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코끼리 이야기

1부 - 조선의 사고뭉치, 골칫덩어리 코끼리

by 서창현
19be54dac71446cf9f4a7c212afe836e.jpg 서울대공원의 최고령 코끼리 '사쿠라'의 생전 모습. 태국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온 사쿠라는 지난 2월 13일 사망했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


지난 2월 13일,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사쿠라'가 59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90살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고령이었던 셈이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쿠라는 원래 일본의 한 동물원에서 살다가 우리나라로 왔고, 동물원 최고 원로(?)로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육상 동물 중에서도 가장 큰 덩치와 그에 걸맞게 강한 힘, 그리고 뛰어난 지능과 고도의 사회성 등을 모두 갖춘 생물입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식량이나 상아 등을 목적으로 코끼리를 사냥했지만, 동시에 코끼리의 이러한 능력을 눈여겨보고 활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오래 전부터 많은 코끼리들이 인간에게 길들여졌죠. 이처럼 오랫동안 인간과 부대껴 살아온 코끼리의 역사는 다사다난했습니다. 이번 글은 사쿠라의 머나먼 선배격(?)인 조선의 어느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lephas_maximus_(Bandipur).jpg 흔히 '인도코끼리'라고 불리는 아시아코끼리는 오래 전부터 인류에 의해 길들여졌다. 사진은 인도 반디푸르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수컷 코끼리


우리나라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코끼리가 살지 않기 때문에, 친숙한 이미지와는 별개로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주는 신비한 동물이죠. 600년 전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아마 지금의 몇 갑절로 신비한 동물이었을 것입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1411년 2월 일본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일본도 코끼리가 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아마 일본과 교역하던 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태어난 코끼리가 일본을 거쳐 조선까지 들어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후대의 선조실록에는 '1409년 일본에서 코끼리 2마리를 선물했던 적이 있었다'고 언급되는데, 태종실록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확인은 되지 않습니다.


1280px-사복시_살곶이_목장지도.jpg 사복시는 각종 교통수단인 말, 수레 등을 관리했다. 전국의 목장을 감독하는 곳이기도 했다. 지도는 18세기 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살곶이(현 서울 성동구) 목장 지도.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태종은 코끼리를 사복시로 보내 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복시는 당시의 주 교통수단이었던 말과 수레 등을 전담하는 관청이었죠. 조선왕조실록에 짤막하게 언급된 이 코끼리는 사복시에서 매일 콩을 4~5말이나 먹었다고 합니다. 네이버 부피변환 기준으로 4말은 약 72리터, 5말은 90리터 정도입니다. 조선시대의 기준은 지금과 달랐겠지만, 그래도 매일 수십 리터짜리 통에 콩을 가득 채워 먹였을 것입니다. 기록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물도 어마어마하게 마셨을 거고요.


코끼리의 삶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코끼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짓궂은 사람들이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조선에 건너온 다음 해인 1422년 12월, 이 코끼리는 그만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토교통부 장관 정도 되는 공조전서라는 벼슬을 지냈던 이우라는 사람을 밟아 죽이고 만 것이죠. 실록에는 이우가 코끼리를 구경하러 갔다가 못생겼다며 비웃고 침을 뱉자, 코끼리가 '노하여' 이우를 밟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Three_elephant's_curly_kisses.jpg 코끼리는 지능이 매우 뛰어나고 고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예민하고 사나워 사람을 해친 기록 역시 많으며, 지금도 사상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온순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매우 예민하고 겁도 많으며 감정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길들여서 부리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도 가만히 있던 코끼리가 갑자기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하죠. 이 코끼리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화를 내며 사람을 공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어떤 이유로 코끼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어찌 되었든, 전임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코끼리에게 목숨을 잃자 조정이 들썩였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코끼리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태종이 코끼리를 마음에 들어해서였는지, 코끼리는 이렇다 할 처벌을 받지 않고 1년 정도를 더 서울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Elefant_pune.jpg 등짐을 나르는 코끼리


또 1년이 지난 1413년 11월, 이번에는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 유정현이 코끼리를 전라도로 내보내자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는 크게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죠.


1. 더 이상 왕(태종)이 가까이 두며 아끼지 않음

2. 나라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음

3. 2명의 인명피해를 냈으니 사람으로 치면 사형죄에 해당함

4. 코끼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1년에 콩 수백 석이나 되는 비용이 들어감

5. 옛 성인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일을 본받아야 됨


아마도 태종이 코끼리에게 질렸던 모양입니다. 지금처럼 관람객을 유치하는 역할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을 테고, 그렇다고 인도처럼 코끼리를 노동이나 전투에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람 수십 명을 먹여살릴 콩을 코끼리 1마리에게 소모하니 그야말로 '애물단지'라고 유정현은 주장했죠. 게다가 인명피해가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니,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처형되고도 남았을 것을 계속 살려두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맹자》등문공 하편의 '(주공이)호랑이와 표범, 코뿔소와 코끼리를 멀리 쫓아내자 온 천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는 문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저 문장은 원래 요순과 우, 주공 등 '성인'으로 불리는 위대한 인물들이 혼란을 다스려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나열하던 중에 나온 것입니다. 전체 내용은 성인들이 세상을 다스리자 자연재해가 방지되고 위험한 짐승들도 쫓겨났는데, 폭군이 나라를 어지럽히자 또 다시 각종 짐승들이 출몰해 사람에게 해를 입혔지만 또 다른 성인이 폭군을 정벌한 뒤 다시 해로운 동물들을 몰아냈다는 내용입니다. 즉 여기서 코끼리는 '난세'에 나타나는 '재해'를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였던 셈이죠.


1280px-01_Elephant_bronze_wine_vessel.jpg 상하이 박물관의 코끼리 모양 술잔. 본래 중국에도 코끼리가 있었지만 멸종했다.


사람들을 침범해오기는커녕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조선까지 흘러들어왔던 코끼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유정현이 왜 저 고사를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그는 코끼리를 전라도의 섬으로 보내 기르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태종도 웃으면서 그의 말대로 하라고 명령했죠. 그렇게 코끼리는 서울을 떠나 전라도로 내려갔고, 전라도의 어느 섬에 있는 목장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비해서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었는지, 상당히 고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또 1년이 지난 1414년 전라감사가 태종에게 올린 장계에 당시 코끼리의 상황을 엿볼 수 있죠.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 장도에 방목하였는데, 물과 풀을 먹지 않아서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태종은 그 말을 듣고 코끼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육지로 보내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후 전라도의 네 고을 사또들이 번갈아가며 코끼리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로 인한 문제는 끊이지 않았죠.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을 때도 코끼리는 계속해서 전라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1420년, 전라감사가 다시 태종에게 장계를 올려 하소연했습니다. 요약하면 '코끼리는 쓸모도 없는데 폐만 끼치고, (코끼리로 인해)전라도 백성들만 고통받습니다. 그러니 충청도와 경상도도 번갈아가며 코끼리를 기르도록 해주십시오.'라는 청이었죠. 충청도와 경상도 입장에서는 물귀신 작전처럼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태종이 허락하면서 코끼리는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로 이사다니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코끼리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또 1년이 지난 1421년 충청감사의 장계입니다. 공주에서 코끼리를 기르던 종이 그만 코끼리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죠. 충청감사는 코끼리가 다른 짐승보다 10배나 되는 식량을 먹어치우면서 사람을 해치기만 하니 해롭기만 하다면서, 다시 섬 목장으로 내놓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물과 풀이 좋은 섬에다가 옮기되 병들어 죽게 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이 코끼리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식량을 축내고 사람을 해치는데다 '쓸모없다'고 계속해서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이거나 내버리지 않고 계속 돌보게 했던 것을 보면 아마 이후에도 비슷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지 출처

1. 서울대공원 코끼리 '사쿠라'

(https://grandpark.seoul.go.kr/board/view/ko/S001006002001/B008.do?bbs_no=103993&pageIndex=1&searchKey=all)

2. 인도 반디푸르 국립공원의 수컷 코끼리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B%9C%EC%95%84%EC%BD%94%EB%81%BC%EB%A6%AC#/media/%ED%8C%8C%EC%9D%BC:Elephas_maximus_(Bandipur).jpg)

3. 사복시에서 관리하던 살곶이(현 서울 성동구) 목장지도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B3%B5%EC%8B%9C_%EC%82%B4%EA%B3%B6%EC%9D%B4_%EB%AA%A9%EC%9E%A5%EC%A7%80%EB%8F%84#/media/%ED%8C%8C%EC%9D%BC:%EC%82%AC%EB%B3%B5%EC%8B%9C_%EC%82%B4%EA%B3%B6%EC%9D%B4_%EB%AA%A9%EC%9E%A5%EC%A7%80%EB%8F%84.jpg)

4. 코를 맞대며 소통하는 코끼리들

(https://en.wikipedia.org/wiki/Elephant#/media/File:Three_elephant's_curly_kisses.jpg)

5. 등짐을 나르는 코끼리

(https://en.wikipedia.org/wiki/Elephant#/media/File:Elefant_pune.jpg)

6. 상하이 박물관의 코끼리 모양 술잔

(https://ko.wikipedia.org/wiki/%EC%A4%91%EA%B5%AD%EC%BD%94%EB%81%BC%EB%A6%AC#/media/%ED%8C%8C%EC%9D%BC:01_Elephant_bronze_wine_vesse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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