지하고 중동의 지리적인 이점을 차지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끈질기게 쳐들어왔습니다. 저 옛날 살라딘이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사투를 벌였던 것처럼, 바이바르스 역시 잉글랜드 왕자 '꺽다리' 에드워드와 자웅을 겨루었습니다. 바이바르스는 에드워드와 승부를 내지 못하고 휴전 협정을 맺었지만, 다른 라이벌들에게 그랬듯 암살자를 보내 에드워드를 죽이려고 했지만 미수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얼마 뒤 에드워드가 왕좌를 물려받기 위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바이바르스는 부분적으로나마 목적을 이루었죠.


세 번째 적인 몽골 역시 맘루크들과 계속해서 경쟁했습니다. 바그다드를 파괴한 장본인이었던 훌라구와 그의 후손들은 아예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일 칸국을 세웠습니다. 일 칸국은 아인 잘루트의 패배를 설욕하고 중동을 정복하기 위해 이후에도 몇 차례 맘루크들을 공격했지만, 바이바르스와 그의 후예들은 모두 격퇴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바이바르스는 일 칸국과 대립하는 한편 멀리 떨어진 자신의 고향을 지배하는 또 다른 몽골 세력인 킵차크 칸국과 우호를 다졌습니다. 킵차크 칸국 역시 일 칸국과 자주 다투었기에 맘루크와 손을 잡고 일 칸국을 견제하려고 했습니다. 킵차크 칸국에 이슬람교를 퍼뜨리는 효과도 있었죠.


Délégation_vénitienne_à_Damas.jpg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베네치아 대표단(1511년 作). 현재 시리아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역사 깊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한 다마스쿠스는 맘루크 왕조 하에서 번영했던 대도시였다.


바이바르스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전쟁을 통해 왕좌를 차지했지만, 명군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펼쳤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참제였습니다. 인터넷도 전화기도 없었던 그때, 각종 중요한 소식이나 명령 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 역참이었죠. 바이바르스와 싸웠던 몽골 역시 광활한 영토 곳곳을 있는 체계적인 역참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맘루크 왕조 역시 역참을 받아들여 이집트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영토 전역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카이로와 다마스쿠스 같은 대도시에는 바이바르스의 후원을 받아 건립된 학교와 병원, 사원 등이 늘어갔고, 몽골의 침입으로 정체되었던 문화와 과학 역시 발전했습니다. 고양이 애호가이기도 했던 그의 영향으로 인해 카이로에는 고양이 정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하네요.


Ancient_City_of_Damascus-107601_(retouched).jpg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바이바르스의 묘. 그의 시신이 안치된 건물은 학교 겸 도서관이기도 했다. 그의 본명에서 딴 '자히리야 도서관'으로 불린다.


바이바르스가 죽자 그의 아들이 뒤를 이어 술탄으로 즉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인과 동료를 해치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바이바르스의 업보였을까요. 바이바르스의 사돈이자, 그와 마찬가지로 킵차크족 노예 출신이었던 칼라운이라는 사람이 바이바르스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왕좌를 빼앗았습니다. 비록 자손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지는 못했지만, 바이바르스가 세운 토대는 이후에도 맘루크 왕조를 지탱했습니다. 맘루크 왕조는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하기 전까지 200년 넘게 이집트와 시리아 등을 다스렸습니다.


바이바르스는 살라딘과 함께 전근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몽골 및 십자군에 맞서 이슬람 세계를 지킨 영웅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그의 삶은 권력을 위해 동료 맘루크와 경쟁하고, 윗사람을 죽여 왕좌를 찬탈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맘루크 왕조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루크 왕조가 오래 존속했다는 점은, 웬만한 귀족들보다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던 엘리트이자 당대 최정예 부대였던 이 특이한 노예들의 역량을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1. 바이바르스 흉상

(https://en.wikipedia.org/wiki/Baybars#/media/File:%D8%AA%D9%85%D8%AB%D8%A7%D9%84_%D9%84%D9%84%D8%B3%D9%84%D8%B7%D8%A7%D9%86_%D8%A7%D9%84%D8%B8%D8%A7%D9%87%D8%B1_%D8%A8%D9%8A%D8%A8%D8%B1%D8%B3.JPG)

2. 포로가 된 루이 9세

(https://en.wikipedia.org/wiki/Seventh_Crusade#/media/File:C_croisade7_prisonnier1.jpg)

3. 샤자르 알 두르

(https://en.wikipedia.org/wiki/Shajar_al-Durr#/media/File:%D8%B4%D8%AC%D8%B1_%D8%A7%D9%84%D8%AF%D8%B1_%D8%B9%D8%B5%D9%85%D8%A9_%D8%A7%D9%84%D8%AF%D9%8A%D9%86_%D8%AE%D8%A7%D8%AA%D9%88%D9%86.jpg)

4. 맘루크 기병

(https://en.wikipedia.org/wiki/Mamluk_Sultanate#/media/File:Horsemen_whose_lance-heads_are_between_each_other's_shoulder-blades._Dated_773_(1371)_Mamluk_Egypt_or_Syria.jpg)

5. 무용총 수렵도에 나타난 파르티아식 사법

(https://en.wikipedia.org/wiki/Parthian_shot#/media/File:Horse_back_archery_AD_4C.jpg)

6. 쿠투즈 / 에드워드 1세 / 훌라구

(쿠투즈 - https://en.wikipedia.org/wiki/Qutuz#/media/File:%D8%B5%D9%88%D8%B1%D8%A9_%D8%AA%D9%85%D8%AB%D8%A7%D9%84_%D8%B3%D9%8A%D9%81_%D8%A7%D9%84%D8%AF%D9%8A%D9%86_%D9%82%D8%B7%D8%B2_crop.jpg)

(에드워드 1세 - https://en.wikipedia.org/wiki/Edward_I_of_England#/media/File:Edward_1.png)

(훌라구 - https://en.wikipedia.org/wiki/Hulegu_Khan#/media/File:Hulagu_Khan.jpg)

7.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베네치아 대표단

(https://en.wikipedia.org/wiki/Damascus#/media/File:D%C3%A9l%C3%A9gation_v%C3%A9nitienne_%C3%A0_Damas.jpg)

8. 바이바르스의 묘실

(https://en.wikipedia.org/wiki/Zahiriyya_Library#/media/File:Ancient_City_of_Damascus-107601_(retouche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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