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코끼리 이야기

2부 - 기독교와 이슬람 우호의 마스코트 '아불 아바스'

by 서창현
Lord_White_Elephant.jpg 흰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지만, 동시에 없애지도 못하고 비용만 많이 들어가는 '애물단지'기도 했다.


영어 표현 중에 'white elephant'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흰 코끼리'인데요. 속뜻은 '애물단지'라고 합니다. 고대 태국에서는 왕이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하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코끼리를 받은 신하가 코끼리를 먹여 살리다가 파산해버린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앞선 글의 주인공이었던 조선의 코끼리를 돌봐야 했던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선인들보다도 수백 년 전에 살았던, 프랑크 왕국의 시종들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글의 주인공은 조선 코끼리의 선배격(?)인 유럽 코끼리, '아불 아바스'입니다.


Kaulbach_Die_Kaiserkrönung_Karls_des_Großen.jpg 샤를마뉴의 대관식. 관점에 따라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서기 800년 12월 25일,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로마 황제'의 관을 받아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른바 '신성 로마 제국'의 첫 등장이었죠. 굳이 따지자면 '진짜 로마'라고 할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 제국은 물론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샤를마뉴 역시 이탈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원하고 있었으므로, 동로마 제국은 그에게 일종의 경쟁자였습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고 하죠.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을 아우르는 강대국이었던 프랑크 왕국 역시 사방의 경쟁자들에 맞서 우방을 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동쪽 멀리 떨어진 중동 지역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가 하나 있었죠. 바로 아바스 왕조였습니다.


프랑크족은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지 오래되었고, 서유럽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동로마 제국 대신 '로마와 기독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로마 교황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샤를마뉴의 할아버지인 카를 마르텔은 732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올라온 우마이야의 이슬람 군대와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죠. 반면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를 중동에서 쫓아내고 이슬람의 정통을 칭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종교적으로는 그야말로 물과 기름 같은 두 나라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이 동로마를 견제하고 이베리아의 우마이야와 적대 관계였듯, 아바스 왕조 또한 동로마와 중동 지역을 두고 다투는 한편 우마이야의 잔당들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죠.


Harun_al-Rashid_receives_envoys_from_Charlemagne.jpg 아바스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좌)가 샤를마뉴의 사신을 맞이하는 그림


그리하여 샤를마뉴는 아바스와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습니다. 아바스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는 샤를마뉴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습니다. 아불 아바스는 그 중 하나였죠. 아시아코끼리로 추정되는 아불 아바스는 아마도 조선 코끼리가 그랬듯 인도 등지에서 태어나서 아바스의 수도 바그다드로 유입되었을 것입니다. 바그다드 역시 코끼리의 서식지는 아니었으니 말이죠. 프랑크 왕국의 기록에 따르면, 샤를마뉴는 아불 아바스를 데려오기 위해 지중해로 함대를 파견했다고 합니다.


이 코끼리는 바그다드를 떠나 현재의 이집트. 튀니지 등을 거치는 머나먼 항해 끝에 제노바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죠. 샤를마뉴의 궁정이 있는 아헨으로 가기 위해선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저 옛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할 때도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 바로 알프스였습니다. 당시 한니발이 동원했던 코끼리 수십 마리도 산악 거주민들의 저항과 혹독한 추위 속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죠. 하지만 아불 아바스는 다행히도 한니발의 코끼리들과 같은 운명을 맞지는 않았습니다. 아불 아바스는 이탈리아에서 겨울을 난 뒤 따뜻한 봄이 되자 알프스를 넘어 최종 목적지 아헨에 도착했습니다. 바그다드를 떠난 지 5년이 지난 802년의 일이었죠.


Elephant_and_Castle_(Fresco_in_San_Baudelio,_Spain).jpg 12세기 스페인에서 그려진 아불 아바스 그림


이후 아불 아바스는 두 강대국, 프랑크 왕국과 아바스 왕조의 관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샤를마뉴는 이 코끼리를 아끼며 자주 타고 다녔다고 하죠. 동화책이나 영화, 게임 등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유럽의 왕이 코끼리를 타고 사람들 앞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샤를마뉴는 동서를 둘러싼 적들과 자주 전쟁을 벌였고, 그때마다 아불 아바스를 데리고 나섰다고 합니다. 물론 왕이 직접 타고 다닐 정도로 아끼는 동물이자 외교적인 상징이기도 했던 아불 아바스가 전면에 나서서 화살비를 맞았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겠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과 말들 사이에 마치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 있었을 아불 아바스의 모습은 아마 프랑크 왕국 군대에서도 돋보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오랜 종군은 결국 아불 아바스의 명을 재촉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가 되는 라인강을 넘어다닌 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더운 지방에 살도록 진화해온 코끼리에게는 너무 차가웠던 것이죠. 결국 아불 아바스는 810년 프랑크 군대가 주둔하던 어느 지역에서 폐렴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기록에 등장하는 아불 아바스의 기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조선 코끼리보다도 훨씬 더 단편적인 내용밖에 전해지지 않죠. 그래서인지 이 코끼리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많은 추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전에 없던 이야기가 덧붙기도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아불 아바스가 알비노, 즉 서두에서 말한 '흰 코끼리'라는 것이었죠. 그밖에도 아불 아바스가 사망했다고 전해지는 지역에서 커다란 동물의 뼈가 발견되자 그것이 이 코끼리의 유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록 사실은 아니지만, 생전에도 기독교-이슬람 왕국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였던 코끼리 아불 아바스는 죽은 후에도 역사에 그 이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남긴 코끼리가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1. 흰 코끼리

(https://en.wikipedia.org/wiki/White_elephant#/media/File:Lord_White_Elephant.jpg)

2. 샤를마뉴의 대관식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magne#/media/File:Kaulbach_Die_Kaiserkr%C3%B6nung_Karls_des_Gro%C3%9Fen.jpg)

3. 샤를마뉴의 사신을 맞이하는 하룬 알 라시드

(https://en.wikipedia.org/wiki/Harun_al-Rashid#/media/File:Harun_al-Rashid_receives_envoys_from_Charlemagne.jpg)

4. 12세기 스페인에서 그려진 아불 아바스의 그림

(https://en.wikipedia.org/wiki/Abul-Abbas#/media/File:Elephant_and_Castle_(Fresco_in_San_Baudelio,_Spai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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